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가들과
가까워지는 산문집 3권

고전 문학의 진입 장벽을 낮춰줄
작가들의 진솔한 삶이 담긴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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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그 작품을 창조한 사람과 먼저 친해지는 것은 그의 고전 작품에 대한 낯선 기분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책 속의 인물, 화자, 때론 작가와 교감하며 자신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이때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파악하고 있다면 책 내용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정도가 남달라지죠.

이름만 들어도 긴장하게 되는 불세출의 작가들이 있습니다. 위대한 거장의 삶은 어땠을까요? 오늘날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에서 겪은 소소하고도 인간적인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가들의 산문집을 소개합니다. 진솔한 기록 앞에 비로소 그들과 ‘친밀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외 25명,
『슬픈 인간』

“화분의 흙은 꾀죄죄한 먼지를 덮어쓰고 있지만 그 파릇파릇한 색을 보면 무정한 주인도 가끔 물 정도는 주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내 눈을 즐겁게 하려는 이기주의일까, 내가 아닌 외부의 것을 사랑하는 이타주의일까.”

_나쓰메 소세키 외 25명, 『슬픈 인간』

『슬픈 인간』
이미지 출처: 봄날의책

일본 산문은 옥구슬같이 섬세하고 정교하며 깔끔하고 위태로운 맛을 선사합니다. 그들은 만년필, 안경, 자전거, 길고양이, 남의 집 화단처럼 일상적인 것들에 기꺼이 시선을 보내는 감수성을 지녔습니다. 현대로 비유하자면 지금 당신의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 볼펜, 가방 같은 것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죠. ‘어떻게 이런 물건에서 이런 생각을 하지?’ 놀라울 정도로 독창적입니다.

물론 에세이 자체가 일상에서의 단상을 기록한 장르입니다. 기억의 편린들에 이런저런 사견을 붙여 나름의 이야기로 엮어내는 글이죠. 그런데 일본 산문은 여느 다른 문화보다 훨씬 더 일상적인 소재들을 가져와 굉장히 자세히 응시합니다. 거기에 그 일상을 대하는 자기 생각까지도 가감 없이 담백하게 그려내 단조로운 일상에 한 줄기 생동감을 부여해 냅니다. 자신의 사사롭고 솔직한 얘기들까지 문학으로 담아내 ‘사소설’이라는 장르까지 유행시킨 일본 문학의 특징이 묻어난달까요. 그래서 우리는, 작가들이 살았던 시대로 떨어진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됩니다.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 오사무, 이미지 출처: 봄날의책

이 책의 매력으로는 분명 제목은 ‘슬픈 인간’인데, 소소한 유머를 담아 정물을 관찰해 낸 글이 많아 실소를 터뜨리며 웃게 되는 산문집이라는 점입니다. 제목에 얽매여 편견을 가지지 마세요. 슬플 때 읽는다면 피식 웃게 되는 글들이, 단조로운 일상 속에 읽는다면 둘러싼 정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글들이, 행복할 때 읽는다면 희극이라는 가면 뒤에 드리워진 인간 본질의 쓸쓸함을 처연히 느끼게 하는 글들을 발견하는 묘미가 있는 산문집입니다.

산문을 통해 일본의 정서와 시선을 이해하고 나면 일본의 걸출한 고전 문학에 깔린 고요함과 아련함, 그 안에 담긴 통찰과 집념이 낯설지만은 않을 겁니다.


『슬픈 인간』 상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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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밤 산책』

“길을 걷는데 거리의 돌멩이 하나하나가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아저씨, 이 길을 돌아가 보세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기분도 달랠 겸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아무 생각에나 빠져들려고 했지만, 과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내 머릿속은 온통 빈민들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수천 명 대신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빈민 한 명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_ 찰스 디킨스, 『밤 산책』

『밤 산책』
이미지 출처: 은행나무 출판사

찰스 디킨스가 쓴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크리스마스 캐럴』은 어릴 적부터 들어온 동화 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주인공이 어린 소년이거나, 대충 보면 ‘순수함을 간직하자’ 같은 교훈을 남기는 내용이라 아이들이 읽기 좋은 내용이기 때문이죠.

동화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찰스 디킨스의 책 속 소년들은 고생과 차별의 현장에 내몰려 방치된 존재입니다. 작가는 보살핌받아야 마땅한 가장 순수한 존재들이 산업 혁명의 시대에서 발생한 극심한 빈부 격차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저널리스트의 시선을 담아 고발합니다.

찰스 디킨스
찰스 디킨스, 이미지 출처: British Library

귀를 멀게 할 만큼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모두 멈춘 밤. 디킨스는 고요한 어둠이 깔린 런던 거리를 헤매며 밤이 되어서야 드러나는 당대 대영제국 수도의 민낯을 속속들이 파헤칩니다. 도시의 부랑자, 유독 물질에 병든 환자들, 부패한 공공기관들, 밤 중에도 쉬지 못하고 학대당하던 노동자들… 거리를 헤매며 마주하는 도시 이면의 주인공들에게, 디킨스는 연민과 존경을 보내며 그들 모습 하나하나를 처절하게 기록으로 재현해 냅니다.

실제 디킨스는 잡지를 창간해 ‘비상업적인 여행자’를 자처하며 19세기 런던 거리의 일상과 인물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때로는 풍자 작가처럼, 때로는 날카로운 저널리스트로, 때로는 친근한 에세이스트로써 말이죠. 자칫 탐사 보도의 묵직하고 진중한 어조로만 글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디킨스는 특유의 재기발랄한 유머로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갑니다. 물론 친근하게 다가간 후에는 냉혹한 현실을 생생히 전달하며 펀치를 날리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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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나는 이 글을, 내가 사랑했던 한 존재의 그림자가 간신히 드러날 뿐인 글을 쓰고 있다.”

_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어느 개의 죽음』
이미지 출처: 민음사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애도한 적 있나요? 장 그르니에는 자신이 기르던 개 ‘타이오’의 죽음을 겪고, 타이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타이오의 죽음 이후를 견디는 자신의 마음을 펼쳐놓습니다.

진정한 슬픔은 형식과 관습에 매몰되어 저 먼 뒷순위로 밀려나기 마련입니다. 상실의 아픔 앞에서도 우리는 당장의 바쁜 현실과 숨 가쁘게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척’ 애써 힘을 내며 스스로와 남을 속이다가, 후회 없이 슬퍼하는 순간조차 놓쳐버리곤 합니다.

장 그르니에
장 그르니에, 이미지 출처: nuitblanche.com

하지만 장 그르니에는 사랑하는 존재의 고통과 그의 고통을 바라보는 스스로를, 그리고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는 세상을 조용한 눈으로 인지합니다. 그리고 아주 느린 호흡으로 하루하루 기록합니다. 섣부른 언어에 슬픔의 본질이 왜곡되지 않도록, 자신의 생각과 글 하나까지 자문하고 회상하고 검증하며 애도의 본질로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이 얇은 두께의 책을 들고 우리는 그가 지낸 애도의 기간만큼 오래 그 성찰의 여운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어느 개의 죽음』처럼 차마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의 기록에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작가와 나를 동일시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는 듯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철학자이자 위대한 작가들의 스승이었던 장 그르니에는 관조적인 철학적 시선으로 일상과 자연을 바라본 글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아무 배경 없이 접한 그의 철학은 자칫하면 회의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서정적 성찰이 짙은 베이스 노트로 깔려있답니다. 견고한 철학과 미학적 관점을 쌓기까지 그가 겪어내야 했던 세월의 섬세한 울림을 함께 느껴보세요.


『어느 개의 죽음』 상세 페이지
『어느 개의 죽음』 구매 페이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을 남긴 예술가나 철학자의 삶이란 전형적일 것 같습니다. 부유하거나 혹은 아주 비극적인 사연을 갖고 있거나, 천재적인 두뇌나 섬세한 예술적 감수성을 감당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등 왠지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선뜻 떠오르죠.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삶을 성실히 담아낸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위대한 작가라 해도 그들의 일상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꽤 아름다웠고, 적당히 고달팠으며, 이따금 핑크빛이었다가 지독하게 고통스럽기를 반복합니다.

고전 문학 한 작품은 작가가 온 생을 쏟아 만들어 낸 진주 같은 것입니다. 하나의 보석을 빚어내기까지 작가의 일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었고, 이 사람은 그 사건을 어떤 식으로 바라봤는지 따라가는 것은 그의 빛나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도 남습니다. 누군가의 솔직한 면을 보다가 그의 작품이 절로 궁금해지는, 나아가 그 작가에게서 느껴지는 동질감으로 도리어 내면을 위로받는 경험에 발을 디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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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빈

고전이라는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방황하고 반항하며 만드는 담론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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