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의
윤리는 도덕적일까

윤리적 가치 뒤에 숨겨진
자본주의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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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된 발렌시아가 광고 사진
논란이 된 발렌시아가 광고 사진, 출처: New York Post

발렌시아가가 논란에 휩싸였다. 광고사진에서 아동이 들고 있는 곰인형에 성인용품을 연상하는 액세서리가 입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로 발렌시아가는 셀럽을 비롯한 많은 팬들에게서 비판을 받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책임 사유를 두고는 광고 제작사와 설전을 벌이더니 종국에는 소송까지 진행 중이다. 여기서 우리가 발렌시아가의 숨겨진 의도를 밝혀내거나 누가 잘못했는지 가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 보자. 이 이슈로 인해 드러나는 패션업계의 구조는 어떻고, 우리는 이 논란을 통해 무엇을 보아야 할까?


럭셔리 패션이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

이케아 쇼핑백에서 영감을 받은 발렌시아가 가방
이케아 쇼핑백에서 영감을 받은 발렌시아가 가방, 이미지 출처: Vogue

먼저,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방법을 살펴보자. 전통적으로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사회·경제적으로 상류층 문화에 속하며, 동경의 시선을 유도해왔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배타성이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중요한 특징이자 브랜드 파워를 상징했다. 본래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가진 차별점은 정교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고품질 소량생산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패션업계에 대량생산이 자리 잡은 이후부터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도 대량생산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고, ‘럭셔리’에 대한 차별적 가치가 희석되기 시작했다. 이후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럭셔리로서의 권위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맥락에서 브랜드 가치를 확보해야 했다. 그래서 이들이 고안해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브랜드 헤리티지(Heritage)다. 헤리티지는 전통이나 유산과 같이 역사적으로 전해오며 중요한 의미나 가치를 잇는 것을 의미한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보통 20세기 초반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경우가 많고, 브랜드의 ‘헤리티지’는 오랜 시간 동안 브랜드를 유지해온 스토리와 역사성을 의미한다. 또한, 브랜드만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이루며 브랜드의 정통성을 형성한다. 이는 제품의 품질 보장까지 이어지며, 오랫동안 쌓아온 소비자와의 신뢰를 상징한다. 둘째, 예술화(artification)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브랜드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패션을 예술로 만들어왔다. 예술가와 협업하거나, 다양한 퍼포먼스를 시도하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등 다양한 예술적인 사고방식을 활용했다. 덕분에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작품의 예술화로 희소성을 담보할 수 있으며,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향유하는 상류층 문화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발렌시아가 또한 1919년부터 시작된 정통성 높은 패션 브랜드로, 쓰레기봉투를 형상화한 가방이나 이케아 백 등 럭셔리 패션의 경계를 묻는 영리하고 실험적인 시도로 예술적 가치를 높이 인정 받아왔다.

이 두 가지 전략을 통해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대량 생산 시스템을 활용함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고고한 주체로 자리 잡았다. 제품의 높은 품질뿐만 아니라 브랜드만이 전달할 수 있는 차별적인 메시지를 구성하며 소비자의 가치 있는 소비를 보장했다. 사회적 지위에 대한 대중의 동의를 얻었고, 그만큼 존중받았다. 최근에는 소비자의 교육 수준이나 예술 감각이 높아짐에 따라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 기대하는 예술적 역량 또한 높아졌을 것이다. 현대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무형의 브랜드 가치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패션 브랜드에 요구되는 윤리적 가치

봉제공장의 모습
봉제공장의 모습, 이미지 출처: Unspalsh

그런데 최근에는 브랜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확대되었다. 바로 윤리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이나 ‘Black lives matter’ 운동 등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중의 민감성이 높아졌다. 특히 패션산업은 2013년 수많은 봉제 노동자가 사망한 라나 플라자 붕괴 사고 이후로 인권 문제가 가시화되었고, 일부 브랜드의 인종 차별 이슈가 발생하면서 다양성에 대한 브랜드 가치관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아동과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움직임 역시 패션 브랜드에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 중 하나다. 동시에 기후변화로 인해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패션산업은 가장 오염이 심각한 산업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이제 인권과 환경을 위한 노력은 패션업계를 관통하는 사회적 책임이 되었다.

인권과 환경에 대한 이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으로서 오랫동안 논의가 이어져 왔고, 최근에는 투자자 관점의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까지 이어져 기업의 인권과 환경 관리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 기업이 사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전체 밸류체인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중요한 기업 윤리가 되었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 또한 ‘기업’으로 정의되며, 기업에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을 함께 요구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브랜드 헤리티지와 예술화를 활용해왔다면, 이제는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 필수적인 덕목이 되었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가지는 사회적 지위를 고려했을 때, 이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개념과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상류층은 전체 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며, 도덕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상위의 엘리트 계층을 자처하고 배타적인 문화를 유지하는 만큼, 상류층의 사회적 책임도 함께 요구될 것이다. 그런데 패션 브랜드가 추구해오는 윤리를, 과연 우리가 기대하는 도덕적인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패션 브랜드의 윤리엔 자본이 있다

동전 속에서 핀 새싹
이미지 출처: Unsplash

먼저, 윤리(Ethics)와 도덕(Morals)의 차이를 잠깐 짚고 넘어가 보자. 윤리란 한 집단 내부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을 말하고, 도덕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말한다. 즉, 윤리는 ‘의사윤리’, ‘기업윤리’와 같이 집단의 규칙을 명시할 수 있지만, 도덕은 모든 집단과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다. 윤리는 도덕을 기반으로 정립되지만, 항상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죄를 고발하는 것이 도덕적 사고에서 나온 행동이라면, 변호사는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이 변호사의 윤리이므로 도덕적 가치를 따르지 않는 셈이다.

그렇다면 다시,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윤리는 도덕적일까? 패션 브랜드의 윤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자발적인 책임보다는 ‘지속가능성’과 연결된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현재와 같이 사업을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관리해야 하는 사회경제적인 가치다. 즉, 돈을 벌기 위한 방법과 직결되는 것이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추구하는 윤리적 가치는 브랜드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전략 중 하나다.

디지털 환경의 확대로 생산자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브랜드 이미지의 변화 또한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인권이나 환경 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시장의 관심과 민감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소비자의 반응은 더욱 가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기업의 이미지 하락, 나아가 매출 하락, 투자 회수 등 재무적인 리스크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윤리적 가치를 지향하고 사회적 책임을 우수하게 이행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의 호감을 얻을 것이며 이는 판매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양성의 맥락에서는 더 많은 인종을 포용하는 것이 더 많은 잠재적 소비자를 얻는 것과 연결된다. 이제는 윤리적 가치란 기업의 원활한 사업 운영을 위해 필수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요소가 되었다.

흑인 비하로 논란이 된 구찌의 터틀넥
흑인 비하로 논란이 된 구찌의 터틀넥, 이미지 출처: 하입비스트
흑인 비하로 논란이 된 프라다의 키링
흑인 비하로 논란이 된 프라다의 키링, 이미지 출처: 서울경제신문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추구하는 일이다. 인권과 환경을 챙기는 일은 자본의 이윤을 추구하는 일과 상충된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지속가능성’이나 ‘ESG’를 추구하는 과정에는 타협하는 지점이 상당히 많이 생긴다. 결국, 소비자가 브랜드에 기대하는 도덕적인 행동과 기업의 실제 행동에는 괴리가 생기고, 이것이 그린워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윤리는 도덕적 가치를 포함하지만, 이것을 준수하는 것이 순수한 도덕성을 지향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번 발렌시아가의 논란으로부터 생각해볼 지점은 패션 브랜드가 추구하는 윤리의 맥락에는 자본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 가치까지 아우를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던 구찌나 프라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브랜드가 다양성을 외쳤던 이유가 더 많은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다양한 인종을 포용하기 위함이었다면, 여러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인종차별에 대한 가능성을 미리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결국 기업이다. 그래서 패션 브랜드의 윤리는 도덕적 행위보다는 경제적 행위가 맥락상 맞겠지만, 패션에서 얘기한 윤리적 가치에 자본이 연관되었다는 사실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제 도덕적 가치를 자본주의 사회에 적용할 만한 논리가 만들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약자를 챙기자는 소리는 순진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낭비와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는 경제적이고 전략적인 태도가 되었다. 먹고 사는 현실과 도덕적 가치 사이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는 방법론을 고민하게 된 것이 반갑다. 아마 이것은 소비자의 공통된 관심이 만들어낸 이 시대의 새로운 흐름이 아닐까.

  • “Ethics vs. Morals: What’s the difference?” Dictionary.com, 2022.8.18
  • 황진주, 임은혁,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쉽 스토어에 나타난 예술화」 한국의류산업학회지 제22권 제4호, 2020
  • 범서희, 임은혁, 「럭셔리 패션제품의 아티피케이션 연구」 한국의류학회지, 제45권 제2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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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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