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끝없이 새겨진 시간 동안 인류의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줬던 밤하늘은 아득한 존재가 된 지 오래입니다. 빛공해로 인해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직접 보기 어려워졌지요. 이렇게 삶에서 옅어진 밤하늘의 존재감이 다시 선명해지는 순간을, 독자 여러분은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사진이라는 매개체로 우리의 일상에 그 순간을 공유하는 이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짙은 하늘에 펼쳐지는 천문 현상을 망원경과 카메라로 기록하는 천체 사진가들의 모임, TWAN입니다.
인류를 아우르는 서사,
천체 사진
1초도 안 되는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예술, 사진. 그 이름 앞에 자리하는 여러 수식어는 각각의 장르로 완성되어 또렷한 색채를 발산합니다. 천체 사진 또한 다른 장르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고유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지요.
기술은 인간의 물리적인 한계를 보완해 주며 오랫동안 발전해 왔습니다. 천체 사진은 그렇게 발전을 거듭해 온 기술과, 지구의 안팎을 모두 아우르는 대자연이 만나 완성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맨눈으로 담아낼 수 없는 것을 망원경과 카메라의 렌즈에 담아냄으로써, 천체 사진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가는데요. 아무리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맥락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자연’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채 살아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진을 언어에 비유해야 한다면, 그러한 자연이 온전히 기록된 사진인 천체 사진은 인류 공용어가 아닐까요.
지구 곳곳에서
우주를 기록하는 이들
세계 천체 사진가 40여 명으로 이루어진 TWAN(The World At Night)은 ‘Astronomers Without Borders(AWB, 국경 없는 천문학자)’라는 국제 단체의 한 프로그램으로 2007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자연 환경 보존, 예술과 과학의 결합 등을 목표로 꾸준한 행보를 펼치고 있습니다. TWAN에게 있어서 천체 사진은, 수많은 현대인에게서 사라져 버린 밤하늘을 다시 전해주는 메신저와도 같습니다.
TWAN의 일원들이 렌즈에 담아낸 우주는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어 왔습니다. 온라인 공식 홈페이지 내 갤러리, 단행본, 그리고 대한민국을 비롯한 30여 개 국가에서의 오프라인 전시회까지. 여러 경로를 통해 TWAN의 천체 사진이 가닿는 여정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나아가, TWAN은 여러 방법으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담아냅니다. 흔히 ‘사진’ 하면 떠올리는 정지된 이미지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밤하늘의 모습을 앉은 자리에서 한눈에 볼 수 있게끔 타임랩스 영상도 제작합니다. 예술과 인류, 과학을 잇는 다리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TWAN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의 영혼 오로라』
TWAN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소속 사진가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명단에 자리한 이름들을 찬찬히 살펴가다 보면, TWAN 내에서 유일하게 한국 국적을 지닌 사진가 권오철을 마주하게 됩니다. 천체 사진가로서 활동하며 쌓아온 시간들을 구성하는 많은 단어들 중 ‘오로라’는 특히 그 존재감이 돋보입니다. 그가 밤하늘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던 건 1992년이었지만, 전업 천체 사진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기점은 2009년 말에 떠난 오로라 여행이었기 때문이지요.
오로라를 직접 마주하러 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간단하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의 버킷 리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날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날씨, 장소, 시간 등 수많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었을 때, 그제야 신비로운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의 영혼 오로라』는 막연하게만 떠올려 왔던 ‘오로라’라는 그 세 글자를 향해 구체적인 한 걸음을 뗄 수 있게 하는 책입니다. 천체 사진가 권오철의 오로라 해설서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오로라가 잘 관측되는 ‘오로라 존(Auroral Zone)’ 지역 중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지역인 캐나다 옐로라이프 관련 정보부터 시작해서 오로라 예보 확인법, 오로라 촬영 팁 등과 같이 독자가 직접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정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편, 오로라의 개념이나 오로라 발생 원리처럼 과학적인 이해가 다소 필요한 내용도 함께 다뤄지고 있는데요.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해설이 뒷받침되어 있기에 부담은 덜어내도 괜찮습니다.
138억 년. 우주가 존재해 온 시간의 양입니다.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까마득한 이 숫자 앞에서 우리는 그저 우주를 스쳐 지나가는 작디작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밤하늘에 그려온 그 많은 그림들까지 작디작았던 건 아니었으리라 믿어봅니다. 무수한 세월을 건너온 인류에게 있어서 끝도 없이 펼쳐진 별하늘은 그 어떤 제약도 없이 꿈을 그려낼 수 있는 도화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대한 우주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을지라도, 밤하늘에 그렸던 풍경에는 각자만의 광활한 세계가 담겨있을 테니까요.
자연이 초월하는 것에는 국경뿐만 아니라 시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수없이 변모해 온 인류가 유일하게 공유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무언가는 ‘자연’이 아닐까요. 우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류가 변해온 과정은 마치 한 편의 타임랩스 영상과 닮아 있었을 듯합니다. 그 영상 속에서도 밤하늘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겠지요. 일상에서 사라져 있던 밤하늘이 천체 사진과 더불어 독자의 삶에 다시 이어지는 그때, 자연의 그 꾸준함과 묵묵함에서 비롯되는 힘도 더불어 전달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