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줄어든 오프라인 축제들,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던 독자 분들은 손을 들어주세요. 작년 여름, 기다리고 기다리던 축제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칭, 타칭 ‘축제덕후’ 필자는 작년에 지역의 특색이 눈에 띄는 축제들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엔 잘 몰랐던 지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문화 예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탐구하게 되는 현장이었습니다. 올해는 더더욱 만반의 준비 끝에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함께 떠나보길 권합니다.
5월,
궁중문화축전
매일 오가는 서울의 한복판, 문득 생경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높고 거대한 빌딩 숲 한가운데 조용히, 다정히 곁을 내주는 궁궐을 발견할 때입니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에서 오래된 시간을 발견하는 건 새삼 놀라운 일입니다.
궁중문화축전은 잠들었던 조선의 기억을 불러오는 축제입니다. 경복궁을 비롯한 4개의 궁궐과 제사를 드리던 종묘와 사직단까지, 오래된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길 권합니다. 다양한 문화 예술과 함께 공간에 깃든 이야기를 들으면, 궁궐은 더 이상 오래되고 따분한 공간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창덕궁 달빛기행이 대표적입니다. 청사초롱을 들고 밤의 궁궐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경복궁의 생과방에서 오래전 임금이 들었던 궁중병과와 궁중약차를 즐겨 보는 프로그램도 놓칠 수 없습니다. 경회루에서 관람하는 전통 음악과 무용 공연도 특별함을 더합니다.
WEBSITE : 궁중문화축전
INSTAGRAM : @royalculturefestival_official
6월,
무주산골영화제
2013년 전라북도 무주에서 산골영화제가 문을 열었습니다. 무주라는 생소한 지역에 과연 사람들이 찾아올까요? 무수한 의문을 뒤로하고, 무주산골영화제는 지난해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산의 푸른 정기를 받으며 등나무운동장에 앉아 영화를 관람하는 특별한 경험은 오직 무주산골영화제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무주산골영화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을 품은 장소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돗자리를 깔고, 오래된 나무 기둥 아래 앉아 영화를 관람하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영화만을 보지 않습니다. 산을 배경으로 해가 지고, 별이 내리는 하늘을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무주라는 지역의 정취가 가득한 체육관, 전통문화체험관에서 영화제를 체험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무주산골영화제는 무주라는 지역에 호기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합니다. 2018년부터 진행된 무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프로젝트가 대표적입니다. 단편영화 <순간>은 2019년 영화제를 방문한 관객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기반으로 제작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을 체험할 뿐만 아니라 직접 영화에 참여하면서 무주와 영화를 알아가는 고유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또 다른 무주산골영화제만의 프로그램은 무성영화에 소리를 입히는 프로그램입니다. 작년에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키드’의 상영장에 가수 선우정아와 피아노 연주가 염신혜가 찾아와 직접 현장에서 소리를 더해 주었습니다. 해마다 배우 한 명을 조명해 그의 영화 역사를 들려주는 ‘넥스트 액터’도 눈에 띕니다. 다양한 재미와 감동이 있는 무주산골영화제로 떠나보길 추천합니다.
WEBSITE : 무주산골영화제
INSTAGRAM : @mujufilmfest
6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한국은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아픔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처가 남은 강원도 철원 DMZ 근방에서 ‘평화’를 노래하는 음악 페스티벌이 있습니다.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음악을 통해 정치, 경제, 이념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 마음은 피스트레인이 들려주는 음악과 현장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피스트레인은 38선 바로 앞 비무장지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펼쳐집니다. 무대 바로 앞은 유네스코 선정 세계지질공원이 있어, 무대의 열기가 너무 뜨거울 때면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중단된 경원선 라인의 월정리 역에서 부서진 객차, 총알이 남겨진 앞에 무대를 세워 노래하기도 합니다. 페스티벌 현장에서는 주상절리 길을 걸어보는 관광 이벤트에 참여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역적 특징과 축제의 구성은 ‘평화’라는 축제의 뜻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피스트레인의 또 다른 특징은 성별, 연령, 국적, 그 어떤 개인적 특성으로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철원의 관광지 고석정에서 앞에서 열린 무대는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지나가던 모든 이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중장년의 관광객, 어린아이, 외국인, 페스티벌 관람객이 함께 춤을 추는 경험은 특별했습니다. 공연장과 페스티벌의 인기는 점점 더 높아진다는데, 정작 현장에선 2030 또래의 얼굴들만이 가득해 느낀 아쉬움과 속상함이 해소되는 공간이었습니다.
또 하나, 피스트레인에는 헤드라이너가 없습니다. 참여하는 아티스트 간 줄을 세우고,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밴드부터 가장 주목받는 가수가 마무리하는, 암묵적인 공연 순서를 따르지 않습니다. 아티스트의 폭 또한 넓습니다. 특색 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한국의 락 밴드들을 비롯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해외의 독특한 밴드들이 찾아옵니다. 지역과 함께 숨 쉬는 독특한 페스티벌을 놓치지 않길 당부합니다.
WEBSITE : DMZ 피스트레인
INSTAGRAM : @dmzpeacetrain
축제에서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축제의 의미가 이뿐일까요? 우리가 현장에서 느끼는 건, 축제의 의미가 이 즐거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축제가 진행되는 공간, 나아가 지역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이해하는 순간, 재미는 증폭됩니다. 이름조차 생소해, 특별한 경험이 연상되지 않는 낯선 지역이 내 삶에 고유명사로 들어오는 일은 특별했습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지역에서 잘 몰랐던, 혹은 잊고 지냈던 역사와 의미를 찾는 건 지루한 일상을 여행자의 눈으로 보고, 탐험자의 발로 거닐게 했습니다. 이처럼 지역의 특징을 담은 축제는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애틋하고 정감 가는, 자꾸 알아보고 싶은 장소를 선물합니다. 동시에 지역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생기가 돋아납니다. 지역의 특색을 발굴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며 상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지역과 더불어 즐거움을 선사하는 축제들로 떠나보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