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ANTIEGG 예진입니다.

지난 한 달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는 첫 편지에 대한 많은 분의 화답 덕분에 추운 계절의 초입을 따스히 통과하고 있습니다. 응원과 사랑이 가득 담긴 메시지를 꺼내 보면서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었답니다. 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하나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제 글이 볼품없다 투덜거리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는 편입니다. 활자와 활자 사이에서 수십 번 고민하고, 맺음 이후에도 수차례 주저합니다. 아마 $%name%$ 님께 닿을 이 편지도 마찬가지겠지요. 누군가 완벽하지 않다고 코웃음 칠까 봐, 근본이 없다는 비난을 할까 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탄식할까 봐 망설입니다.

$%name%$ 님의 창작 경험은 어땠나요. 혼자만의 생각이 세상에 발화되는 순간. 창작물은 다수에게 공개되고, 동시에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숱하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창작자, 때론 평가자의 위치에서 창작물의 고귀함을 판단하지요. 가령 영화의 품질을 논하거나 작품의 예술성을 가늠하는 평론부터, 타인의 관점이나 생각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행위까지 창작에는 수많은 평가가 뒤따르죠. 제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개인의 관점에 대한 판단이에요.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자신이 경험한 순간을 공유합니다. 그러나 관점을 서술하고자 할 때, 자연스레 감상의 높낮이를 고민하게 됩니다. 타인에 비해 자신의 식견이 넓지 않다는 우려 혹은 ‘유의미한’ 감상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의 눈초리를 의식하니까요. 

관점뿐만 아니라 취향을 논할 때도 비슷합니다. 개인적 기호를 선언할 때, 다수는 그에 따른 정형화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중 누군가는 섣불리 취향의 깊이를 판가름하고, 개인을 납작하게 재단하곤 하죠. 이런 환경에 길들여지다 보면 우리는 취향과 관점을 어느 정도 취사선택하게 됩니다. 누적된 타인의 평가를 의식한 자연스러운 관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가 쉽게 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개인은 예측할 수 없는 다채로움을 지녔다는 사실이에요. 결코 하나의 범주로 정의될 수 없죠. 저의 경우 소규모 제작사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즐겨보지만 동시에 해리포터, 마블과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에 열광해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추종하면서도, 상류사회의 일상을 조명하는 자극적인 리얼리티 시리즈를 시청하고요. 흥미로운 책을 편식하다 마땅히 손이 가는 책이 없을 때는 베스트셀러를 읽기도 합니다. 특정 분야에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경계에 걸터앉은 모양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name%$ 님은 어느 취향이 고귀하다 생각하시나요? 보이지 않는 감상자 간 위계를 타파하고 작품에 대한 감상과 관점이 동등하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걸까요?

모든 취향, 경험, 관점은 그 자체로 고유합니다.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응시를 통해 무언갈 느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죠. 개인의 시선은 모두 어느 만큼 협소해서 다양한 시선이 중첩될수록 대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ANTIEGG가 꾸준히 다채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관점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수면 아래 창작자들도 무수한 시도를 이어갈 수 있을 테고요. 부족한 제 글이 당당하게 이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 또한 누군가에게 용기가 될 시도 중 하나이길 바라요. 세상에는 어긋나고 위태로운, 불완전한 시도들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잣대가 닳고 닳아 그저 뭉툭한 파편이 될 정도로요.

• 단일성과 통합성이라는 환상 대신 우리 안에는 깜박거리는 다중성과 함께 우리가 평생 소진할 수도 전부 실현할 수도 없는 무한한 잠재력이 깃들어 있습니다._올가 토카르추크, 『다정한 서술자』

ANTIEGG에서

예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