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에 비해 간편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개인의 취향을 뾰족하게 파악하고, 서비스와 플랫폼의 성장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경로를 제시하죠. 하지만 간편함은 새로운 것을 탐구할 의지를 무너뜨리고, 다양성에서 오는 피로감은 우리를 익숙하고 한정된 공간으로 인도합니다. 만약 여전히 독특하고 신선한 감각을 원한다면, 익숙한 시스템을 파고드는 깊이보다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는 확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색다른 방식으로 음악, 영상,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세 가지 플랫폼을 정리해 봤습니다.
밴드캠프 Bandcamp
음악과 아티스트 곁에서 직접 호흡하기
밴드캠프Bandcamp는 음원•음반을 스트리밍 및 구매할 수 있는 사이트입니다. 하지만 여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과 차별되는 운영 방식을 갖추고 있죠. 그들이 소개글에서 직접 언급하듯, 밴드캠프는 음악의 열성적인 청취자가 아티스트에게 직접 서포트할 수 있는 창구입니다. 기존의 스트리밍 플랫폼과 달리 음원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아티스트가 플랫폼에 직접 음원을 등록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죠. 그리고 이와 같은 특징은 아티스트에게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갈 뿐 아니라, 청취자 역시 인디와 언더그라운드를 비롯해 다양한 아티스트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밴드캠프에서는 무료 스트리밍과 함께 아티스트가 직접 자신의 음원 구입 금액을 책정할 수 있고, 여기에 음원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추가로 팁을 붙여 결제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아티스트가 따로 금액을 책정하지 않았다면 단돈 1$만 지불해 음원을 다운로드할 수 있고요. 이처럼 단순한 음원 등록 방식은 대형 유통사나 큰 규모의 마케팅을 진행하기 어려운 인디 아티스트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는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밴드캠프는 라디오헤드Radiohead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등 유명 아티스트부터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 페기 구Peggy Gou, 세이수미Say Sue Me 등 다양한 국내외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특히 해외 이용자와 헤비 리스너가 많기 때문에 한국 아티스트가 해외 리스너의 입소문을 타는 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 인디음악 시장에서 유례없는 관심을 모았던 공중도둑의 <무너지기>와 파란노을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은 밴드캠프에서 먼저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요.
이에 더해, 밴드캠프에서는 다양한 포맷과 고품질 디지털 음원을 넘어 CD와 바이닐, 카세트 등 실물 음반은 물론 의류 등의 머천다이즈를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창작자가 만든 팟캐스트를 듣거나 ‘Bandcamp Daily’에서 음악 관련 소식 및 작품 추천 아티클을 읽을 수도 있죠. 이처럼 밴드캠프가 창작자 뿐만 아니라 우리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이점은 다양합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의 독창적인 아티스트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에게 보다 직접적이고 큰 수익과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은 그 어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볼 수 없는 특징입니다. 국가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인디 아티스트와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또 아티스트에게 적극적인 서포트를 하고 싶은 리스너라면 밴드캠프는 지극히 매력적인 저장고처럼 느껴질 겁니다.
비미오 Vimeo
알고리즘 너머 창작자의 감각을 응시하는 플랫폼
오늘날은 영상의 시대라 일컬어도 부족함 없을 만큼 수많은 영상 관련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전 세계 거대 미디어 그룹이 달려드는 OTT 서비스가 조금씩 정리되는 한 편, 영상의 길이나 퀄리티를 불문하고 수많은 영상이 게재되는 플랫폼은 유튜브가 장악하고 있죠. 소비자의 취향이나 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플랫폼을 선택할 수 있지만, 이런 플랫폼이 등장한지도 수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모든 형식에 지극히 익숙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비미오Vimeo는 OTT와 유튜브 사이에서 흥미로운 절충안이 될 수 있습니다. OTT보다는 유튜브에 가까운 시스템을 지닌 비미오의 차별점은 소비자보다 창작자의 활용에 초점을 둔 플랫폼이라는 점입니다. 여타 서비스와 유사하게 구독 요금제를 실시해 클라우드 스토리지와 영상 편집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영상 게재와 관리의 편리성을 더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죠. 그러나 이는 보편적인 소비자에게도 매력적인 요소가 되는데요, 저작권 등 창작자의 권리를 우선시하고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만큼 독창적인 영상 창작자가 만든 훌륭한 품질의 영상을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비미오에 게재되는 영상은 단편영화와 광고 영상부터 뮤직비디오, 중-장편 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세계 유수의 기업이 제작하는 OTT 플랫폼의 영상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작품 퀄리티는 이에 뒤지지 않고, 유튜브처럼 다양한 영상을 만날 수 있지만 그보다 독창적이고 프로페셔널한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죠. 특히 비미오는 스태프 픽Staff Pick 시스템을 통해 플랫폼이 직접 큐레이션 해 영상을 추천하는데, 이는 알고리즘과 다른 매력으로 소비자와 창작자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습니다.
만약 유튜브의 랜덤한 영상 퀄리티와 OTT의 너무도 거대한 자본력에 지쳤다면, 비미오에서 전 세계 독창적인 창작자가 게재한 영상이 이를 훌륭하게 환기시켜 줄 것입니다. 뉴요커The NewYorker가 제작한 흥미로운 주제의 다큐멘터리부터 나이키Nike 광고와 RM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제작자가 직접 게재한 영상, 각국의 영상 창작자가 고유의 관점으로 만든 독특한 감각의 단편 영화를 감상한다면 우리가 소비하는 영상의 세계는 더욱 다채로워질 것입니다.
아레나 Are.na
연결에서 비롯되는 시각적 확장
앞서 설명한 음악과 영상이 대체로 ‘감상’에 가깝다면, 사회 보편에서 이미지는 ‘소비’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한 뼘 크기 스마트폰 스크린 위로 쏟아지는 이미지는 전황에서 느껴지는 황량함부터 당장 내일이면 잊힐 밈의 가벼움까지 다채롭고, 우리는 이를 스크롤과 스와이프로 간편히 해치우곤 하죠. 그리고 SNS와 인터넷에서 발견하는 랜덤한 이미지를 넘어, 우리는 때로 직접 이미지를 찾아 나섭니다. 작업에 시각적 영감을 필요로 하는 창작자와 친구에게 공유할 밈을 찾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핀터레스트Pinterest라는 이미지 바다로 뛰어들죠.
온갖 인터넷 연결망에서 포집한 이미지의 방대함과 원하는 주제로 분류해 저장하는 핀Pin 기능은 핀터레스트의 알파이자 오메가로서 수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선정적이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여과 없이 내보내는 수집 방식과 분류-저장에 그치는 이용 환경은 아쉬움을 남기죠. 작업을 위해서든 흥미를 위해서든 이 과정에서 같은 아쉬움을 느낀 독자분들께는 아레나Are.na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아레나는 디자인, 사진, 모션 그래픽, 건축, 미술 등 수많은 이미지를 담은 저장고이며, 이미지와 이미지, 유저와 유저를 잇는 네트워크입니다. 아레나에서 유저는 자신의 작업물을, 혹은 흥미로운 이미지나 영감을 주는 이미지와 인터넷 링크를 올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를 컬렉션에 저장할 수도 있죠. 여기서 아레나가 제시하는 차별점은 전술한 ‘연결’에 있습니다. 아레나는 이미지를 블록block으로 취급하며 이것을 채널channel에 연결하도록 유도합니다. 핀터레스트가 이미지를 저장(핀)하고 분류해 나만의 보드를 만드는 결과에 초점을 둔다면, 아레나는 이미지를 연결하고 공유함으로써 다른 이들과 연동하는 과정을 중시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레나가 강조하는 ‘함께’의 의미는, 이미지(블록)와 주제(채널), 유저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이용자는 또 다른 이용자를 팔로우하고, 내가 분류한 채널에 새로운 이미지를, 혹은 다른 유저의 채널을 연결하면서 나의 영감과 취향을 바탕으로 타자와 교류합니다. 이는 많은 콘텐츠 플랫폼이 소구하려 노력하는 ‘커뮤니티’와 ‘소셜 네트워크’의 본질인 연결과 교류의 이점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때로 작업과 탐구를 가로막는 건 환경이나 타자가 아닌 나 자신일 때가 많습니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타인과 교류하며 새로운 경로를 찾는 일이고, 아레나는 이미지와 시각적 장벽에 가로막힐 때 타인의 시선과 관점을 이식받을 수 있는 교류의 창이 될 것입니다.
새로움에서 오는 낯선 감각과 흥미는 때로 익숙함과 게으름으로 인해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하지만 창작자와 소비자, 콘텐츠와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신선한 대상을 갈망한다면 성취를 위한 탐구를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현시대에서 우리는 특정 대상을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아주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죠. 대형 유통사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좋은 음악은 수두룩하고, 알고리즘이 아닌 사람의 추천으로 감상한 영상은 내게 익숙지 않은 감동을 줄 수 있으며, 단순히 멋진 이미지를 저장하지 않고 그들 간의 연결을 도모함으로써 새로운 취향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분야가 아니더라도, 만약 독자 여러분의 취향이 정체된 것 같다면, 혹은 영감의 원천이 막힌 것만 같다면 소비의 방식을 낯선 방향으로 바꿔보세요. 익숙함을 벗어날 용기를 내야만 우리가 원하는 새로움을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