팬데믹의 여파로 패션 산업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글로벌 봉쇄조치(락다운) 이후 패션쇼와 같이 브랜드의 신제품을 선보이는 오프라인 행사는 대부분 가상 공간에서 이뤄지게 되었죠. 지난 2021 F/W 파리 패션위크의 경우 90개 이상의 브랜드가 가상으로 쇼에 참여했으며, 아름다운 패션 필름이 쏟아졌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이 보급된 이후에는 일부 대면으로 전환됐지만, 아직 비디오를 통해 새 시즌을 알리는 하우스가 많습니다. 독특한 콘셉트와 영상미로 화제가 된 패션 필름 5개를 만나 보세요.
셀린느 2022 S/S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디 슬리먼은 프랑스의 심볼과도 같은 도시 니스에서 영감을 받아 2022 S/S 컬렉션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이번 컬렉션의 이름은 ‘Baie des Anges’. 니스에 위치한 영국인 산책로(Promenade des Anglais)에서 진행되었으며, 유서 깊은 호텔 르 네그레스코(Le Negresco)와 같이 장엄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컬렉션은 고전적인 프랑스 스타일과 실루엣이 적극 반영된 점이 두드러지는데요. 이는 셀린느의 의류 자체를 프랑스의 예술 및 건축 역사와 직접 연결함으로써 프랑스의 유산을 계승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디스퀘어드 2022 S/S
디스퀘어드의 디자이너 딘과 댄은 화려한 비디오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밀라노의 봄 패션쇼를 생략할 정도로 2022 S/S 디지털 런웨이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번 컬렉션은 밀라노의 버려진 창고에서 진행되었는데, 내부는 그래피티로 가득찬 반면 외부는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러한 배경은 이번 컬렉션의 주제인 ‘동화 그런지(Fairytale Grunge)’라는 콘셉트와 결을 같이 하는 부분이죠. 쇼는 무관중으로 진행되었지만, 큰 규모였기에 굉장히 도전적인 작업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프라다 2022 S/S
프라다의 2022 S/S 남성복 컬렉션은 밀라노에 위치한 프라다 재단미술관(Fondazione Prada)과 사르데냐 해안에서 이뤄졌습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빨간 터널 끝에 태양이 내리쬐는 해안이 펼쳐지죠. 이러한 구조를 기획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는 “이번 쇼에서는 일상의 즐거움을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행복은 대부분은 아주 단순한 것에서 시작되니까요”라며 일상 속 작은 기쁨의 중요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패션 필름을 통해 그가 담고자 한 철학을 살펴보세요.
버버리 2022 S/S
이번 시즌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디지털 프레젠테이션을 하나 꼽아보라면 역시 버버리의 2022 S/S이 아닐까 싶습니다. 흔한 배경 음악 없이 은빛 모래를 밟는 소리, 구두 굽 소리, 종소리, 거친 바람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교차하고, 모델들은 동물 귀 모형을 달고 등장하지요. 컬렉션을 관통하는 주제는 ‘동물의 본능(Animal Instinct)’.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는 각각의 사운드와 이색적인 질감 및 경험을 통해 예상치 못한 공간을 통과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버버리 컬렉션을 지금 바로 감상해 보세요.
메종 마르지엘라 2022 S/S
메종 마르지엘라는 올리비에 다한 감독과 작업한 오트 쿠뛰르 패션 필름 <A Folk Horror Tale>의 콘셉트를 2022 S/S에도 이어갔습니다. 네덜란드 옛 어부의 모습과 쳥년 공동체의 몽환적인 이미지. 낚싯대에 매달린 미끼와 유사한 깃털을 사용하고, 그물 같은 효과를 위해 원단을 땋았으며, 낡고 해진 옷을 조합해 코트를 만들었죠. 이번 쇼를 기획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는 청년 세대의 용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는데요. 청년들의 도전 정신을 기리는 컬렉션은 갈리아노만의 창의적인 실험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팬데믹 이전까지 ‘디지털 런웨이’라고 하면 오프라인 쇼를 녹화한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비대면으로 전환되자 브랜드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덴티티를 농축시키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시즌 콘셉트를 더욱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미 업계의 많은 유명 인사들이 패션 위크 일정을 떠날 의사를 표할 정도로, 디지털 전환은 또 다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