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판사 캐릭터가 등장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 세 명의 여성 이야기를 담은 JTBC 드라마 <서른 아홉>, 두 친구의 우정을 그린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최근 흥행 중인 신작 드라마들은 입체적인 여성의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연대와 성장 스토리가 주목 받는 요즘, 이러한 흐름이 출판 업계에는 어떻게 반영되고 있을까요? 여성의 서사를 다룬 화제작 5권을 모았습니다.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2010년부터 문학동네에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출간해온 책인데요. 이 책의 매력은 작품 뒤 바로 이어지는 작가노트와 평론가의 해설 또한 작품만큼이나 흥미롭다는 것입니다.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은 총 7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그 중 대상 수상작인 전하영 작가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예술을 둘러싼 남성들의 폭력과 그에 의해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자라난 여성들을 예리하게 포착하였습니다. 또다른 작품에서는 장애와 퀴어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 다양성과 포용에 대해 시사합니다. 올해 봄에 만날 새로운 작품들 또한 어떤 주제로 다가올지 기대됩니다.
한정현, 『소녀 연예인 이보나』
『소녀 연예인 이보나』는 8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단편 소설집입니다. 저자인 한정현 작가는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간 인물들을 사랑한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보통의 시선을 받을 수 없는 여성, 퀴어, 이민자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여지없이 느낄 수 있습니다. 소설집에는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인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또한 포함되어 있는데요.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명확하게 이름을 부여받아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과학 소년’과 존중받지 못하는 ‘퀴어’의 경계에 대해 주목합니다. 이처럼 작가는 보통과는 다른 존재로 여겨지는 이들에게 사랑을 건넵니다.
한정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한정현 작가의 장편소설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를 소개합니다. 작가는 추리 소설 형식을 차용해 전작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처럼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간 인물들’을 그리고 있는데요. 국가 폭력, 젠더 폭력, 혐오 범죄의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의 두 주인공 ‘왓슨들’은 사라진 기억 속의 셜록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일들은 지금도 너무나 비슷해요.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라는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폭력의 구조를 찾아냅니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의도적으로 역사에서 누락되고 삭제된 이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죠.
황모과,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다음은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황모과 작가의 첫 장편소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입니다. 평행우주,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사라진 이들과 망가진 세상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다룬 SF 소설인데요. 이 책은 최악의 성비를 기록한 1990년, 백말띠의 해에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여 여아를 낙태했다는 사회적 문제가 모티브가 되어 창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또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선택을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용감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합니다. 여성들의 연대 서사를 공상 과학 소설로 참신하게 풀어낸 황모과 작가의 다음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최유안, 『백 오피스』
최유안 작가의 『백 오피스』를 소개합니다. 제목으로 쓰인 ‘백 오피스(back office)’란 거래 체결과 직접적인 관련 없이 후방에서 업무를 도와주는 부서를 칭하는데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작품에는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고급 호텔 프론트 오피스 뒤에서 마케팅, 객실 예약, 행사 개최 등을 담당하며 고군분투 하는 세 여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대립하면서도 동시에 협력하고, 각자의 이유로 서로에게 기대는 것을 선택하죠. 작가는 구체적이고 섬세한 심리 묘사로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과 욕망을 그려내고, 거대한 행사 뒤의 숨겨진 음모를 밝혀내는 긴박함까지 생생하게 전합니다. 이야기를 단단히 지탱하는 중심축인 여성 연대를 말하면서요.
소설가들은 세상에서 잊혀진 이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건져 올립니다. 그들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되거나 분투하는 이들에게 글로써 용서를 구하고 위로를 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요. 우리 또한 그들의 소설을 읽으며 아픈 역사와 화해하는 기회를 얻습니다. 이렇게 혐오에 맞서 연대를 그리는 서사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