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고전문학을 좋아하시나요? 낯선 시대, 낯선 문화, 낯선 언어로 쓰인 이야기를 따라 작가의 심오한 메시지를 찾고, 이를 삶에 적용해보는 것은 물 흐르듯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몇 시간이면 완독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나 나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에세이에 비하면 장시간 공들여 씨름해야 하는 장르죠. 외출할 때 선뜻 가방에 집어넣기는 어려운 장르임이 분명합니다. 심지어 권위 있는 기관에서 선정한 필독서나 방송으로 유명해진 고전을 호기롭게 읽기 시작했다가, 도리어 벽을 느끼고 책을 멀리하게 되는 경험은 다들 한 번쯤 겪어 보기 마련인데요. 여러모로 장벽이 높은 장르인 만큼, 대형 서점에서도 고전문학 서가는 대체로 사람들 발길이 드문 그늘진 곳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짧게는 몇십 년부터 길게는 천 년을 넘은 시간을 살아남은 고전 앞에 ‘읽기 쉬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비교적 주제가 분명하고 소재는 강렬해서 책을 읽을 때의 무아지경을 경험시켜 주는 ‘가성비 좋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초심자의 마음으로 고전 문학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독서가들을 위해,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들을 모은 읽기 쉬운 고전 문학 단편 모음집을 추천합니다.
니콜라이 고골, 『외투』
우리나라의 한파에는 신물이 나도록 익숙해지셨나요? 살을 에는 듯한 시베리아 바람이 질주하는 러시아 거리에서 방황하기 좋은 고골의 책을 소개합니다.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누구의 보호나 사랑도 받지 못하고, 흔한 파리 한마리조차 놓치지 않고 핀으로 꽂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자연 관측자의 관심마저 끌지 못했던 존재가 사라졌다. 동료 관리들의 조롱을 아무런 저항없이 참아내다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도 그저 평범하기만 했던 한 존재가 이제는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버렸다.”
_『외투』 , 니콜라이 고골
고골은 사회 풍자의 달인입니다. 그는 관료주의에 물든 당대 러시아 사회를 신비롭고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작가였습니다. 고골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소심하고 찌질합니다. 계급 사회에 적응하다 못해 ‘나는 타고나기를 9등관인 사람’으로 뼛속 깊이 위축되어 있기도 하고, 상급 관리에게 받은 모욕을 견디다 못해 미쳐 ‘광인’이 되기도 하죠.
고골 작품의 재미는 이 찌질한 인물들을 갖고 펼쳐내는 판타지 같은 설정과 음울한 유머에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에서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 일들도 숱하게 일어납니다. 『코』에서는 아침에 일어나 빵을 자르니 빵 속에서 사람의 코가 나오고, 그 코가 5등관 관리 행세를 하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기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외투』의 가난한 주인공 아까끼는 아끼는 낡은 외투를 도둑맞고 상념에 빠져 죽었다가, 잃어버린 외투를 찾아 헤매는 ‘외투 유령’이 되기도 하고요. 『광인 일기』의 뽀쁘리시친은 미흡한 업무능력으로 매일같이 모욕을 당하며 울분을 참다가 못해 어느 날 자신이 스페인 왕이라는 망상에 빠져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더니 정신병원으로 잡혀갑니다.
철저한 관료주의 체제에 순복하며 자아의 상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던 하급 관리 주인공들이 어느 날 욕망을 품게 되었을 때, 그 욕망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까요? 정당하게 자기주장을 해야 할 때도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해 쩔쩔매거나 결국 죽거나 미쳐서야 비로소 입을 열게 되는 등, 고골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비정상적인 결말을 맞고 나서야 뒤틀린 형태로 욕망의 충족을 얻게 됩니다.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고전 문학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어떤가요? 어떤 시대적 한계에도 좌절하지 않고 분투하는 근대의 주체적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슈퍼 영웅이나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강인한 캔디 같은 사람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이미 다 정해진 숙명으로 체념하듯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자기 내면에 깊게 내재한 욕망의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부터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켜보면 아주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고골의 이야기에서 평범하고 하찮은 한 사람이 물이 고여있는 곳에 문제를 제기하며 작은 돌멩이를 던졌을 때 어떤 식으로든 파문이 일어나고 주변이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돌멩이를 던진 자기 자신이 달라지죠. 비록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이 뒤틀렸을지언정, 그로 인해 사회적 통념으로는 누군가가 비극적 결말을 맞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말입니다.
기 드 모파상, 『두 친구』
인생은 왜 이리 우리를 배신할까요. 왜 사람들은 모두 영악할까요. 인생과 인간의 이중성을 이해하고 싶을 때 읽기 좋은 동화 같은 책을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현실을 똑똑히 이해하게 되면서 그것을 감수하지 못하게 된 거죠. … 사람들은 화를 내지만 신은 국회 의원과 달라서 석 달 만에 갈아치울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대신 자기들이 이승을 떠나는 겁니다. 이승이란 정말이지 나쁜 세상이니까요.”
_『안락사용 안락의자』, 기 드 모파상
인생이란 얼마나 아이러니로 가득한가요! 고작 말 한마디에 인생을 걸기도 하다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 좌절의 밑바닥을 경험하기도 하고, 무엇도 믿을 수 없다며 나 자신을 믿었는데 결국 스스로에게도 배신당하는 것. 이러한 아이러니로 굴러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기 드 모파상의 소설은 마치 잔혹동화 같습니다. 고골의 이야기를 황량한 러시아 거리의 회색빛에 비유한다면, 모파상의 이야기는 알록달록 화려한 색채로 가득합니다. 고골의 이야기는 하급 관리처럼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면, 모파상은 귀족, 종교인들을 비롯한 중, 상류층을 주요 등장인물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은 눈부신 보석처럼 반짝이며 무엇으로도 해칠 수 없는 굳건한 명예와 자부심으로 가득 메워져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모파상은 이 영원할 것 같은 안락한 삶이 아이러니로 무장한 인생이라는 적에게 어떻게 부서지는지 보여주니까요.
모파상은 단조로운 일상 이면에 가려진 사람의 오만, 허영, 위선을 무자비하게 발가벗깁니다. 고귀해 보이는 높은 마나님들 삶 뒤에는 저속한 인간성이 숨어있고, 순박한 시골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도시인들보다도 계산적이고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진실로 내면이 순진한 사람들은 무탈할까요? 자기 의지와 상관없는 시대 속 풍파에 휩쓸려 한낱 들풀처럼 허무하게 쓰러져버립니다. 모파상은 비현실적 소재로 판타지를 그려내지는 않지만, 오히려 너무나 사실적이라서 고골의 작품보다도 극적인 충격을 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일본 문학에 대한 벽을 깨뜨리고 싶다면 주저 없이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오늘 추천하는 단편 중 가장 오싹하지만 가장 친숙한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설국의 세계처럼 눈보라가 몰아치듯 시린 라쇼몬 속 세계로 초대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좀 벗겨 먹어도 원망할 건 없겠군. 나도 그렇게 안 하면 굶어 죽을 테니까 말이야.”
_『라쇼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가 극찬한 제자입니다. 류노스케의 엽편 및 단편소설을 모아놓은 『라쇼몬』을 읽고 나면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단편 모음집에는 열 편 이상의 작품이 실리곤 하는데요. 모두 읽고 나면 유독 인상 깊었던 몇몇 이야기만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만, 류노스케의 단편 모음집은 모든 이야기가 또렷하게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렬하고 독창적입니다.
단편 소설의 공통점이라면, 짧은 분량 속에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고발이 압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극적인 전개와 충격적인 소재가 빠르게 등장하곤 하는데, 류노스케는 특히 파괴적인 결말로 주제를 극대화하는 단편의 진가를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설마 더 최악으로 치닫겠어.’ 싶어 잠시 방심하는 순간 충격적인 결말을 향해 이야기가 극한으로 치닫습니다. 파괴에 파괴가 더해지며 인간의 처절한 본성이 밑바닥을 드러내죠. 류노스케는 ‘누구나 한 겹 벗겨 놓으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끝없이 인간의 내면을 벗겨 보여주죠. 인간 내면의 모순된 심리와 악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온 생을 바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이야기 속의 인물, 장치, 시대, 사건 등 모든 것들에는 날이 서 있습니다.
『라쇼몬』에는 일본 설화에서 차용한 작품들도 여럿 존재합니다. 서양의 단편들에 비하면 우리에게 더 친숙한 메시지들이 부각되기도 하죠. 특히 여느 문학과 차별되는 점으로는 ‘인간의 본성은 이렇다’고 고발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악행이 어떤 악순환을 만들어내는지 끝까지 주목하는 시선입니다. 주인공들은 인간보다 힘 있는 존재에게 심판받거나 가르침을 전수 받기도 하고, 같은 인간으로부터 업보를 돌려받기도 합니다. 악과 악이 되풀이되는 지경을 보고 있자면 어디가 지옥인가 싶어 진절머리가 나게 되죠. 게다가 작가 자신이 염세적인 관점으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얼른 이야기가 끝나 문제가 해소되길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작가는 어딘가 꺼림칙한 결말을 보여주며 ‘이 악인 한 명이 죽었다고 끝이 아니라’며 훈수하는 듯 예상 못 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끝냅니다.
류노스케의 작품들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 자기 내면이 짙게 묻어납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어둡고 서늘하며, 인물들은 억지로 괜찮은 척조차 하지 않습니다. 겨울밤 창밖의 추위보다 더 냉기어린 실체를 보여주며 책을 읽던 우리의 체온을 차갑게 만들죠. 어쩌면 앞선 모파상, 고골의 작품에서도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던 인간 삶 속의 재치나 유머를, 『라쇼몬』에서는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를 드리고 싶은 정도입니다.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평범하고 소박한 나의 세상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 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어디선가 만났을 법한 사람들이 아웅다웅 사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보고 싶은 분들께는 망설임 없이 체호프의 책을 권합니다.
“그렇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끔찍했다. 그렇지만 그들도 모두 사람이고, 고통 당하고 우는 존재이다. 그들의 삶에서 해명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힘든 노동, 그로 인해 밤마다 아픈 몸, 혹독한 겨울, 부족한 수확, 협소한 집,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도움.”
_『농부들』, 안톤 체호프
체호프는 현대 단편, 아니 현대 문학의 아버지로 손꼽히는 작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멘토 격이죠.
이렇게 소개하면 체호프가 고리타분한 작가로 느껴지시나요? 사실 체호프는 오히려 우리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입니다. 그는 작가이기 전에 의사였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먼 시골까지 왕진을 다니는 직장인이자, 밤낮없이 환자들을 돌보며 사람의 생 한 가운데와 생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사람이었죠. 체호프는 의사로서 만나는 사람들을 주목하며 삶의 소박한 양상과 그 안에 녹아 있는 인간애, 유머, 생의 의지를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이야기에 녹여냈습니다.
그래서 체호프의 단편 속 인물들은 유독 정감이 갑니다. 분명 백 년이 더 된 이야기인데도 ‘어? 내 이야기인가?’ 싶은 설정들이 나오기 때문이죠.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자고 싶다’는 말은 무려 이야기 속 제목으로 등장합니다. 노동에 지친 농부들이 사포처럼 거친 마음씨를 갖게 된 경위를 설명하며 그들을 애처롭게 바라보기도 하고요. 무심코 재채기했다가 침을 맞은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몇 날 며칠 끙끙 앓는 소심한 사람도 나옵니다. 체호프는 우리처럼 사소한 일상의 주인공, 평범한 사람들을 주목했습니다.
체호프의 작품은 교훈적이지도, 신랄하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그 시절 그 사람들의 행태를 면밀히 관찰해 약간의 유머를 곁들인 가벼운 소설 정도로 느껴지죠. 그렇다고 체호프의 소설이 밋밋할까요? 오히려 특별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고받는 감정의 교류, 우연 혹은 필연으로 맺어지는 관계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상의 광경이 빚어내는 해프닝은 현실적이어서 씁쓸하면서도 꽤 유쾌합니다. 가령, 체호프의 소설에서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 어떻게 될까요? 여느 로맨스 소설처럼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낼 것 같지만, 낭만을 현실로 되돌려놓고 이 도피자들이 마주하게 될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냅니다.
체호프는 나름의 신념이 있었습니다. 삶을 그대로 쓰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작품을 교훈이나 사상을 찾아 멋대로 파헤치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특정한 경향 없이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고 충실히 현실을 담아내는 사람일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아포리즘을 찾아야 한다고 눈에 불을 켜는 순간, 체호프의 작품들은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가 버립니다. 어쩌면 고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그렇지 않을까요? 뭔가 대단한 것을 찾고 말겠다고 파헤치다가, 정작 아름다운 풍경은 즐기지 못하는 것이죠. 체호프의 작품은 고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지도해주는 선생님 같은 역할을 감당해줍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상세 페이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구매 페이지
소개해드린 단편 소설들을 읽고 나면 다소 극적인 전개 탓에 ‘충격적인 책’ 정도의 느낌만 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멈추지 말고 조금 더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짧은 이야기의 충격적인 결말을 마주하며,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하고 이런저런 가설을 세워보게 됩니다. 몇 세기 전 타국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다소 먼 발치에서 관망하듯 소설을 읽고 멈추기 쉽지만, ‘이게 만약 나의 현실이라면?’이라는 가정과 함께 소설 속 내용을 21세기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와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확장할 때야 비로소 깨우쳐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단순히 그 당시 사회를 고발하기 위한 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작가가 고발하는 인간성은 지금 우리 주변, 아니 나 자신에게도 내재해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고 맙니다.
단편은 말이 짧습니다. 잘 쓰인 단편과 그렇지 않은 단편은 그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오래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요. 소개해드린 네 권의 단편 모음집은 무궁무진한 고전 문학의 세계에 기꺼이 호기심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 일상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권태를 극복하고 기어이 한 줄이라도 느낀 점을 남겨 놓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들이죠. 일상과 비일상, 과거와 현재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단편의 세계로 첫 독서 여행을 떠나보세요. 앞으로 고전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