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존재하지 않을
‘여류작가’라는 굴레와 허상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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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서부턴가 출판 문학시장에서 눈에 띄는 남성 작가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2017년 기준 동인문학상 수상자였던 김애란을 비롯하여 같은 해 주요 문학상 수상자의 80%가 여성작가였던 사실에서부터 2020년 김유정 문학상을 비롯한 주요 문학상 수상자가 모두 여성이었다는 사실을 종합해보면, 이를 비단 우연으로만 치부하기에 다소 무리가 따른다. 처음엔 한 때의 작은 현상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흐름이 꺾이기는커녕 점차 공고해지며 하나의 시류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나름 인지도 있는 남성 작가가 이 글을 본다면 코웃음을 칠 수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현저히 낮을 테니 안심하고 계속해서 글을 쓴다.

다만 글을 쓰는 모든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 새로운 작품을 발표해야 하는 작가들, 그러니까 ‘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 이같은 현상은 보다 선명해진다. 정세랑, 김초엽, 황정은, 장류진, 백수린, 강화길 등, 올 한 해를 돌아봤을 때 기억에 남는 소설가들의 이름을 떠올려본다면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들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단순한 사실에서 비난하고 공격할 꺼리를 찾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된다. 2021년 올해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 모두가 여성이라는 이유와 함께 수상 작품 중 남성 혐오 표현이 쓰였다는 점을 들어, 또 그들을 평가한 주체 역시 대부분이 여성 심사위원들이라는 근거로 그 수상의 영예에 생채기를 시도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여성작가들의 승승장구와 독주를 우린 어떤 시선으로 봐야할까. 이내 잠잠해 질 시류일지, 혹은 그들만의 잔치로 한정할지에 대해 말이다. 수긍을 위해서건 비난을 위해서건 우린 현상 자체보다 현상이 일어난 배경과 그 맥락을 봐야한다. 그래야 그 흐름이 보일테니 말이다.


급변하는 사회 변화 속 여성 작가들의 부상

타자기의 모습, 종이에는 'feminism'이라고 써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여성 작가들이 한국 문학 시장에서 본격적인 주체로 등장하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그 적확한 시점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시작을 2016년으로 삼고자 한다. 그 해 가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출간되었던 해로도 기억한다. 잠잠하던 그 시작과 달리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그동안 제대로 대두되지 못했던 여성 문제가 비로소 표면 위로 등장했고,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었다. 그 뒤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좀처럼 연대할 계기가 없었던 여성들이 함께 힘을 모으기 시작했고, 글로벌한 세계화에 발맞춰 국외에서부터 촉발된 미투 운동¹의 물결이 국내로도 유입되었으며 이와 함께 본격적인 페미니즘 담론의 장이 마련되었다. 그 결과 그간 암암리에 차별받아 왔던 여성들의 권리는 지금도 계속해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 과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말이다.

이렇듯 여성들의 권리와 권익, 그리고 차별 금지,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 코드가 부상하면서 여성 작가들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문학 속에 투영해왔다. SF 소설을 통해, 혹은 에세이를 통해, 때론 단편소설을 통해 여성들은 각자의 철학을 이야기로 녹여냈다. 2010년대 중반부터 그 움직임은 하나의 커다란 시류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여성작가들이 문학가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다양한 운동들 속에서 문학은, 그리고 작가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장 안에 녹여냈다. 독자들 또한 전통적인 형태의 문학 소비에서 한 단계 나아가며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거나 응원했다.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작가의 팬덤을 기반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한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달까지 가자'책 표지
이미지 출처: 창비
'방금 떠나온 세계' 책 표지
이미지 출처: 한겨례출판
'시선으로부터' 책 표지
이미지 출처: 문학동네

2017년부터 그 현상은 더욱 도드라지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해 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자의 8할이 여성작가로 채워졌고 이 현상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유연하게 잘 짚어낸 덕분에, 그들의 작품은 늘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에 반해 급변하고 있는 사회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철학을 좀처럼 제대로 녹이지 못하는 작가들은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그 결과 베스트셀러 소설에 오른 작품들 중 남성 작가들의 소설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점차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출판 시장에서 예전의 명성과 이름값은 이제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얼마나 대중들의 욕망을 읽어낼 수 있는지, 혹은 그들에게 어떤 길을 제시해야 할지, 현재와 미래를 위한 어떤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가 유일한 관건이 되었다. 현재를 읽어내는 감각만이 중요한 표현의 수단이 된 셈이었다.


편향성에 대한 비판과 비난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금의 현상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작년 젊은 작가상 수상에서 불거져 나온 이슈들이 이를 반증한다. 수상한 작품들에서 남성 혐오 표현이 여과 없이 사용되었다는 점과 함께 작가들 모두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이를 심사한 심사위원 역시 대부분 여성들이라는 이유가 도마 위에 올랐다. 얼핏 편향성을 문제 삼는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같은 지적과 비판은 애당초 잘못된 현실인식에 기반한다. 남성을 혐오하는 표현이 사용되었다는 점이, 수상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이, 또 그들을 평가한 심사위원 역시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 과연 잘못된 일일까. 비판받고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 맞는지 말이다.

과거 남성들 위주의 문학이 대세였던 시절, 여성을 폄하하고 권익을 낮춰보는 시각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라는 인식조차 없던 시절이었을지 모르나, 그것 역시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했다. 여성은 그런 존재였고, 그렇게 표현되어도 마땅했던 시대였다. 이를 작년 남성 혐오 표현의 사례로 치환해본다면 우린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말이다. 물론 표현을 문제 삼는 문제의식 그 자체를 문제 삼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단순히 그 단어 하나, 표현 한 부분에 집착해서 전체의 흐름 자체에 생채기를 내려함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함이다.

수상한 작품은 작품성에 기반한 결과이며, 그 작가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은 비단 젊은 작가상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닌 전반적인 출판시장 속 트렌드가 된 지 시일이 꽤 흘렀다. 2021년 알라딘 서점 조사 기준 베스트셀러 속 남성 작가는 단 두 명이며 나머지는 모두 여성 작가들이 차지했다. 한 해 전인 2020년만 보더라도 이 같은 현상은 역시 동일하며 1위부터 9위까지의 한국소설의 작가가 모두 여성작가였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의 이면엔, 어찌 보면 당연한 원리가 숨어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 도서 시장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2030 여성들이라는 점 말이다.

'미투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여자의 뒷모습
이미지 출처: unsplash

출판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문화 예술 시장의 주요한 소비자는 여성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까지 이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주요한 소비자임에도 여성들이 그들 안의 욕망이 투영된 작품에 열렬한 환호를 보낸 적이 과연 있었을까. 범대중적 관심을 받아왔던 문학 작품들은 있었어도 여성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문학은 크게 없었던 과거였다. 그러나 변화하고 있는 사회 안에서 여성들은 그들 안의 잠재된 의식을 적극적으로 표면 위로 드러내게 되었고, SNS을 통해 이를 서로 확인함과 동시에 함께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발맞춰 여성 인권과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보다 당당하게, 그리고 거세게 드러내고 요구하는 형국이 되었다. 우리가 두 발 딛고 서 있는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그리고 여성들은 불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적극적인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류작가로 한정할 수 없는 시대정신

결국 작금의 문학 시장, 그리고 출판 시장에서 작가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미션은, 남성 작가든 여성 작가든 변화하는 시대 안에서 여성들이 원하는 서사를 자신의 철학 안에 어떻게 녹여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가다. 그것을 지금의 여성 작가들은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으며, 반대로 남성 작가들의 경우엔 그 변화에서 갈피를 못 잡거나 표류하는 셈 아닐까. 다만 과거 남성들 위주의 문학 시장에서 ‘지나친 편향성’에 대한 담론이 미미했을뿐더러 여성들만의 서사가 미약하다는 비평 역시 부재했던 만큼, 이는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핵심은 작가의 성별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작가 개개인의 역량과 소비자의 기호, 그것이 어떻게 상응하느냐가 핵심이다.

이런 미션 하에서 여성들은 전통 장르에 스스로를 제한하거나 국한하지 않았다. 종래의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한 방법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서사를 이야기에 투영했다. 이미예는 판타지, 김초엽은 공상과학(SF), 정유정은 스릴러 작품을 쓴다. 문장력과 그 표현에 중점을 둔 순문학보다 이야기의 힘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서, 읽으면 영상이나 그림처럼 장면이 그려지는 장르문학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에서 여성작가들의 장르를 넘어선 움직임은 더 도드라져 보인다. 이 또한 독자들이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원한다는 수요를 잘 읽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지금 그들의 승승장구는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객체에서 주체로,
단순한 소비를 넘어선 적극적 지지로

'우리가 무너뜨린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종이
이미지 출처: unsplash

시대를 꿰뚫는 철학과 사조, 우리는 그것을 시대정신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있는 생물과 같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끊임없이 그 모습을 달리한다. 때문에 예술을 하는 사람은 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연구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때론 저항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스스로의 철학은 각 시대의 요구에 반응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시대의 산물이 된다. 평가의 대상이 되는 개인과 시대는 이처럼 뗄레야 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시대는 차별과 병폐, 악습과 고정관념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의 삶이, 사회적 모순과 차별 그리고 다양한 병폐와 맞닿아있다는 공감대가 확고히 자리잡았다. 여성들의 몸과 성, 결혼과 이혼, 출산과 양육, 사회 활동과 노후 생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사회 변화의 맥락과 함께하고 있다고 말이다. 사회 변화의 주체와 객체로 여성들이 떠오르면서 그들의 서사에 열광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학의 흐름이 편향이 아닌, 시대의 흐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정해야만 한다. 문학 시장을 이끄는 주류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작은 물살이 아닌 시대의 흐름이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더는 여류작가라는 수식어가 쓰일 일이 있을지, 자문해보길. 야트막한 천정이 깨진 순간부터 우린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여야 하므로, 깨지기 전 세상은 이제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사실 또한 함께 상기시키길 바란다.

혹자는 예전 그때가 그립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어느 영화 제목으로 쓰였던 문장을 차용해 감히 주장한다. ‘지금이 맞고 그때가 틀렸노라’라고. 이제야 비로소 남성과 여성 모두 동등한 출발선 상에 서게 되었노라고 말이다.

  • 대한출판문화협회, 2020년 출판시장 통계, 2021
  • 교보문고 2020년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30종
  • 권영우, 시대의 반영으로서 문학 – 고대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작품을 중심으로(세계문학비교연구 71권0호), 2020
  • 시사저널, 문학은 여혐해도 되나, 2018
  1. 미투 운동: 미투 운동(영어: Me Too movement)은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여론의 힘을 결집하여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것으로,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2017년 10월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을 폭로하고 비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 해시태그(#MeToo)를 다는 것으로 대중화되었다.직장 및 사업체 내의 성폭행 및 성희롱을 SNS를 통해 입증하며 보편화되었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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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성

책을 읽고 곱씹으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리곤 글을 씁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합니다. 재미를 발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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