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루이스 칸의
모든 것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우연한 감각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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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에 필수불가결한 빛이라는 요소는 건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곤 합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 때에는 용도와 특성에 맞는 일사량의 조절, 향을 고려한 채광창의 디자인 등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지요. 기능적인 사항을 차치하더라도 빛과 그림자는 건축디자인에 있어서 다양하게 활용됩니다. 건축가의 의도에 따라 구축된 물리적인 환경에서 빛은 다양한 공간을 연출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죠.

계절과 시간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빛의 성질과 그에 따른 우연성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공간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렇게 탄생하는 새로운 공간은 우리에게 미시감을 경험시켜주며 생경한 감각을 일깨워 줍니다. 모든 건축가에게 빛을 다루는 것이 숙제이자 숙명처럼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빛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건축가가 있습니다. 현대건축의 계보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반박의 여지가 없는 건축가, 루이스 칸입니다. 빛을 통해 탄생한 그의 주요 작품을 함께 만나보시죠.


킴벨 아트 뮤지엄

빛과 침묵의 건축가라는 별명을 가진 루이스 칸은 미국에서 활동한 건축가입니다. 그는 모더니즘이 만연했던 당시의 건축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건축의 역사를 새로 쓴 위대한 건축가로 평가됩니다. 뛰어난 철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제시한 그의 건축적 이론과 개념은 새로운 지평을 넓히기에 충분했지요. 공간 구성의 논리, 형태를 취하는 방법, 구조적인 해법 등 수많은 사고를 통해 작품활동을 이어갔던 그의 건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탐구의 대상이 됩니다. 그의 다양한 철학이 온전히 담긴 작품으로 킴벨 아트 뮤지엄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빛을 통해 빚어진 대표적인 건물이기도 하지요.

이미지 출처: architectural record

킴벨 아트 뮤지엄은 미국 텍사스에 설립된 현대미술관입니다. 합리적인 건축계획, 주변 맥락과의 조화 등 훌륭한 계획안을 통해서 내로라한 건축가들의 경쟁 설계에서 당선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이 건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방식입니다. 천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반사판을 통해 볼트구조로 이루어진 둥근 천장 면에 부드럽게 드리웁니다. 인공조명 없이도 은은하고 온화한 실내 환경을 조성했지요. 또한, 햇빛의 변화에 따라 미술관 내부의 밝기도 자연스럽게 변화하여 더욱 특색있게 느껴집니다. 평범하게 느껴질 수 있던 공간에 단순하고 명쾌한 장치를 통해 전혀 다른 공간을 탄생시킨 셈이지요.

이미지 출처: flickr

공간 자체가 하나의 미술작품처럼 다가오는 킴벨 아트 뮤지엄은 1972년에 준공되었지만, 그 어떤 현대미술관보다 세련된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전시 목적의 건축물에서 관람에 적합한 조도를 설정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빛에 의한 작품의 훼손도 세심하게 고려되어야 하지요. 루이스 칸은 이 모든 것을 단 하나의 해법을 통해 해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시 영역 이외에도 진입 로비, 내부 중정, 외부 테라스 등의 영역에서도 자연광의 유입을 다양화하여 더욱 풍성하고 아름다운 미술관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미지 출처: papercity

엑시터 도서관

도서관이라는 시설도 미술관이나 박물관 못지않게 빛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직사광선에 의한 서가의 책이 훼손되지 않도록 계획되어야 하며, 열람실에는 책 읽기에 편안한 빛 환경이 제공되어야 합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공공시설인 도서관은 로비나 홀과 같은 공용공간 디자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실험이 이루어지기도 하지요.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은 그의 작품을 통해 도서관이라는 시설에 대한 일종의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미지 출처: architecture history

미국 뉴햄프셔에 위치한 엑시터 도서관은 그의 대표작을 넘어 건축계에서 매우 중요한 건축입니다. 이에 오늘날에도 수많은 논문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티에그에서 소개된 바 있는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역시 엑시터 도서관과 상당 부분 비슷한 구성을 보이기도 하지요. 엑시터 도서관은 중앙에 거대하게 비워진 아트리움과 그 주변을 둘러싸는 자료영역 및 열람영역으로 구성됩니다. 기하학적인 콘크리트 구조와 다양한 층고 구성을 통해 새로운 공간감을 연출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디자인 어휘는 이후 다카 국회의사당에서 더욱 발전되어 적용되기도 하였지요.

이미지 출처: architecture history

건물 외곽에 캐럴이라고 하는 프라이빗한 독서 공간은 높은 층고를 확보하였고, 이곳에는 충분한 자연광이 유입되어 독서에 적합합니다. 책상의 높이와 크기가 고려된 창문에는 비행기처럼 블라인드가 함께 설치되었지요. 목재와 벽돌, 콘크리트로 구성된 독서 공간에 드리우는 빛은 명문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 최고의 학습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도서관의 백미는 아트리움의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입니다. 그 빛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다양하고,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드리우며 우연한 그림자를 통해 명암을 드리웁니다. 단순한 도형으로 구축된 차가운 콘크리트 면에 맺힌 따스한 감각의 빛은 신비한 공간을 연출하지요. 빛을 통해 우연히 만들어진 도서관 내의 풍경은 단순히 책을 담는 것이 아닌, 책을 읽는 사람들을 담아내는 시설로서의 도서관을 강조한 그의 의도를 명징하게 보여줍니다.

이미지 출처: archeyes

솔크 연구소

솔크 연구소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있는 세계적인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소입니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저명한 학자 조너스 솔크에 의해 설립되었지요. 태평양 인근에 자리 잡은 이 연구소는 거대하게 비워진 광장을 중심으로 양 측면에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광장의 중앙에는 얇은 물길이 내어져 있고, 그 외에는 어떤 요소도 없이 미니멀하게 구성되었습니다. 루이스 칸의 초기 계획안은 광장에 나무식재를 하여 푸른 정원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멕시코의 조경가이자 건축가인 루이스 바라간의 의견에 따라 광장을 비워두게 되었지요. 간결한 광장은 태평양의 하늘을 온전히 품게 될 것이라는 바라간의 조언은 매우 유명한 건축계의 일화입니다.

이미지 출처: salk.edu

‘비움으로 채운다’라는 표현은 철학적 깨달음으로 비롯되어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곤 합니다. 건축 분야에서도 흔하게 사용되는 문구입니다. 솔크 연구소는 그 표현이 매우 잘 맞아떨어지는 건축물이지요. 비워진 광장을 통해 모든 순간의 빛을 받아들이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공간이 탄생했습니다. 비움을 통해서 더 많은 자연과 빛을 채운 셈이지요. 자연을 배경 삼아 만들어진 솔크 연구소는 지역의 장소성을 그대로 녹여내어 유일무이한 작품이 되었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공간의 특별함으로 인해 공연, 전시 등의 행사가 이루어지기도 하며, 작년에는 루이 비통의 패션쇼가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salk.edu

연구소의 각 연구실은 모두 태평양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계획되었습니다. 모든 연구원에게 태평양의 조망을 제공한 셈이지요. 또한, 연구동에 여러 개의 선큰 정원을 두어 자연광이 드리우는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는 연구실 복도까지 빛을 끌어들여 밝고 쾌적한 연구 환경을 제공하지요.

이미지 출처: archeyes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우리는 간혹 무료함과 지루함을 느끼곤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에도 대부분 동의하겠지요. 카이스트 물리학 박사인 정재승 교수에 의하면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사건의 축적’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자극되는 새로운 사건이 많은 경우에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이지요.

새롭고 특별한 사건은 우연에 의해서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일련의 사건들을 떠올려 보세요. 나의 예상, 루틴에서 벗어난 것들의 기억이 오래도록 추억이 되어 남아있지 않나요? 오늘은 우리에게 가볍고 새로운 자극을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고 나의 공간에 우연히 드리우는 햇빛을 맞이하는 행동으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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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글을 짓고, 집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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