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어떻게
우연을 도박으로 바꾸는가

표류 없는 디지털 시대
우연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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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첨예하게 결합한 21세기, 우연은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해 편성한 알고리즘이 우연을 효과적으로 대체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생태계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교란되었고, 심각한 변형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가 이용하는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은 알고리즘을 통해 효과적으로 우리의 집중과 무의식을 점령하고 수많은 결정의 순간에 개입한다. 아침부터 잠에 드는 그 순간까지, 아니 우리가 잠 들어있는 시간에도 알고리즘은 바삐 작동한다.


확증편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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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이 시절은 놀랍게도 불과 10여 년 전인데, 나는 새로운 책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가고는 했다. 새로운 음악을 듣기 위해 음반 가게에 갔고, 새로운 옷을 사기 위해 ‘패션의 거리’로 나갔다. 이 시절 내가 향유하고 소비하던 많은 것들은 내 몸의 행방을 따라 우연히 내게 다가왔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사르트르의 『시대의 초상』은 서점에서 우연히 선명한 붉은 색의 책등과 두께에 이끌려 집어 들게 되었고, 렌카의 데뷔 앨범은 여행 중 우연히 들른 레코드 샵에서 다른 음반을 사려다 우연히 누가 그 앨범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사서 듣게 되었다. 나는 그때 사르트르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며, 렌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우연한 만남은 지금까지도 내 취향과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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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떤가? 미술사를 연구하는 내가 등산 관련 책을 사는 일은 이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인디 락을 좋아하는 내가 힙합을 듣게 되는 일도 없다. 내 취향은 이제 알고리즘의 촘촘한 그물망 아래에 일동 차렷 자세로 정렬되어 있고, 새롭게 접하는 모든 것들 역시 다 알고리즘의 작동하에 내 입맛에 맞게 설정되어 있다. 이제 내가 추천받는 책, 음악, 상품, 기호, 사람들, 심지어 철학과 신념까지도 전부 디지털 플랫폼의 알고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스포티파이는 내가 들었던 음악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수와 앨범을 추천하고, 유튜브는 내가 시청한 강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강의를 추천해 준다. 인스타그램은 내 ‘친구-팔로워’가 좋아하는 다른 ‘친구-팔로워’를 내게 물어오고, 놀랍게도 그녀는 나처럼 미술계에서 일을 한다. 그야말로 확증편향의 시대다.


우연을 가장한 도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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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우리의 인지를 장악하는 방식은 그것이 우연을 가장하기 때문에 더욱 교묘하다. 『알고리즘 자본주의』의 저자 신현우는 알고리즘을 “인지기계”라 이야기한다. 그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근본적인 인지 행위 자체에 개입함을 지적하며, 알고리즘이 우리의 인지능력을 축소, 디지털 데이터 기반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처럼 우리는 알고리즘이 얼마나 촘촘하게 작동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이 그 알고리즘을 유용하게 하는 모든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음에도.

빅테크 기업이 이용하는 알고리즘은 매 순간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도록 갱신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작동 방식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없다. 지독한 불투명성이 알고리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다. 알고리즘을 둘러싼 불투명성이 알고리즘을 우연처럼 느끼게 한다.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광고와 콘텐츠가 마치 우연히 우리 앞에 나타난 것만 같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묘한 께름칙함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다. 왜 내가 사과를 사고 싶어서 구글에 사과를 검색하면 내 인스타그램에 사과 농원이 광고로 뜨는지, 왜 내가 이탈리아로의 휴가를 계획하다 보면 피렌체 숙박업소 광고를 유튜브에서 보게 되는지를 우리는 이미 안다. 알고리즘이 이미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은 이미 처참하게 난도질 당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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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사회가 거대한 도박장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연한 행운을 약속하지만, 그 뒤에는 어떠한 우연도 행운도 없는 도박장 말이다. 알고리즘이 돌리는 끝없는 룰렛은 우리에게 어떤 우연/행운을 주는 것 같은 제스쳐를 취한다. 특히 숏폼 컨텐츠를 소비하거나, SNS 피드를 내리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알짜 정보를, 좋은 기회를 우연히 발견하다니! 하지만 우리는 안다. 마치 도박장이 우연한 확률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언제나 그곳을 운영하는 자본가가 이기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기획된 것처럼 알고리즘 역시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이 도박장보다 더욱 우리를 절망스럽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우리 삶 모든 곳에 산재해있다는 점이다. 도박장은 사회적으로 그 위험성이 국가에 의해 관리되며(그럼에도 여전히 절망적인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지만) 국소적인 장소에 존재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은 그렇지 않다. 마치 산업혁명기 스모그가 불투명한 안개로 도시를 뒤덮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처럼, 알고리즘도 우리 사회를 불투명한 블랙박스 안으로 끌어들이며 수많은 사람들을 교묘하게 착취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알고리즘과 그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다국적 기업을 위해 일하고 있다. 가려진 노동보다 더 심각한 피해는 바로 우리의 사고가 이제 알고리즘적으로 새롭게 정렬되어 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바이럴’한 인생만이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우연도 보호구역이 필요하다.

우리가 나설 때가 되었다. 알고리즘을 해킹하고, 자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우연을 되찾기 위해 행동할 시간이다. 디지털 플랫폼과 알고리즘의 착취구조를 분석하는 많은 학자가 알고리즘에 대항하는 다양한 행동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더불어 미술사를 연구하는 내가 제안하고 싶은 방식은 역시, 예술의 역사를 되짚어 저항의 물결을 다시 한번 일으켜 보는 것이다.

기 드보르가 그린 심리지리적 지도

상황주의자 기 드보르(Guy Debord)는 1950년대에 자본주의 스펙터클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목적 없이 빠르게 걸으며 자신만의 심리 지리적 지도를 그려보는 ‘표류(dérive)’를 제시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목적성과 합리성에 잠식되어 소외된 삶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직접 도시를 걸으며 도시와 삶에 대한 인식을 되찾으려 했다. 드보르는 표류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기록한 『표류 이론』에서 우연(chance)이 표류 과정에서 발생하고 다양한 도시의 요소에 의해 우연이 가로막히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도시를 무작위적으로 표류하다 보면 반드시 우연한 마주침의 순간이 생겨나지만, 도시의 여러 지형과 흐름은 사실 우리를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우리가 인도가 깔려있지 않은 길보다는 인도가 깔린 길로 걸을 확률이 높고, 출입이 금지된 거대한 건물이 우리를 가로막으면 우리는 그곳을 우회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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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우연이 발생하고 또 가로막히는 체험을 반드시 포함하는 ‘표류’가 지금 이 시대에 더 큰 울림을 준다 생각한다. 21세기의 표류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 디지털 공간에서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도. 아무리 알고리즘에서 벗어나려 노력해 보아도, 사실 우리는 이미 촘촘하게 삶에 침투한 알고리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리즘을 의식하고 이를 거스르는 우연한 조우를 추구하다 보면, 우리가 어떤 지점에서 우연을 되찾게 되는지, 우연이 어떻게 가로막히는지를 알게 된다. 디지털과 실제적인 공간이 결합하는 이 시대에 새로운 인지적 지도를 그려보면서 우리는 알고리즘의 불투명성을 걷어낸다. 인터넷을 ‘서핑’하는 것을 멈추고 평소에는 검색하지 않았을 것을 검색할 때. 피드에 등장하는 맛집 추천 게시물을 누르는 대신 다른 사람들과 만나 직접 레스토랑을 추천받을 때. 사전 검색 없이는 가지 않았을 낯선 장소에 무작정 들어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나갈 때. 우리는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알고리즘을 거스르기도, 어떨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리즘 안에 포섭되기도 하면서 세계에 대한 스스로의 인지를 되찾아 나간다. 우리가 그렇게 알고리즘의 식민통치에서 되찾은 인지적 영토만큼, 우연은 살아남을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과정도 나에게는 일종의 ‘표류’다. 알고리즘에 포섭되지 않으려 직접 도서관을 헤매며 관련 도서들을 찾아냈고, 알고리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의견과 경험을 면대면으로 물어보았다. 그럼에도 플랫폼 알고리즘을 통해 본 영상과 게시물들이 이 글을 쓰는 데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이 글 역시 안티에그 인스타그램에 게시됨으로 누군가의 알고리즘 안에 들어갈 것이다. 이 표류는 때로는 알고리즘이라는 거대한 해류를 거슬러 가기도, 어느 순간 그 속에 휘말리기도 하며 끊임없이 세상 안에서의 위치를 찾아나간다.

알고리즘이 우연을 어떻게 멸종시키는지를 이야기하는 글이 알고리즘을 통해 전달된다. 이 글이 바이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이 글이 누군가에게 부디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서 교차한다. 우연과 알고리즘이 이 글 하나를 둘러싸고 묘한 자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표류가 만들어내는 모순이 나의 삶을 새롭게 인지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러한 모순이야말로 알고리즘 아래에서는 정렬될 수 없는 세상의 작동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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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예술과 사회, 그 불가분의 관계를 보고 기록하고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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