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의 궤도를 그리는 무용수
요안 부르주아

물리 운동과 무용으로 빚어낸
삶 속 일련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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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반복적이고 진부한 패턴 속, 삶의 많은 우연을 만나곤 합니다. 우연히 사랑에 빠지는 순간, 삶의 처절함을 느끼게 만드는 순간과 역경의 반동으로 더 박차를 가하게 되는 숭고한 순간까지 다양한 우연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삶에서 직면하는 우연과 우연이 겹겹이 겹쳐지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미래의 나로 이끌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단순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감동은 절대 단순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삶의 과정이 어쩌면 직선이 아니라 비정형의 곡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Success isn’t linear)’의 제목이 붙은 영상이 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영상 속 남자는 계단을 천천히 오르다가 옆으로 떨어지고, 바닥에 설치된 트램펄린의 반동으로 곧바로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계단을 오르다 다시 추락합니다. 재차 튀어 올랐다가 또 추락하는 모습은 일종의 고행과도 같이 느껴지는 도전인 것 같아 보입니다. 30번 넘게 쓰러졌다 일어나길 되풀이한 끝에 마침내 정상에 우뚝 서게 됩니다. 영상 속 무용수의 이름은 바로 요안 부르주아(Yoann Bourgeois), 물리학 법칙을 가지고 삶의 비정형성을 온몸으로 가시화하는 그의 궤도를 쫓아가보자 합니다.


현대무용과 서커스의 경계에서
중력을 가지고 노는 사나이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요안 부르주아의 작품을 보면 현대 서커스, 무언극, 현대무용 등 장르 경계가 모호한 혼합 형태의 퍼포먼스임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부르주아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같이 따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프랑스 브장송 서커스 학교에서 곡예 기술을 익힌 부르주아는 이후 국립서커스예술센터(CNAC)와 국립현대무용센터(CNDC)에서 병행 수학하였습니다. 어쩌면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서커스와 현대 무용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예술 화학 실험을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공연은 서커스와 현대 무용 중 어느 하나로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서커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강과 상승은 중력을 거슬러 가지만, 작품에서 무용수들은 오히려 중력의 법칙에 순응하곤 합니다. 하강할 때 느껴지는 현기증을 차용하면서도 현대 무용이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물리 법칙에 순응하지만 한계와 제약의 굴레를 벗어 던진 완벽하게 자유로운 움직임을 선보입니다.


운동 법칙이란 불가항력에 순응하는
완벽하게 자유로운 움직임

요안 부르주아 작품 ‘역사의 역학: 정점에 닿기 위한 시도(2017)’ 장면 중
요안 부르주아 작품 ‘역사의 역학: 정점에 닿기 위한 시도(2017)’ 장면 중, 이미지 출처: Géraldine Aresteanu
요안 부르주아, 역사의 역학: 정점에 닿기 위한 시도, 2017

2018년 파리 팡테옹에서 선보인 <역사의 역학(La Mécanique de l’Histoire)>은 그를 세계적 에술가의 반열에 올려 놓습니다. 작품에서는 중력, 원심력, 관성 같은 운동 법칙과 에너지를 비롯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회전 계단, 트램펄린, 오뚝이 등 설치물로 풀어냅니다.

작품 속, 회전하는 계단을 오르내리던 퍼포머가 꽃잎처럼 펄럭이며 계단 아래로 떨어집니다. 퍼포머가 떨어질 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그는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 보입니다. 트램펄린에서 가볍게 튀어 오른 무용수는 다시 계단을 걸어오고 날아오르는 몸짓에 중력에서 자유로운 존재인 듯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단은 빙글빙글 돕니다. 무용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고 낙하하고, 거꾸로 튀어 오르고, 걷고 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각기 다른 무용수들이 물리학의 법칙에 거스르기 보다는 동화하며 움직이는 모습은 오히려 숭고하면서도 억압되지 않으며 자유로운 움직임을 선사합니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움직임과 시공간이 돌고 도는 모습을 통해 부르주아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를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이 역사로 쓰인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습니다. 중력이라는 물리학적 불가항력에 순응하는 것이 고결하면서도 자유로운 몸짓을 선사하듯 삶의 시련을 피하는 것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이 오히려 한계와 제약을 벗어 던지는 것처럼요. 이렇듯 부르주아의 작품은 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대 무용의 부드러운 춤선으로 자연의 질서를 보다 부드럽게 전복해 자신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요소’로 탈바꿈함으로써 더욱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을 선보입니다.


극점을 향해 달려나가는
몸짓으로 인생을 함축하다

극점(local extremum point), 함수의 그래프의 특정 부분만을 놓고 대소를 비교했을 때 가장 함숫값이 크면 극대, 가장 작으면 극소라고 하는 것을 통틀어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어떤 극댓값은 극솟값보다 작거나 같을 수도 있기도 합니다. 필자는 인생 또한 별다를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특정 기간 동안 추구하고자 했던 극대점이 사실 극소점과 별반 차이가 없기도 하다는 것을요. 요안 부르주아도 마찬가지로 작품을 통해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반문합니다.

요안 부르주아, ‘푸가 트램펄린(FUGUE TRAMPOLINE)’, 2016

‘Cavale’, ‘Fugue / Trampoline’ 등 다양한 작품으로 변주된 작품 속, 트램펄린 옆으로 설치된 계단을 요안 부르주아가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계단은 인생에서 우리가 성취하려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곧 우리를 굴복시키는 요소임을, 트램펄린은 추락하더라도 어제의 몸짓에 담긴 에너지를 지속하게 하는 장치임을요. 계단을 오르다 트램펄린으로 떨어지고 다시 튕겨 오르기를 반복합니다. 원위치로 복귀하기도 하고 때로는 더 아래로 때로는 더 위로 복귀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 가운데 극점으로 향하기 위해 좀 더 걸어 오르거나 내리거나 몸의 방향을 틀거나 한 바퀴를 돌거나 하는 궤도를 만들어 내곤 합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어김없이 좌절하는 인물은 보통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과정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그가 그려내는 궤적에서 보여주는 감동은 오히려 숭고함을 선사합니다. 수동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 어느 순간 자의로 내려온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고 공간을 매운 공기들이 그를 받쳐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동작을 수행하는 몸 어느 한 군데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그의 춤선에 감탄하게 됩니다. 중력과 같은 운명에 동화하면서도 다시 이에 도전하는 숙명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삶의 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비결
바로 사랑

요안 부르주아의 ‘기울어진 사람들 (Celui qui tombe)’ 공연 중
요안 부르주아의 ‘기울어진 사람들 (Celui qui tombe)’ 공연 중, 이미지 출처: Géraldine Aresteanu
요안 부르주아, ‘기울어진 사람들(Celui qui tombe)’, 2014

관성, 물체가 밖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 또는 등속도 운동의 상태를 지속하려는 성질이라고 칭합니다. 삶의 고난 속, 흔들리지 않도록 당신을 지속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변수 가득한 운명 속, 삶의 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방법은 아마도 관성의 법칙을 사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그 관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각자마다 다르겠지만, 이 작품을 보면 불확실하고 처절한 삶 속에서라도 서로에 대한 믿음, 사랑이 있다면 삶의 관성을 지켜나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안 부르주아의 작품인 ‘기울어진 사람들(Celui qui tombe)’에서 물리학 법칙에 도전하고자 하는 무용수들은 신체적 한계를 넘나들며 긴장감을 만드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한계에 부딪히고 실패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를 지탱하며 계속해서 도전을 멈추지 않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플랫폼은 무대 위로 내려와 엔진 위에 안착하며 턴테이블이 됩니다. 서서히 돌아가는 판자 위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테이블 밖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세 명의 여자 무용수와 세 명의 남자 무용수는 안간힘을 씁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가 흐르는 가운데 회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원심력이 커지면 최대한 몸을 무대 중심 쪽으로 기울이곤 합니다.

요안 부르주아의 <기울어진 사람들> 공연 장면, 이미지 출처: LG아트센터

똑바로 서지 못하고 기울어진 모습으로 적응하는 모습이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관계가 이루어져 만나고 또 헤어지기도 하는 모습 등 턴테이블은 우리 삶의 축소판처럼 보입니다. 인생과도 같은 턴테이블 위, 위태로워 보이는 무용수들이 안정적으로 서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플랫폼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힘의 균형을 맞추어 서로를 향해 껴안고 지탱하는 순간이죠. 곡예를 하듯 기울어진 채 안고 있더라도, 상대방이 발을 바닥에 딛지 않아도 그 순간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무용수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운명 안에 도사리는 삶의 처절함, 위험을 딛기 위해 힘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건 아마도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애정과 타인을 믿고 지탱하며 균형 잡을 수 있는 사랑이지 않을까요?


YOUTUBE : 요안 부르주아
WEBSITE : 요안 부르주아
INSTAGRAM : @yoann_bourgeois


요안 부르주아 작품 모음, 출처 : 요안 부르주아 공식 유튜브

본인의 작품을 무용의 시(詩)라고 지칭하는 요안 부르주아는, 안무를 통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전달하는 매개자로서 자신을 정의합니다. 실제로 부르주아가 탐구하는 정지점, 역학, 중력과 같은 자연의 질서와 인생에서 당면하는 삶의 법칙처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미지의 것들을 극대화하거나 축소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 강조되는 것은 정지점처럼 보이지만, 결국 재현하는 것은 정지점이 아닌 정지점을 찾기 위한 투쟁인 것 같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다가온 하루를 떠올릴 수 있나요? 당면한 순간에 순응하였나요, 혹은 그에 도전해보았나요? 필자는 그 어떠한 궤적을 그렸던 간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운명에 순응하였더라도 그 자체로도 숭고하며 내일의 우리는 다시 고난에 대항하는 숙명을 살아낼 것이고, 도전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필연적으로 운명의 질서에 동화해야 하는 때가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요. 아무렴 어떠한가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 수 있는 춤을 있는 힘껏 지속하는 당신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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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바람들을 느끼며
예술의 향유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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