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발행한 우예솔 에디터의 Gray ‘오마주? 표절? 패러디? 예술 작품의 오리지널리티’에서 오마주, 패러디, 표절 등을 구분 지었습니다. 이를 통해 발견한 것은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일회적 현존성에 대한 사실이죠. 원작이 가지는 물질적 지속성과 역사적 증언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에 작가 근원에서 얻어낸 진정성 있는 고민을 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원작이 가지는 오리지널리티이기 때문에 말이죠.
소비자 입장에서 오리지널리티는 감각의 영역이라고 보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쉽게 감각하여 원작을 구분 짓기 어렵습니다. ‘진정성’, ‘신선함’ 등의 단어에서 오는 정의도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산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창작물에 명료한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앞서 말한 원작이 갖는 고유한 독창성으로 나의 가치를 오롯이 지키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번 Gray에서는 ‘창작물이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조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창착물의 비밀을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리지널리티의 개념
사전적 의미에서 오리지널리티란 ‘원조가 가지는 고유한 독창성’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신선함을 가지는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오리지널리티는 재생산, 복제품, 위조품, 2차적저작물과 구분되는 요소입니다. 오리지널리티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독창성’의 현대적 개념은 본래 낭만주의에 묶여 있으며, 이는 낭만적 독창성이라고도 불리는 개념에서 비롯됩니다.
특허법으로 보호하는 영역
오리지널리티의 개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421년 브루넬레스키의 돔입니다. 그 당시에는 혁신적인 건축법으로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던 구조를 구현해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건축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축 소요 시간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브루넬레스키의 기술은 독창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이 이 부분에 동의하였고 1474년 베네치아 특허 조례로 최초의 특허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후대 르네상스 시기에 등장한 수많은 발명가와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물을 오롯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허법 제정 이전에는 언젠가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복제가 당연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고가 만연하였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특허법은 상당히 익숙한 개념이지만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는 ‘창작자의 마땅한 권리’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으로 보호하는 영역
그 외에 구텐베르크도 오리지널리티 개념을 세우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인쇄기를 발명하였죠. 그 시대에 복제에 대한 개념은 지금처럼 예민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상을 분석하고 따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복제라고 하기엔 분명 민망한 수준이었고 흉내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1450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술로 인해 이전에는 오랜 시간이 요구되었던 활자 복제에 박차를 가한 것입니다. 응당 인쇄 혁명을 이루었다고 평해집니다. 표어 문자인 한자와 달리 1음소 1문자 체계를 가진 라틴 문자권의 알파벳은 각 음소에 대치되는 알파벳에 약간의 구두점과 조정 문자와 아라비아 숫자들만 형틀로 사용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1500년까지 50년 동안 구텐베르크 인쇄기가 찍어낸 책의 수가 이전 1000년 동안 출판된 책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본격적인 복제의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지식의 민주화는 달성하였지만,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해야 하는 창작자들에게는 다소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법제화되어 보호된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이권 문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1474년 특허권 제정에 이어 1517년 베네치아에서 최초의 저작권법을 제정하였습니다.
오리지널리티의 본격적 등장 그리고 한계
이를 통해 기술의 오리지널리티는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표현의 오리지널리티까지는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저작권법과 특허법을 통해 복제와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인식은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1886년 베른협약 이후입니다. 더군다나, 이 시점 이전 시대의 예술계에서는 모방이 하나의 문화였습니다. 그것을 능력이라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윤리적인 문제는 대두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창작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법적 보장이 발족한 이후에 3세기 동안 어떠한 시간을 보냈던 걸까요? 오리지널리티의 어원인 ‘오리지날리테’는 1677년에서야 나타났고 오리지널리티란 용어가 실린 최초의 사전은 1742년에서야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그 개념이 유의미하게 수용된 서적으로는 1759년에 출판된 E.영 <독창성 작품에 관한 고찰>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필요를 인지하고 그것을 구체화한 문장으로 서술하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 잡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15세기를 기점으로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탐구하였고 18세기가 되어서야 그것들이 명료해졌습니다.
정체성과 진정성
산업과 예술에서 시작된 오리지널리티의 개념은 당연지사 철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690년 로크의 저서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사람의 이해력에 관한 에세이)> 는 근대 인식론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개인은 경험과 반성을 통해 형성한 의식의 연속 선상에서 스스로를 인식하여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한다.” 이것은 모든 창작자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창작하는 과정에서도 로크의 인식론은 적용되며 이것을 소비하는 과정에서도 적용됩니다. 당대의 오리지널리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까지는 고려되지 않았을지만, 로크의 인식론 개념은 그 시작을 알립니다. 이것은 타인과 자신을 구분 짓는 존재적 이유에 대해 강조합니다. 오늘날 ‘정체성(Identity)’이란 개념으로 개인의 자아를 대중으로부터 분리되는 효과를 가집니다. 이러한 로크의 ‘정체성 인식’은 루소의 ‘진정성(Authenticity)’의 관념적 바탕이 됩니다. 우예솔 에디터의 글에서 확인했던 작품의 진정성 개념은 이러한 과정에서 비롯됩니다.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조건
기본적으로 앞선 오리지널리티의 개념에서 그것의 필요성을 자각한 두 가지 내적 동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기술에 대한 소유욕이며 나머지는 표현에 대한 소유욕입니다. 이것은 각각 경제적 이유, 존재적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술을 소유함으로 자신만이 창출할 수 있는 부가 가치를 독점하는 것과 자신이 타인과 구분되어 정체성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물성과 비물성간의 차이로 여겨지는 두 가지 동기에 대해 저는 ‘형태적 오리지널리티’와 ‘정서적 오리지널리티’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형태적 오리지널리티의 정의
형태적 오리지널리티는 말 그대로 ‘형태에서 오는 독창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외형에서 보여지거나 만져지는 모습을 이야기하며 주로 생김새와 만듦새에 기인합니다. 형태적 오리지널리티의 사례는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것을 잘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디자인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다 같은 형태이지만 디테일 측면에서 브랜드마다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곡선이어도 그것이 유려한지 둔한지에 따라 구분되기도 하고 크기도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가구, 제품, 심지어 평면 인쇄물에서도 물리적인 대상이라면 피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형태적 오리지널리티의 한계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늘날 형태적 오리지널리티는 복제를 완벽하게 막을 수 없습니다. 법적인 보호가 아닌 이것을 모방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정보도 많이 노출되지 않았으므로 분명히 저작자의 정확한 설계도가 없이는 완벽히 복제하지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3D 스캔, 발달한 가공법 등으로 완벽에 가깝게 재구현합니다. 따라서, 형태적 오리지널리티는 창작물이 처음 등장했을 때 필요한 개념입니다. 분명 이것은 유일한 독창성으로 작용하지만, 기술적으로 그것을 복제할 수 있다면 쉽게 잃을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이기도 합니다.
정서적 오리지널리티의 정의
정서적 오리지널리티는 ‘중심 창작물 외에 감상자에게 부여된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감상자의 경험은 창작물을 매개로 창작자에 의해 전달되는 것으로 그것을 표현한 언어, 창작물과 관련된 작가의 여러 종류의 시간 등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추상미술의 거장인 김환기 화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다른 추상화 달리 정서적 오리지널리티를 강하게 가지는 이유는 남다른 작업 방식과 시간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가 한 번의 붓 터치를 할 때의 신중함은 여느 화백과도 달리 깊다고 합니다. 그것은 누구도 따라 할 수도 없으며 흉내 낼 수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추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가지는 서사는 김환기 화백의 삶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형태적으로 유사한 작품이 있다 하더라도 분명하게 구별된 가치를 가지는 이유입니다.
정서적 오리지널리티의 필요성
정서적 오리지널리티가 필요한 이유는 형태적 유사성에 의해 흐릿해질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조금 더 강화하기 위함입니다. 마치 같은 옷이라도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 받은 옷은 더욱 특별한 것과 같습니다. 이 옷은 형태적으로 다른 옷과 마찬가지이지만, 이 옷만이 가지는 정서적 오리지널리티는 선물한 사람과 받은 사람의 역사에 있습니다. 그들만의 사연을 담은 옷은 분명한 정서적 오리지널리티를 선사하며 비록 형태적인 오리지널리티가 약해지더라도 고유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리지널리티의 개념에서 살펴본 정체성과 진정성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서적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창작물만이 존재적 이유를 가짐으로 재생산, 복제품, 위조품, 2차적저작물 등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창작자로서 가져야 하는 자세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복제의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그것을 막을 법제화는 점점 느려지는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문화보다 기술이 더 빨리 발전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특허법과 저작권법이 등장하여도 진정한 오리지널리티의 개념이 대중에게 흡수될 때까지는 3세기의 세월이 걸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과하게 빨리 변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작가 개인적 차원에도 스스로 독창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고로, 창작자로서 가져야 하는 자세는 두 가지 종류의 오리지널리티를 모두 충족하고자 설계하여야 합니다. 두 성질은 필연적으로 상충하는 개념이 아닌 공존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만약 창작물이 쉽게 모방하여지고 그것의 효용 가치에 차이가 없다면 둘 중 하나 혹은 형태적 독창성에 방점을 둔 느슨한 오리지널리티일 확률이 높습니다.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제언
만약 누군가 내 창작물의 정서적 오리지널리티까지 침해한다면 그것은 정체성을 잃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체성은 존재 이유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므로 마땅히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당위성을 잃게 되죠. 이것이 상업적인 대상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 즉, 고유의 강점을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소비자가 나의 것을 구매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나의 것과 유사한 것을 소비해도 얻게 되는 가치가 동일함으로 원저작자의 경제적 손해로 이어집니다. 일반적으로 카피의 대상이 되는 예술 작품, 디자인, 브랜드 등은 만든 이에게 무시무종의 시간을 요구합니다. 수평적인 관계를 맺은 ‘시간’의 특성상, 소비는 단시간에 가능하지만, 창작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기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자신의 창작물에 강한 애착을 가진 경우, “내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 같다”라고 증언합니다. 이처럼 정체성을 침해하는 행위는 결코 그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
현대의 기술 발전과 별개로 대중의 수요도 복제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특히 미학의 관점에서 디자인은 물론 예술계에서도 미니멀리즘은 큰 유행이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디자인 카피 이슈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미니멀리즘이 정서적 오리지널리티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쉽게 복제가 가능한 형태적 오리지널리티인 것은 생김새나 만듦새에서 충분히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의 영역에서 원저작자의 저작권리를 보호받기 어렵다는 제도적 공백을 틈타 형태적 오리지널리티의 침해는 어느 정도 용인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복제를 용인할 수는 없기에 제도적 차원에서 형태적 오리지널리티를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특허청에 적시된 지적재산제도 중 디자인의 성립요건(법제2조)에 의하면, 디자인의 성립요건에는 물품성, 형태성, 시각성, 심미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 ‘㉢ 디자인의 시각성은 육안(肉眼)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정서적 오리지널리티를 확인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각성은 형상·모양·색채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의 동일성을 따져, 유사 디자인과 비유사 디자인을 구분 짓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약 시각적으로 약간의 변화를 주어 형상과 모양에 변화를 주고 색채를 변경한 창작물은 복제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동일한 경험을 제공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틀어진 형태적 오리지널리티에 정서적 오리지널리티를 카피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러한 잣대로 완벽한 창작물의 보호는 어렵습니다.
언론에서도 유사한 문제를 겪곤 합니다. 초상권을 비롯한 보도의 진실성,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 등 일정한 기준으로 그것의 여부를 판가름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앞뒤 정황을 알지 못한다면 주어진 정보로는 어떤 것도 판단하기에 다소 난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상황에 기능하는 것이 바로 ‘언론중재위원회’입니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다양한 관점과 시각으로 사안을 살펴본 후 정성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창작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것은 문제 상황의 이면을 살펴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창작에도 이러한 중재위원회가 있다면 어떨까요? 형태적인 것에만 복제의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닌 창작물이 주는 경험까지 복제의 기준으로 여기게 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더이상 창작물의 외형에만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창작물이 주는 고유한 경험조차도 언어화해야 하며 그것을 특질로 삼아야 합니다. 또 공공연하게 선포함에 따라 나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제도는 이것을 뒷받침할 전방위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