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발견의 기쁨
유럽 플리마켓 3곳

파리부터 베를린까지
여행자의 낭만적인 산책
Edited by

느긋한 걸음걸이와 호기심으로 초롱초롱한 눈빛, 기린처럼 목을 내밀고 주변을 기웃거리는 몸짓까지. 플리마켓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광경인데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플리마켓은 골동품과 중고 상품을 거래하는 대규모 시장으로, 이제는 하나의 문화이자 즐거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주말이 찾아오면 도시별로 각양각색의 시장이 열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죠. 우연히 마음에 드는 물건을 예상치 못하게 발견하는 기쁨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데요. 파리부터 베를린, 그리고 런던까지. 에디터가 직접 다녀온 유럽의 대표 플리마켓 3곳을 소개합니다.


고유한 이야기를 간직한
낡고 오래된 물건들

영어로 플리마켓(flea market)은 말 그대로 벼룩시장인데요. 벼룩시장이라는 단어는 19세기 말 프랑스의 중고 시장 이름 ‘Marche Aux Puces’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어로 ‘Puce’는 ‘벼룩’, ‘적갈색’을 뜻하는 단어로, 벼룩이 있을 만큼 오래된 물건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죠. 혹은 가구처럼 갈색빛의 상품을 거래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는 속설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비록 낡고 조금은 빛바랬을지라도 오래된 물건은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데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서랍 속에 숨어 있을 듯한 엽서나, 한때는 아끼는 물건이었을 필름 카메라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이들이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처럼 말이죠. 어떤 주인과 무슨 추억을 쌓아왔을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매대 사이를 찬찬히 걸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산책하곤 하는데요. 한국에 동묘 시장이 있다면 유럽에서도 다양한 플리마켓이 개최됩니다. 파리부터 베를린, 그리고 런던까지. 유럽 도시별 유명 플리마켓의 생생한 현장을 전해드릴게요.

1) 방브 플리마켓

방브 플리마켓(Marché de Vanves)은 현지인이 많이 찾는 파리 3대 플리마켓 중 하나인데요. 규모는 아담하지만 한적한 주거지역인 파리 14구에 위치해 여유로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나란히 뻗은 가로수 그늘에는 400여 개의 노천 상점이 자리 잡고 있는데, 시장 초입에서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연주하는 할아버지의 연주에 잠시 귀 기울여 볼 수도 있죠.

낭만의 도시답게 시장에는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물건이 많았는데요. 예술 서적부터 인테리어 소품, 액세서리, 그림 등 다양했지만 그중 아름다운 식기류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단풍이 든 나뭇잎 모양 접시부터 투명한 바다 빛깔의 와인잔, 그리고 섬세한 꽃이 그려진 주전자까지. 오전의 맑고 깨끗한 햇살 아래 반짝이는 물건들을 보면 한 폭의 정물화를 감상하는 기분도 들었죠. 방브 플리마켓은 주말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고 점심 무렵이면 폐장하는 분위기라, 일찍 일어나는 새만이 원하는 물건을 가질 수 있답니다.

2) 마우어파크 플리마켓

누군가 베를린에 간다면 1순위로 추천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마우어파크 플리마켓(Mauerpark Flohmarkt)인데요. 독일어로 ‘Mauer’는 장벽을 뜻하는데, 독일 분단 시절 있었던 장벽이 허물어지고 남은 공터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지금의 광활하고 푸르른 모습으로 탄생하게 되었죠. 매주 일요일이면 베를린 최대 규모의 플리마켓이 열려 공원은 신나는 축제 분위기로 변신합니다.

끝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들판만큼이나 시장은 풍성한 볼거리로 넘치는데요. 빈티지 의류부터 카메라, LP, 맥주잔 등 폭넓은 종류의 제품부터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핸드메이드 소품까지 만나볼 수 있죠. 때로는 ‘이런 것도 판매한다고?’ 싶을 만큼 엉뚱한 잡동사니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잠시 출출함을 달래고 싶다면 독일 유명 길거리 음식 ‘커리부어스트’를 비롯한 각종 식음료를 판매하는 푸드트럭을 방문하거나, 공원 곳곳에서 열리는 버스킹 공연을 즐겨도 좋습니다. 도심 속 자연에서 편하게 휴식하며 자유로운 에너지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3) 포토벨로 로드 마켓

이미지 출처: Estate Agents Notting Hill

포토벨로 로드 마켓 (Portobello Road Market)은 런던을 대표하는 플리마켓인데요. 19세기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시장으로 시작해 1940~50년대부터는 골동품을 거래하는 장소로 점차 발전했다고 합니다. ‘Notting Hill Gate’ 지하철역에서 조금 걷다 보면 파스텔톤의 알록달록한 건물이 등장하는데요. 사실 포토벨로 거리는 영화 <노팅힐>의 촬영지로도 유명합니다. 시장이 가장 크게 열리는 토요일이면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북적해 활기를 느낄 수 있죠.

포토벨로 마켓은 런던 최대 규모의 시장답게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2천여 개의 상점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요. 문고본의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 영국의 유명 출판사 ‘펭귄북스’의 중고 책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용품을 판매하는 가게도 자주 보였죠.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명소라 전체적으로 가격은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영국 느낌 물씬한 앤틱한 소품을 구경하기에는 손색이 없습니다. 거리의 끝자락에 이르면 신선한 과일부터 길거리 음식을 판매하는 가판대에서 간식 시간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플리마켓에서 보석 같은 물건을 발견하는 방법은 간단한데요. 두 눈을 또렷이 뜨고 사물을 하나씩 세심하게 둘러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동안 물건 사이를 헤매다 보면 나에게 꼭 어울리는 운명 같은 단짝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죠. 우연한 발견의 기쁨은 주변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살피는 관찰자에게만 찾아오는 특권일지도 모릅니다. 플리마켓에서뿐만 아니라, 당신의 일상에도 더 많은 우연한 기쁨이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Picture of 서하

서하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고 싶습니다.

에디터의 아티클 더 보기


문화예술 전문 플랫폼과 협업하고 싶다면

지금 ANTIEGG 제휴소개서를 확인해 보세요!

– 위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로 ANTIEGG에 저작권이 있습니다.
– 위 콘텐츠의 사전 동의 없는 2차 가공 및 영리적인 이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