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포착한 순간을 읽다
『조선 미술관』

조선 풍속화와 궁중기록화에 새겨진
시대의 흔적을 읽어나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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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에 먼저 다녀간 선조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줍니다. 마치 한 권의 역사책처럼, 고미술 작품에 쌓인 시간과 삶은 깊습니다. 그렇기에 고미술 작품 속 세세한 묘사가 지닌 의미를 많이 알아차릴수록 우리가 마주할 장면과 그 안의 메시지는 더욱더 또렷해지는데요. 고미술 회화 작품을 꼼꼼하게, 그러면서도 즐겁게 들여다볼 수 있게끔 해 주는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조선 미술관』
두 개의 공간과 여섯 개의 전시실

한옥 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여러분은 지금 막 어느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초입새에서 바라본 미술관은 서로 다른 두 공간으로 이뤄져 있네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두 공간 사이에는 담장 하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담장이 조선 시대 궁궐의 담장을 닮아 있는 듯한데요. 호기심에 부푼 마음을 안고 첫 번째 공간의 문을 여는 순간, 여러분의 눈앞에는 조선 후기 궁궐 바깥의 일상이 담긴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1700년대 조선 후기에 완성된 그림을 살펴보며 그 당시의 삶을 읽어내는 책, 『조선 미술관』. 이 책에서 독자가 마주할 작품들은 모두 종이 위에서 완성된, 그야말로 2차원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 작품에 저자의 해설이 더해짐으로써 그 풍경은 3차원의 세상으로 거듭납니다. 저자는 궁궐 안팎에서 때로는 소소하게, 때로는 성대하게 피어난 장면들 속 디테일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생동감 있게 해설하는데요. 그 해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시대를 이룬다는 점이 마치 여러 물줄기가 큰 강으로 모여드는 풍경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합니다.


풍속화, 일곱 화가의
시선 속 사사로운 일상

『조선 미술관』
이미지 출처: 블랙피쉬 공식 인스타그램

두 챕터로 구성된 『조선 미술관』은, 두 공간으로 이뤄진 커다란 미술관 하나와도 같습니다. 그중에서 책의 첫 번째 챕터이자 첫 번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1관’을 살펴보고자 하는데요. 이 챕터에서는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단원 김홍도 등 7인의 화가가 완성한 풍속화를 자세히 살피며 18세기 조선의 궁궐 밖 일상을 들여다봅니다. 여기서 독자가 마주하게 될 풍속화는, 조선 고유색을 소박하면서도 진솔하게 드러내며 완성된 ‘진경풍속(眞景風俗)’입니다. 양반의 일상을 담으며 시작되었지만, 이내 평민의 삶으로까지 확장되며 궁궐 밖에서 사사로이 펼쳐지는 일상들도 담아냈습니다.

이 책에서 보게 될 풍경들이 모두 조선 후기의 것이라고 해서 현재의 일상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는 없는데요. 작품들이 완성된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강산이 서른 번은 넘게 바뀌었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서로 같은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전합니다. 노동을 마친 후 퇴근이 전하는 즐거움. 아름다운 새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는 여유로움. 놀이에서 승리한 후 얻는 쾌감. 화폭 속에는 수많은 시간 가운데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상을 완성하는 세세한 장면이 저자의 섬세한 해설과 더불어 펼쳐져 있지요.


궁중기록화, 종이에
정교하게 새겨진 어느 기쁜 날

“본소사연도(本所賜宴圖)”, 1744
“본소사연도(本所賜宴圖)”, 1744,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노인 한 명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동일하다.”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아마두 함파테 바(Amadou Hampâté Bâ)가 남긴 말입니다. 오랜 세월을 지내온 이들만이 지닌 지혜는 시대를 불문하고 귀중합니다. 장수한다는 표현 자체가 특별했던 조선 시대에는 70세 이상이면서도 정2품 이상인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한 기구인 기로소(耆老所)가 설치되어 있을 정도였지요. 신하의 입장에서 기로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영예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신하뿐만 아니라 국왕 역시도 일정한 연령이 되면 기로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역대 왕 중에서 기로소에 들어간 왕이 다섯 명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왕이 기로소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크나큰 경사였습니다. 이 책의 두 번째 챕터에서는 그 기쁨 넘치던 순간에 주목합니다. 숙종과 영조가 기로소에 들어갈 당시의 풍경이 담긴 18세기 궁중기록화를 통해, 상세한 묘사와 더불어 철저히 기록된 궁궐 질서를 살펴봅니다. 나아가, 챕터의 끝에서는 궁궐 밖 그림 두 점을 통해 각각 한양과 개성에서 열린 경로잔치 현장도 들여다보는데요. 누군가의 장수를 기뻐하는 한편 긴 시간을 무탈히 살아온 이들을 공경하는 마음이 종이 너머로도 전해지는 듯합니다.


『조선 미술관』 구매 페이지
INSTAGRAM : @blackfish_book


우리가 갈 수 없는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데에 있어, 미술은 강력한 매개체가 되어줍니다. 억겁의 시간 속에서 이 땅에도 참 많은 풍경이 펼쳐졌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이미 흩어진 장면을 다시 붙잡아 눈 앞에 가져다 놓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종이에 기록한 그림은 언제고 바라볼 수 있지요. 종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말이지요. 직접 가 볼 수는 없지만 분명 이 땅 위에 존재했던 세상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주는 설렘을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받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해당 아티클은 블랙피쉬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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