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준 일반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약 6권이라고 합니다. 2017년에 나온 통계에서 약 2권이 줄어든 수치라고 하니 아직 나오지 않은 2021년 통계는 아마 6권도 채 되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년간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고 답한 성인이 47.9%에 달했다는 통계를 보면, 평균 독서량으로 도출된 수치 또한 말 그대로 ‘평균’ 일뿐 책을 많이 읽는 사람과 전혀 읽지 않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작금의 시대에서 책은 이제 특정 그룹에게만 유효한 취미의 영역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이상 겸연쩍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슬며시 닫히고 있는 문 다른 한 편에서 다른 문이 열리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아니, 이미 활짝 열린 문으로 새로운 독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웹소설과 함께 비주류 문학으로 통칭되던 장르문학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한결 부드러워진 요즘, 웹소설 또한 새로운 독자들의 가세에 힘입어 해마다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약 6,000억 규모의 거대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웹소설의 힘을, 그 안에 내재된 가치와 개성을 폄훼하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극히 말초적이고 때론 저속하기까지 한 통속소설로 치부 해버리거나 그 안에 내재된 문학성이 없다는 이유로 단순한 시간 때우기 목적의 스낵 컬처로 한정하기도 하죠. 그러나 과연 그게 사실일까요. 그렇다면 웹소설은 문학이 아닌 걸까요?
웹소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1) 장르문학의 태동
먼저 웹소설을 포괄하는 장르문학¹의 정의부터 살펴보죠. 장르문학의 문학성을 논할 때 등장하는 단어 중에 순문학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문학이란 무엇일까요. 너무 깊이 논의가 들어가는 건 순문학을 옹호하는 편이건 장르문학을 옹호하는 편이건 양 진영 모두에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현실의 반영을 철저히 배제’한 순문학의 의미는 이미 닳고 닳아 지금에서는 논쟁의 여지조차 사라져 버렸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자취를 감춘 진정한 순문학 대신, 우리는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 제도권 문학을 이끌고 있는 문단 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문단 문학이, 문학의 현실 반영을 중시하는 리얼리즘 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문학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범대중이라 불리는 일반인들을 이해와 요구를 반영한 대중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셈이죠.
문단 문학이 도서시장의 압도적인 주류를 점했을 때만 해도 장르소설은 마니아들만의 문화나 되려 현실과 동떨어진 주제를 다룬(혹은 현실을 반영했다 해도 그 범위가 협소하거나 정도가 미약한), 동시에 상업성만을 지향한 도서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시장이 작다 보니 좋은 작가가 모이지 않는 건 당연했고, 또 좋은 작가의 유입이 없으니 작품의 질은 계속 낮게 유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단 문학의 경우 기성 출판사들을 통해 등단할 수밖에 없기에, 새로운 작품의 유입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단점도 분명 존재하지만 이 덕분에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양질의 도서가 나올 수 있다는 장점 역시 취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과거 장르 도서를 다루는 출판사들의 경우, 시장성의 한계로 최소한의 품을 들여 찍어내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작품의 수준이 낮다는 인식이 전반에 깔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0년대 말 인터넷 소설이 처음 태동했던 당시, 주 수요자들이었던 10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등에 업긴 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이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 역시 소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형식이 배제된 ‘그들만의 리그’처럼 보였다는 게 기인합니다. 10대들의 구미에 맞는 앙상한 서사구조만을 토대로 상업적인 목적에만 집중해서 말초적인 재미만을 추구한다는 비난과 함께 낙인이 찍힌 셈입니다.
2) 달라진 시장의 변화와 웹소설의 위치
그러나 2010년을 전후로 큰 변화들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던 대로 장르문학 속에서 웹소설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주요 독자층의 이탈로 촉발되기 시작한 문단 문학의 쇠퇴와 함께 순문학의 정의 또한 이미 희미해진 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대중성의 날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가며 독자들과의 접점을 조금이라도 좁히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현재 문단 문학을 대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점차 그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도서출판시장에서 장르문학은 어느새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수요가 늘어남과 동시에 새로운 재능 있는 작가들 역시 장르소설로 속속 뛰어든 지 시일이 꽤 흘렀습니다. 이들의 가세와 함께 양질의 도서들이 출판되어 도서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웹소설 또한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부 10대들만의 문화라고 규정되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웹소설을 일부만의 문화라고 감히 한정할 수 없게 되었죠. 웹소설을 기반으로 웹툰이 제작되며 경우에 따라 드라마와 영화로까지 제작되는 지금, 웹소설은 새로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대중 예술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매체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웹소설의 독서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웹소설의 문학성이 없다는 이유와 논리로 말입니다. 그러나 반문합니다. 그 문학성의 획득은 과연 어느 누구로부터 비롯되며 그들이 말하는 문학성에 과연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에 대해 말입니다.
3) 웹소설은 문학일까
그렇다면 문학을 문학이라 규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소설을 상상 속 이야기와 허구의 서사라고 정의했을 때 작가 본인이 바라는 세계와 이상을 작품에 투영하는 것은 모든 문학의 공통적인 속성이 됩니다. 그리고 그 세계를 표현할 때 작가가 고려하는 건 바로 ‘대중들의 기호’에 대한 대중성과 ‘독창적인 이야기를 얼마나 은유적으로 표현하는가’를 반영하는 작품성입니다. 이 둘 사이에서 작가는 각각의 그 정도를 필연적으로 조율하게 되며 결국 웹소설과 기존의 문학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차이이자 ‘문학성’의 존재를 가름하는 시각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 기인합니다.
기존의 문학과 웹소설이 서사 구조의 측면은 유사하지만, 서사에 내재된 형식과 독자층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은유와 복선들로 가득한 기존 문학과 달리 웹소설은 노골적이며 욕망 지향적인 형식을 구사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문학에서 주인공의 흥망에 앞서 이야기 속에서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그 나중에 미리 가늠할 수 있게 만들어주거나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면, 웹소설 속 주인공은 특별한 능력이 애초부터 주어진다거나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세계를 설정한 뒤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합니다. 감추기보다 무언갈 먼저 드러내 놓고 시작하니 이야기의 흡입력은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권을 이미 구매하여 자칫 지루하더라도 나머지를 다 보게 되는 일반 문학과 달리, 조금이라도 지루해지면 다음 화로의 결제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웹소설 연재 방식으로 인해 웹소설 속 이야기들은 말초적이고 자극적이며 장면의 전환이 무척이나 빠릅니다. 상업성과 작품성 중 상업성에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는 셈이죠.
그러나 일반 문학에서도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작가들은 늘 선택을 고민합니다. 작품성만 좇다가는 대중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으니 그 적정 지점을 찾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다만 그 적정 지점은 작가 개인의 지향점에 따라 갈리는 바라, 대중성을 좇는다 해도 그것을 비평하는 이는 있을지언정 비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락영화든 예술영화든, 혹은 독립영화든 각자 개별적인 영역에서 영화로써의 가치는 모두 존재합니다. 아무리 가벼운 오락 영화일지라도 그것을 표현한 감독의 의도는 영화 안에 담겨있음은 물론 이를 통해 감독은 관객과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모든 예술과 문학의 공통적인 속성이기도 하죠.
웹소설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상업성을 노골적으로 지향하긴 하지만 작가의 지향점과 창조한 세계가 작품 안에 담긴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다양한 소재와 방법들을 작가가 직접 선택한다는 점에서 여느 문학과 다를 바 없습니다. 노골적으로 그 대중성을 드러낸 건 문학성과 전혀 무관합니다. 그것을 평가하는 건 일부 기득권이 아니라 웹소설을 즐기는 대중들이라는 점 또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혹자는 문학성에 대한 비평이 전무하다는 점을 들어 웹소설의 가치를 폄하하지만, 웹소설은 사실 끊임없이 비평을 당하고 있는 셈 아닐까요. 바로 독자의 선택에 의해 매 화마다 비평을 받게 되는 시스템에 의해 말입니다. 기존 문단 문학에서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등단이라는 특정하고도 협소한 경로를 통해 작가를 발굴합니다. 문학성이 발굴되고 부여되는 문단 문학과는 달리 그러나 자유로운 웹소설 플랫폼 하에선 바로 독자들에 의해 매력적인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발굴되죠. 독자들의 계속된 선택을 받는 작품들은 이야기에 힘이 부여되며 자생력을 갖게 됩니다. 결국 비평과 담론은 없을지라도 상업성이라는 잣대와 생태계 자체가 이를 뒷받침하는 셈입니다. 선택을 받지 못한 작품은 시장에서 어느새 자취를 감추며 사라지게 됩니다.
앞으로 웹소설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장르문학 시장은 그것을 담고 유통하는 매체가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과 쇠퇴를 반복해왔습니다. 무협소설이 주류를 이루던 과거에서부터 PC통신과 도서대여점 중심으로 팬덤을 구축했던 판타지 시장, 그리고 현재 10대부터 20대에 이르는 전연령층 여성 독자들이 즐기고 있는 로맨스 소설을 필두로 한 웹소설까지. 이들 장르문학과 웹소설은 이전까지는 통속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졌습니다. 단지 문학 바깥에 존재하는 하나의 서브컬처로만 여겨졌던 과거엔 그저 너무나도 말초적인 ‘그들만의 리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죠.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 속에서 주류와 비주류라는 이미 낡은 진영 가치로 정의될 수 있는 세상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구분과 경계가 불가능한 복잡 다변한 세상이 아니던가요. 그렇기에 이미 텍스트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점차 어려워지는 시대에서, 유명무실한 텍스트의 문학성을 논하기보다 다양한 텍스트의 매력을 어필해야 함이 맞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웹소설은 작금의 시대에서 사람들과 텍스트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문학의 독자들이 속속 이탈하고 있는 지금, 균열을 넘어 이제는 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야 할 시기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웹소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일부 시각엔 존중이 결여되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이와 함께 웹소설을 향유하는 대중들 역시 이미 익숙해진 자신들의 독서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죠. 즐기는 인구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당당한 문화소비의 주체로 스스로를 표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서 살펴봤던 대로 웹소설은 문학의 한 갈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명확한 구분이 더는 무의미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웹소설을 즐기는 저변이 확대되는 만큼 웹소설을 즐기는 독자들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변화하길 바랍니다. 전통적인 문학의 정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학의 한 갈래라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여서 당당한 문화 소비의 주체로 부상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요. 여전히 눈을 가리고 있는 선입견을 걷어내고 이야기의 매력에 집중해본다면 비로소 웹소설의 가치가 보일 것입니다. 그 가치를 읽어내는 사람이길 바랍니다. 그래야 앞으로의 다른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테니까요.
- 장르문학: 추리, 무협, 판타지, 에스에프 등 특정한 경향과 유형에 입각한 문학. 대중의 흥미와 기호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순수 문학이나 본격 문학과 상대되는 대중 문학으로 분류된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