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몸은
어떻게 협소해지는가

바디 포지티브 운동은
몸 긍정에 도움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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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날씬한가? 혹은 날씬하고 싶은가? 날씬한 몸은 우리 사회의 표준이다. 표준이라는 작은 동그라미 속에 위치한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우리는 모두 그 좁은 자리에 서고자 노력한다. 그 노력은 건강 담론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부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표준 바깥의 사람에게 가해지는 차별, 그리고 표준의 경계를 그음으로써 안팎을 구분하는 배제의 시스템은 문제다. 이 시스템 속에서 날씬하지 않은 몸은 추한 것으로 여겨지고, 존중 받지도 못한다. 이에 다양한 몸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조명하고자 신체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그 과정과 한계를 들여다보자.


서구적인 체형이 지배하는 사회

신체 사이즈에 대한 논의는 여성에 초점을 맞춘다. 여성 신체에 대한 미적 기준이 남성보다 훨씬 좁고 강압적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 여성에게 몸의 크기와 형태는 미추를 평가하기 위한 절대적인 기준이다. 따라서 여성이라면, 대부분 신체 사이즈 또는 무게에 대한 강박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숫자를 재지 않더라도 거울 너머에서 몸의 생김새를 스스로 평가해본 적이 무수할 것이다. 그때 거울을 바라보는 눈은 스스로의 시선이 아니다. 여러 타인의 시선을 가정하고 바라본다. 사회의 미적 기준이 깊이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 Secret) 패션쇼의 한 장면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 Secret) 패션쇼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Fashionista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시대를 거치며 변화해왔다. 오늘날 우리의 미적 취향은 서구적인 몸을 표준으로 한다. 특히 패션은 19세기에 시작되고 20세기에 확산되기까지, 날씬한 신체 이미지를 이데올로기처럼 휘둘렀다. 모델 트위기, 케이트 모스 등 패션 산업에서는 길다랗고 마른 서구적 체형이 우상처럼 등장했고, 이러한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양산되며 단단히 굳어졌다. 한 세기 내내 여성의 신체는 날씬하도록 혹사당해왔을 것이다.

마른 몸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준은 마른 여성과 마르지 않은 여성 모두에게 가혹하다. 기준을 충족하는 데 성공하면 유지를 위한 고생이 이어져야 하고, 충족시키지 못하면 배제와 차별과 혐오를 겪어야 한다. 심지어 여성 신체의 크기와 형태는 단순히 미추를 구분하기 위한 기준을 넘어섰다. 마르지 않은 여성은 그 몸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삶의 자세와 성실성과 책임감, 성적 매력까지 함께 평가되며, 폄하당한다. 이제 몸의 생김새는 사람의 내면까지 감정하며, 일방적으로 낙오자의 딱지를 붙여버리는 것을 정당화한다.


다양한 몸을
포용하기 위한 운동

이렇게 여성의 몸을 집요하게 평가하는 사회에 반대하며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자기 몸 긍정주의)’ 운동이 등장했다. 이 운동은 “날씬하고 마른 비장애인 백인 여성”이라는 표준에 반대하고, 날씬하지 않은 몸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저항한다. 다양한 체형을 수용할 것을 주장하며, 자신의 몸이 어떤 모습이더라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외친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셀룰라이트나 튼살과 같이 금기시되는 신체적 특징도 가감없이 내보인다. 스스로 몸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고, 자존감을 북돋기 위한 움직임이다.

비만 수용 운동(fat acceptance movement)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이 운동은 1960년대에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논의된 비만 수용 운동(fat acceptance movement)에 뿌리를 둔다. 2010년 이후로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규모가 커졌다. 테스 홀리데이(Tess Holliday)나 애슐리 그레이엄(Ashley Graham)과 같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인플루언서로 성장하며 바디 포지티브 운동을 주도했고, 여러 사용자들이 해시태그를 통해 운동에 참여했다. 2023년 10월 현재 인스타그램에 ‘#bodypostiive’, ‘#bodypositivity’를 검색하면 각각 1,900만, 1,200만 개의 결과가 나온다.

덕분에 사회적 시선에 상처 입었던 많은 사람들이 용기와 위로를 받았다. 몸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은 무례를 넘어선 차별과 혐오의 행위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몸의 크기와 형태로 미추를 판단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여전히 미디어에서는 대부분 날씬한 사람들이 멋지고 아름답게 등장한다. 날씬하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스스로의 몸을 드러내길 꺼린다. ‘바디 포지티브’ 운동은 무엇이 부족했나?


바디 포지티브의
메시지가 가진 한계

비주류를 위한 운동은 끊임없이 그 진정성을 질문해야 한다. 변질되기 쉽고, 그 또한 협소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몸을 긍정하기 위한 메시지조차 사회적 권력과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바디 포지티브 운동은 남성 중심적 사회, 서구 중심적 사회의 입맛에 이리저리 맞추어졌다.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비좁고, 그에 대한 논의 또한 제한적이다.

1) 남성 중심적 시선

애슐리 그레이엄
애슐리 그레이엄, 이미지 출처: ebay

바디 포지티브의 메시지를 두른 플러스 사이즈 모델은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서 성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바디 포지티브 운동으로 알려진 미국의 가수 리조(Lizzo) 또한 성적으로 표현되는 이미지를 피할 수 없었고, 플러스 사이즈 모델 애슐리 그레이엄도 마찬가지다. 물론, 날씬하지 않은 몸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고, 몸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여성의 신체를 성적인 대상으로 제한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땐 신체 다양성의 포용보다는 성애화(sexualization)된 여성의 몸이 더 강조된다. 여성의 몸은 사이즈를 불문하고 대상화되며, 여전히 협소한 시선으로 해석된다.

2) 서구 중심의 논의

한국에서는 바디 포지티브 운동의 효과를 체감하기가 더 어렵다. 사이즈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북미를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바디 포지티브 운동이 한창 주목 받던 때에도 ‘백인 여성’ 중심으로, 다양한 인종을 아우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흑인 가수 리조의 존재가 그 지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하지만, 그 또한 여전히 미국 시민이다. 미국의 비만율은 약 40%로 한국의 8배에 해당하고, 플러스 사이즈 시장 또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한다. 즉, 한국의 플러스 사이즈 여성은 미국의 플러스 사이즈 여성보다 더 소수이고, 더 소외 받는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서구보다 더 서구 미적 담론에 매몰되어 있다. 더불어 소셜 미디어에서 군림하는 ‘바디프로필’, ‘갓생’ 담론은 플러스 사이즈 여성을 철저히 낙오된 자들로 만든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비만에 대한 인식이 혐오로 이어진다.


최근 악동뮤지션의 가수 이수현이 통통한 모습으로 방송에 등장했다. 부정적인 반응을 걱정했으나, 달라진 모습의 사랑스러움을 말하고 여전한 애정을 선사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의 건강을 바라는 마음과는 별개로,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주는 마음이 있었다. 그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낀다. 몸의 다양성을 말할 때 중요한 골자는 차별과 혐오의 손가락을 거두는 것이다. 열심히 운동하고 관리하는 몸은 당연히 훌륭하지만, 그렇지 않은 몸을 비난하는 것은 다른 맥락이다. 건강에 대한 논의와 협소한 미적 기준에 대한 문제의식은 구분된다. 세상의 권력이 차별적으로 작용하는 경우이니 특히 그렇다. 날씬하지 않음이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외관만 보고도 쉽게 일반화하는 속단, 그 사람의 하루를 속속들이 들여다보지 않고도 게으름이라 단정 짓는 오만이 문제라 답하겠다.

  • Biefeld, S. D., & Brown, C. S. (2022). Fat sexy, and human? perceptions of plus-size sexualized women and dehumanization. Body Image, 42, 84-97.
  • Cohen, R., Irwin, L., Newton-John, T., & Slater, A. (2019). #bodypositivity: a content analysis of body positive accounts on Instagram. Body Image, 29, 47-57.

김희량

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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