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일본에서 문화 예술을 한껏 만나볼 수 있다는 도쿄로 떠났다. 여러 미술관을 거닐면서 일본을 중심으로 동시대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낯설고 흥미로운 마음으로 감상을 하다 문득, 좋아하는 아시아 작가를 몇 명이나 꼽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미술을 좋아해 많은 전시를 관람하고, 책과 영상을 접하면서도 그 속의 주인공은 늘 서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동아시아 작가들조차 많이 알지 못한다는 데에 놀랐다. 그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개인적 이유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역사가 서양을 중심으로 흐르듯, 예술 또한 기울어진 길을 걸어온 게 아닐까?
세계사의 중심이 된 그곳
우리가 학교에서, 교육 기관에서 미술 수업을 들으며 배운 것들은 대부분 서양 예술사, 그리고 파리와 뉴욕에서 유명했던 작가들의 이름이 많았다. 주변 국가는 물론, 같은 땅을 딛고 살아가는 한국 작가들보다도 서구권 작가들이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영향으로 미술이라 하면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앙리 마티스와 같은 이름이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떠오르고, 이러한 작가들의 전시가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도 당연하게 보인다.
이처럼 서양 중심의 미술을 학습하고, 익숙해진 데엔 세계적 역사, 정치, 경제의 커다란 흐름이 서양을 중심으로 흘러왔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중요한 키워드는 18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진보’와 ‘문명’이었다. 산업혁명으로 다른 대륙보다 먼저 기술 혁신을 이룬 유럽과 미국은 더 월등하고, 진보된 국가가 된다. 그전까지만 해도 막강한 힘을 누리던 인도와 중국과 같은 아시아 제국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밀리면서, 세계 무대에서의 권력을 잃게 된다.
이러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던 이후 세계의 중심은 유럽과 미국으로 한정된다. 경제적, 정치적 변화는 자연스럽게 문화와 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정신적 교류 또한 풍부한 서구의 도시들이 예술의 중심지가 되고,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이 탄생했다.
다양성에 주목하는 사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구권 중심 문화, 사고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경제적 성장과 더불어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문화 예술계 또한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삶의 방식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아시아 예술에 대한 주목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 사례로 2020년 예일대학교는 교내에서 가장 인기 있던 미술 수업을 폐강한다. ‘미술사 개론: 르네상스부터 현재까지’라는 제목의 수업으로, 미술사 전반을 이야기하는 핵심적인 수업이기에 반발이 크게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사 전체를 백인과 서양 중심으로 미술사를 설명하면서 다양한 인종과 지역의 미술사를 억압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폐강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2022년 세계적인 아트 비엔날레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Fifteen)’의 총감독으로 인도네시아의 아티스트 컬렉티브 ‘루앙루파(Ruangrupa)’가 선정되었던 사례 또한 큰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 미술 축제로 손꼽히는 카셀 도큐멘타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아시아 출신 총감독이 선정된 것이다. 그간 축제에서 보기 어려웠던 다양한 아시아 작가의 참여를 독려하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루앙루파의 세계에서 중요한 요소인 지역 예술, 수평적 관계성 또한 다양성이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
내일이 기대되는 아시아 예술
이처럼 긴 세월 주목받지 못했던 아시아 예술은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서양에서 특정 도시를 중심으로 문화가 발전했듯, 아시아에서는 홍콩이 새로운 예술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주변 주요 도시들을 단시간 내에 다다를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미술품 거래에 유리한 무관세 정책, 영어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등을 배경으로 아트 거래의 중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를 딛고 아시아의 대표적인 예술 축제인 ‘아트 바젤 홍콩’이 다시 문을 열어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했다. 동시에 15년의 준비 끝에 현대미술관 M+가 화려한 시작을 알린 것 또한 앞으로 더 다양하고 깊은 홍콩의 예술을 기대하게 한다.
대규모 축제가 개최되고, 자국민을 비롯한 다양한 외국인이 축제를 찾아온다는 건 큰 의미를 지닌다. 일정한 규모 이상의 예술품 거래 시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나아가 해당 지역의 예술계에 다양한 기회의 장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즉 세계 무대에 이 도시가 예술에 대한 충분한 인프라와 자본, 성장 가능성이 있음을 알리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아트페어 ‘키아프 아트 서울(Kiaf SEOUL)’이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와 손을 잡아 서울에서 공동으로 개최되는 것 또한 큰 의미를 지닌다. 예상을 뛰어넘은 관람객 수와 매출액을 통해 서울이 주요한 아트 도시로 부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달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국제 아트페어 ‘도쿄 겐다이(東京現代)’가 28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는 점 또한 아시아 예술이 가파르게 확장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다른 분야가 그러하듯, 서양을 중심으로 발전되고, 이야기되던 예술계. 교육 과정에서, 여기저기서 습득한 정보를 통해, 자연히 익숙해진 서양의 예술가 이름들. 너무 당연해서 이상한지도 몰랐던 서양 중심의 사고, 서양 중심의 예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다. 사회적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존의 틀에서 깨어나 다양한 지역의 예술이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주목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 세대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탄생하고 발전하는 예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우리 한 명 한 명의 변화 또한 중요하다. 이번 주말엔 프랑스 출신의 유명한 화가, 미국의 핫한 예술가 대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아시아 작가를 만나러 가보는 건 어떨까?
- 프레시안,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은 누가 만들었나(200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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