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가 쓰다면서 계속 주문하는 지인이 있습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달달한 음료를 권해도 손사래를 치더라고요. 그런 아메리카노 같은 존재가 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재즈인데요. 재즈를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공감하는 독자분들께 재즈의 경계에 선 앨범을 소개해드립니다. 물론 입문용 재즈 플레이리스트는 아닙니다. 쓴맛이 싫으면 시럽을 섞거나 크림을 얹어 먹을 수 있듯이 재즈에도 여러 장르의 맛을 섞은 음악이 있죠. 본질을 흐린다고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재즈는 자유분방한 음악이니까요.
스바네보르 카르디브
스바네보르 카르디브(Svaneborg Kardyb)는 덴마크 출신의 재즈 듀오입니다. 피아노와 드럼으로 단출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천천히 호흡을 맞추고 음을 쌓아가 빈 공간을 메우기 시작하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마주 앉은 두 사람의 재즈는 마치 자연의 일부 같습니다. 덴마크 전통 민요의 서정적인 멜로디로 구축한 재즈의 매력은 지난해 발매된 앨범 [Over Tage]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뮤지션들의 뜨거운 호흡이 한데 섞여 완성된 것이 미국의 재즈라면, 이들의 재즈는 우리가 호흡할 공기 중에 음악을 얹어 선물합니다. 또한 재즈의 핵심이라 일컫는 스윙의 비중이 적은 대신, 민속 음악의 향취를 섞는 유러피언 재즈의 특징이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아직 재즈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들의 오가닉한 선율은 재즈와 부담스럽지 않게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스바네보르 카르디브 [Over Tage] 상세 페이지
INSTAGRAM : @svaneborgkardyb
VBND
캐나다 출신의 베이시스트이자 프로듀서, vbnd는 재즈와 소울 펑크가 섞인 음악을 선보입니다. 재지(jazzy)한 베이스를 연주하는 그의 옆에는 네오소울 밴드 ‘더 소울 콜렉티브’ 멤버들이 함께해 그루브를 더하죠. 춤을 돋우는 90년대 R&B 음악에서 파생한 네오소울은 재즈, 펑크, 아프리카 음악 등 여러 요소가 뒤섞여 연주와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장르입니다. 다양한 뮤지션들이 한데 모여 즉흥 연주를 선보이는 재즈와 어울릴만합니다.
vbnd의 베이스는 ‘hypnotic(최면을 거는 듯한)’이라고 평가받습니다. 매혹적인 베이스 라인과 크리스피한 드럼이 만드는 리듬 위에 얹은 Katie Tupper의 보컬은 마치 베스트셀러 드라이 와인 같은데요. 재즈 특유의 끈적함을 덜고 대중적인 맛을 구현해 냈습니다. 대중적인 팝처럼 즐길 수 있는 재즈&네오소울 음악을 vbnd의 앨범 [Scum Funk]의 트랙에서 경험해 보세요.
VBND [Scum Funk] 상세 페이지
INSTAGRAM : @vbndmoney
FKJ
프랑스 출신 어머니와 뉴질랜드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FKJ(French Kiwi Juice)는 한 가지 장르로 가둘 수 없는 자유분방한 뮤지션입니다. 뉴 프렌치 하우스 장르의 시초라고도 불리는 FKJ가 전자음악에 색소폰, 피아노를 곁들이는 모습은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트랩 하우스 재즈&힙합 아티스트 마세고(Masego)와 함께한 ‘Tadow’는 유튜브 4.5억 뷰에 달하는 글로벌 히트를 거뒀죠.
FKJ의 음악은 누재즈(Nu-jazz) 장르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누재즈는 일렉트로닉 재즈라고도 불리며 전자 악기를 통해 색다른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장르인데요. 공연장에 비치된 색소폰, 피아노뿐만 아니라 여러 전자 악기를 혼자 연주하며 레이어를 쌓아 올리는 FKJ의 무대 영상은 단연 인상적입니다. 솔로 아티스트임이 무색하게 그는 밀도 높은 음악과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일렉트로닉, 힙합, 하우스 등 재즈와 더불어 장르의 경계를 부수는 FKJ의 첫 정규 앨범 [French Kiwi Juice]에는 그가 사랑받는 분명한 이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FKJ [French Kiwi Juice] 상세 페이지
INSTAGRAM : @frenchkiwijuice
김오키
재즈 뮤지션으로 규정할 수 없는 아티스트 김오키. 그의 음악에는 법칙과 경계가 없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는 복장과 연주 스타일에 비해 서사가 확실한 음악이 특징이죠. ‘내 음악의 중심은 사랑이다.’라고 주장하는 아티스트 김오키가 불어내는 색소폰에서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될 때까지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재즈의 빠져든 자신을 알아챕니다.
앨범 [러브플라워]에는 싱어송 라이터 김일두, 실리카겔의 김한주, 밴드 까데호가 참여했습니다. 다채로운 장르의 뮤지션이 참여한 만큼 트랙마다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김오키가 해석하는 재즈에는 밝고 리듬감 있는 재즈와는 전혀 다른 묵직함이 있습니다. 만약 조금 더 쉽게 김오키에게 닿고 싶다면 그와 함께한 수많은 뮤지션 중 아는 이름을 먼저 찾아보고 재생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김오키 [러브플라워] 상세 페이지
INSTAGRAM : @donmansuki
빌 에반스와 쳇 베이커가 새겨진 LP 판을 보면서 재즈와 친해지기로 마음먹은 뒤로 몇 년이나 흐른지 모릅니다. 즐겨 들을 만큼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면서 괜히 재즈를 아는 사람인 척하고 싶었던 걸까요? 재즈를 찾아들은 적은 별로 없지만 이 앨범을 좋아하면서부터 재즈와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입니다. 어쩌면 재즈는 느껴지되 농도가 옅은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긴지도 모릅니다. 아무렴 어때요. 음악에는 경계가 없고, 좋은 음악은 좋은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