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를 필두로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노포’. 직역하자면 ‘오래된 식당’이란 뜻으로, 공간 전체에 지나온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이 특징인데요. 수십 년간 유지되어온 음식의 맛과 오래된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어르신들이 찾던 노포 식당이 이제는 젊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그런데 카페에도 노포가 있다는 거 아시나요? 커피문화가 생소했던 시절에 영업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소위 힙하다는 신상 카페들 틈에서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세 곳의 카페를 소개합니다.
안국, 브람스
안국동 로터리 모퉁이에 30년간 자리를 지킨 브람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옛날 다방에서나 볼법한 스웨이드 소재의 자줏빛 소파가 격조 있게 놓여있습니다. 브람스를 사랑하는 사장님의 취향에 걸맞게 브람스의 곡이 재생되는 것은 물론, 벽에는 브람스의 초상화가, 창문엔 브람스 형상이 래핑 되어있는데요. 프랜차이즈 카페가 한창 붐을 일으켰을 때, 카페 사정이 어려웠지만 사장님은 ‘오랜 시간 카페를 운영하면서 쌓인 시간과 추억, 단골 음악인들을 위해서 버티셨다’고 합니다. 유행을 따를 필요도, 나를 바꿀 필요도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있다고 말하는 이곳에서의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커피 한 잔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61, 2층
영업 시간: 매일 13시~22시
서래마을, 서래수
오슬로의 그랜드 카페와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 에든버러의 엘리펀트 하우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을 눈치챘나요? 바로 위대한 예술가들이 사랑한 카페입니다. 그랜드 카페는 화가 뭉크의 단골 카페였고, 철학자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카페 드 플로르에서 사색을 즐겼죠. 엘리펀트 하우스에서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집필되었고요. 지금 소개할 서래수에도 단골 예술가 손님이 있는데요. 바로 봉준호 감독입니다. 게다가 이곳 1층 구석 자리에서 영화 기생충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고 하는데요. 정통 커피 마스터가 15년째 운영 중인 이 카페는 사실 거장의 단골 카페라는 명성을 얻기 전부터 커피 애호가들로부터 맛을 인정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초록색 담쟁이로 덮인 카페 안팎의 풍경을 응시하면서 깊고 진한 커피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샌가 몰입과 영감의 순간이 올 거예요.
주소: 서울시 서초구 동광로 95-6
영업 시간: 매일 10시~22시 (일요일 휴무)
이촌, 더 루시 파이 키친
이촌동을 대표하는 디저트 카페, 더 루시 파이 키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디저트 가게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블루리본 서베이에서 매년 다시 가고 싶은 식당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식 파이를 맛볼 수 있는 이곳은 팥죽과 팥빙수로 유명한 이촌동의 또 다른 대표 맛집인 동빙고 사장님이 함께 운영하는 곳인데요. 지금은 동빙고와 매장을 합쳐서 운영하고 있어 한 공간 안에서 동서양의 디저트를 함께 맛볼 수 있는 미식의 컬래버레이션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작고 평범한 파이 가게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공간을 지속되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찾아와 주는 사람들’임을 깨달았죠.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촌로 182, 109호
영업 시간: 매일 10시30분~22시
글 쓰는 셰프이자 미문의 문장가로 알려진 박찬일 셰프는 자신의 책 『노포의 장사법』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며 성장해온 노포들은 결코 쉽지 않은, 지속이란 과제를 달성해낸 존재다’라고 말했습니다. 노포의 굳건한 ’한결같음’처럼, 시간을 관통한 유산들은 삶에 작은 위로를 선사합니다. 오래도록 간직한 신념은 언젠가 알아주는 사람이 등장하고, 내가 나로써 존재해도 사랑받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이죠. 당신의 삶에서 지키고 싶은 유산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