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만족감은 상대적입니다. 책을 예시로 들어볼까요?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 무작정 찾아간 서점. 진열대에 쌓인 책 중 <당신의 삶이 술술 풀려요>라는 가상의 자기 계발서를 찾았다고 칩시다. 근데 가격이 4만 원인 거예요. ‘전공 서적이나 도록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비싸?’ 그래도 삶이 술술 풀린다고 하니까 몇 페이지 읽어보는데, 지금 필요한 조언과 지혜들이 모조리 적혀 있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돈을 지불하고, 근처 카페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완독합니다. 어쩐지 ‘삶이 술술’ 풀릴 것 같은 예감도 들고요. ‘4만 원에 이렇게 만족스럽다니!’
정답인 소비는 없습니다. ‘내가 얼마큼 만족스럽냐?’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서비스와 제품이 존재하고, 그보다 많은 소비자가 있으며, 더 많은 의견과 정보가 존재하죠. 그래서 우리는 학습지 정답지를 찾듯, ‘소비의 정답’을 구하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정답처럼 보이는 타인의 의견과 조언 아래, <당신의 삶이 술술 풀려요>는 오답이 되고 말아요.
그래서 나만의 ‘소비 기준’이 필요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도록, 나를 위한 만족감을 채울 수 있도록 말이죠. 소비의 기준을 제안하는 플랫폼들을 소개합니다. 자동차, 술, 패션 등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물품별로 구분해서요. 고유한 관점 아래 짜인 제안을 천천히 되뇌면서, 나는 어떤 기준으로 소비하는 사람인지, 어떤 걸 샀을 때 만족하는 유형인지 사유해 보세요.
<THE PARK>
자동차
자동차도 내가 고른 물건 중 하나라는 걸 명심하자
나의 소비가 평가 절하될 때, 가장 ‘발끈!’하는 물건이 뭐가 있을까요? 값이 비싸고, 구매를 결정하는데 고려할 요소가 많고,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바로 고관여 제품입니다. 그중에서도 자동차는 가격대가 촘촘하고 비교군이 많으며 소비와 경제 수준을 가늠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다 보니, ‘자동차가 곧 나의 모든 것’으로 간주하기도 하죠. 디자인과 인테리어는 당연하고 성능과 편의성과 같은 퍼포먼스도 중요해 만족도의 기준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X 살 돈이면, Y를 사거나 더 보태서 Z를 사고 말지’라는 말도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만큼 소비 대비 만족도를 완벽히 채우기 어렵다는 뜻이겠죠.
<THE PARK>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유튜브 채널입니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과 영상 채널인 유튜브가 양립할 수 있는 단어냐고요? 메인 콘텐츠인 자동차 시승기 및 리뷰를 보면 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영상을 만드는 관점이 기존의 자동차 전문 채널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판적인 태도로 자동차를 뜯어보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가져올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중심으로 차를 시승하고 설명하죠. 자동차의 제원과 성능 등 필수적인 정보를 다루면서도, 이 자동차를 고른 차주들의 취향은 어떨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지 등 ‘개인을 이루는 자동차’로서 차량을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해당 차량을 고를만한 포인트를 세심히 골라 설명을 하죠. 정말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스러운 제안 방법 아닌가요? 영상 속 정우성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 자동차도 ‘나’라는 자아를 투영할 수 있는 근사한 제품으로 보입니다.
<THE PARK>를 운영하는 정우성 대표는 매거진 에디터 출신입니다. <GQ>와 <에스콰이어>에서 100권이 넘는 잡지를 만들었죠. <THE PARK>의 영상이 ‘하나의 세련된 제안’처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10월에 업로드된 ‘캐스퍼 일렉트릭 시승기’에서 정우성 대표는 ‘어떤 물건을 들였을 때, 또 다른 생각과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새롭게 도전하고 싶게 만드는 여지를 만드는 것’이 좋은 물건이라고 말합니다. 의 제안을 귀담아듣다 보면, ‘좋은 자동차’를 고르는 나만의 단단한 기준이 생길 것 같습니다.
YOUTUBE : 정우성의 더파크 THE PARK
INSTAGRAM : @thepark_woosung
<뉴술레터>
술
술은 어떻게 마시는 지도 중요한 기호 식품이다
주변에 위스키나 와인을 즐기는 지인들이 부쩍 많아져서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질 때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기한 술을 접하곤 합니다. 역시 술은 직접 사서 마셔봐야 내게 맞는 술을 고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맨날 술을 마시면 간이 망가질 거고, 음식과 곁들였을 때 맛이 좋은 술도 있잖아요? 게다가 가격 범위도 넓어서 어떤 것부터 고를지도 모르겠고, 기껏 레스토랑에서 추천받은 술이 영 입맛에 맞지 않아 곤혹스럽기도 합니다. 찍어 놓기 만한 와인 라벨들을 보면서 속으로 되뇝니다. ‘만족스러운 술 하나를 찾을 때까지의 여정을 아주 조금이라도 보조해 줄 전문가가 옆에 있으면 얼마나 편리할까…’
<뉴술레터>는 주당들을 위한 뉴스레터로 매주 수요일마다 추천 술과 할인 정보를 모아 발행하고 있습니다. 신상 술을 소개하는 코너인 ‘NEW SOOL’은 주류에 진심인 사람이 아니라면, 발견하지 못할 새로운 술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캔 하이볼, 국내 양조장에서 빚은 증류주와 막걸리, 프리미엄 블렌디드 스카치위스키 등 ‘신상’이라면 주종과 가격대 상관없이 소개합니다. 좋은 술에 투자할 준비가 된 마니아부터, 필자처럼 가볍게 여러 종류를 즐기길 원하는 라이트 유저까지 눈여겨볼 만한 정보가 많죠. 뉴스레터 마지막엔 할인 정보까지 모아서 보여주니, 소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친절히 조언을 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뉴술레터>가 특별한 점은 ‘만족스럽게 술을 즐기는 방법’을 제안한다는 점입니다. ‘술공간’는 매주 테마에 맞추어 멤버들이 직접 방문한 맛집과 함께 곁들이 주류를 소개합니다. 이번 주 테마가 ‘캠핑’이라면, 캠핑에서 즐길 만한 술과 안주를 소개하는 식으로요. 주당들이 직접 차린 술상이나, 좋아하는 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우리들의 일상음주’ 코너에서는 술을 즐기는 다채로운 방식과 ‘지인이 추천하는 술’을 접했을 때처럼, 생동감 넘치는 음주 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뉴술레터>를 하나씩 받아 보면, 술을 사고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원숙한 취향으로 즐기며 만족하는 방법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NEWSLETTER : 뉴술레터
INSTAGRAM : @newsooletter
<슈프라이즈>
패션
드로우와 래플은 정보 소화력을 겨루는 게임이다
구매 자격을 추첨하여 판매하는 방식을 일컫는 ‘드로우(Draw)와 래플(Raffle)’는 패션 업계에서 주로 사용되던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한정된 수량의 제품을 구매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희소성으로 제품과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지요. 노골적인 희소성 어필로 대중들의 무분별한 소비와 시세 차익을 노리고 물건을 되파는 ‘리셀’을 조장한다는 논란도 일었습니다. 하지만, 추첨 판매는 패션 업계를 넘어 마케팅 분야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방식이 됐고, ‘한정판’과 ‘리셀’은 브랜드 가치와 성장을 담당하는 시장 논리로 자리 잡았죠. 드로우 시장에서 소비자는 희소성에 휘둘리는 맹목적인 객체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소비자인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슈프라이즈’는 전 세계 한정판 신발 발매와 응모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자 커뮤니티 채널로, ‘한정판’을 하나의 문화로 정의하고, 해당 문화를 깊고 다채롭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한정판’과 소비자 간의 접점을 늘려 가고 있습니다. 우선 플랫폼으로서 정보의 응집성이 훌륭합니다. 자사 몰을 비롯해 KREAM, 솔드아읏, StockX 등 주요 드로우 & 리셀 플랫폼의 판매 랭킹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월 별로 발매 예정인 제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응모 사이트로 넘어갈 수 있도록 페이지를 구성해 ‘한정판 쇼핑’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죠.
한정판 문화를 만들어가는 움직임은 ‘컬쳐’ 카테고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매 정보’ 코너처럼, 실제 구매 시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는 기사 콘텐츠도 있지만, 필자가 주목한 건 ‘루머’ 코너입니다. 한정판은 정보의 속도전입니다. 루머에 정통해야 발매 시기를 예측하고, 구매 리스트를 정리할 수 있지요. 산발적으로 쏟아지는 루머를 모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한정판 문화에 대한 접근성을 낮추고 소비까지의 과정을 착실히 보조할 수 있는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슈프라이즈의 ‘루머’ 콘텐츠는 한정판 문화를 향유하는 가장 기초적인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WEBSITE : 슈프라이즈
INSTAGRAM : @shoe_prize
작년, 지프의 레니게이드라는 모델에 꽂혀 (당장 살 여력도 없지만) 자동차 커뮤니티와 유튜브를 뒤지며 레니게이드의 정보를 찾은 적 있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여론이 대부분이더라고요. 가격 대비 퍼포먼스와 옵션이 아쉽고, 내부 디스플레이가 투박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자동차에 빠삭한 지인도 ‘예쁘긴 한데, 그게 다잖아?’라고 하길래, (지금 살 것도 아닌데) 다른 차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것인지, 자동차를 구매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그러다가 <THE PARK>의 레니게이드 리뷰 영상을 접했는데요, 영상 속 정우성 대표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필자는 이 말이 소비, 더 나아가 삶의 만족감을 측정하는 파라미터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싫은 게 아무리 많아도, 내가 꽂힌 게 하나라도 있으면 그건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소비하는 삶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삶을 직관적으로 변화시키는 편리한 방법이잖아요. 대신, 그 소비가 진정으로 나한테 가치 있는 것인지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