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회 직전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도쿄 올림픽은 무사히 개최됐습니다. 관중 없이 진행하는 관계로 역대 가장 조용한 올림픽이 될 예정이죠. 무거운 분위기를 뚫고 개회식에 등장한 205개국 선수단의 모습은 변함없이 활기차 보입니다. 입장과 동시에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은 바로 선수단이 착용한 유니폼. 대체로 올림픽 유니폼은 어떤 규격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이 대부분인데요. 이러한 암묵적인 룰을 깨부수는 디자인이 등장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라이베리아 선수단의 유니폼을 제작한 브랜드 텔파(telfar)입니다.
라이베리아와 텔파의 이야기
텔파가 많은 나라 중 라이베리아를 서포트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사실 텔파를 설립한 디자이너 클레멘스(Clemens)는 라이베리아계 미국인입니다. 라이베리아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로, 인구 500만 명의 작은 국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지만 1956년 이후로 거의 매년 하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했죠. 그러나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적 없으며, 자금이 부족해 매번 서포터를 찾아 헤맸다고 하는데요. 선수 중 한 명이 우연히 텔파라는 브랜드의 헤드 디자이너가 라이베리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협업을 제안하게 됩니다.
클레멘스는 라이베리아로 여행 갔을 당시 선수단으로부터 제안 연락을 받고, 텔파는 스포츠웨어로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스폰서 제안을 수락하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 클라멘스는 “(라이베리아의 스폰서가 된 것은)여러 면에서 나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선수 중 한 명은 나의 먼 사촌이며, 팀 닥터는 친형의 어린 시절 친구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라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텔파 측에서는 지금까지 진행한 마케팅 중에 가장 큰 투자지만, 마케팅 그 이상에 관한 것으로 판단해 진행하게 됐다고 합니다.
성별의 이분법을 지운 디자인
텔파는 다양성을 배제하는 관습을 지닌 기성 패션계에 대항해 유니섹스 컬렉션을 선보이는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브랜드의 가치관은 이번에 진행된 선수단 유니폼 디자인에도 반영되는데요. 라이베리아 선수단 유니폼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착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습니다. 개막식에서 착용한 발목까지 내려오는 튜닉, 편안한 트랙 팬츠, 한쪽으로 끈을 당겨 비대칭 라인을 만들 수 있는 탱크 톱 등. 올림픽 역사상 가장 파격적이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완성했죠. 언론에서도 앞다퉈 텔파의 유니폼을 다룰 정도로, 역대 가장 아름다운 선을 지닌 유니폼을 선보이며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해당 컬렉션을 위해 텔파는 단 4개월 만에 레깅스부터 스웨트 셔츠, 더플백, 레이싱용 스파이크 등 약 70개의 제품을 완성하기에 이릅니다. 유니폼에 부착된 라이베리아 국기의 별은 옆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약간 기울게 그려졌으며, 이 밖에도 5명의 육상 선수에게 최적화된 포인트가 전략적으로 곳곳에 배치돼 있지요. 선수 중 한 명은 일반적이지 않은 디자인에 우려를 표했지만, 컬렉션을 입어보자 경기에 최적화된 운동복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경기 직전까지 장비를 테스트했으며, 선수에 맞게 성능을 조정했다고 전해집니다.
스포츠웨어 브랜드로 도약
올림픽 선수단 유니폼 프로젝트를 두고 클레멘스는 2020년 1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피티 우오모 이후 텔파의 첫 라이브 런웨이 쇼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어 일반 패션쇼와 달리 올림픽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쇼’이기에 의미가 크다고 하는데요. 이는 텔파의 핵심 가치인 ‘모든 사람을 위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완성도 높은 컬렉션으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이끈 텔파의 스포츠웨어는 올림픽이 끝나는대로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새로운 라인의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텔파는 비건 가죽으로 제작된 ‘부쉬윅 버킨(Bushwick Birkin)’ 가방으로 유명세를 떨친 브랜드지만, 이번 기회에 올림픽 국가대표 유니폼을 제작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놀라운 것은 텔파의 디자인이 외적인 것은 물론 기술적으로도 훌륭하다는 사실이지요. 무수한 관심을 받으며 출범한 텔파의 스포츠웨어,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