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과잉은 병일까요? 흔히 사람들은 자의식이 과잉된 사람을 두고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감정 표현이 너무 솔직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넘치는 자의식은 성격이나 성향 말고도 삶 전반에 알게 모르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칩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존재’가 중요한 결정의 순간 때마다 개입해 훼방을 놓습니다. 바로 ‘자의식’이라는 존재가 그것인데요. 지난 2023년 여러분의 일상은 정말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되었다고 생각하나요? 혹시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곳에서 이 무의식적 존재의 영향에 휘둘리며 목표 달성을 망치진 않았나요? 만약 의심이 간다면 여기 ‘자의식 해체’를 다룬 3권의 책을 통해 자신의 자의식을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돈, 시간, 운명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법”
『역행자』(2022)
혹시 ‘메타인지’라는 말을 들어봤는나요? 메타인지란 내가 서 있는 위치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단계에서 마치 아래를 내려다보듯이 ‘나’와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조망하듯 바라볼 수 있는 사고 능력을 뜻합니다. 이정표의 도움만으로 앞만 바라보며 운전하는 사람과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으며 운전하는 사람 중 누가 더 정확하고 편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메타인지란 위성을 통해 도로의 정보를 유저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바로 이 내비게이션 기능과도 비슷합니다.
『역행자』는 바로 이 메타인지의 힘을 역설하는 책입니다. 사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주류로 활약한 자기계발서들의 논리는 ‘그 누구보다 완전하고 강인한 나를 믿어라!’였죠.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더 일하고, 더 늦게까지 최선을 다해 삶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 자기계발의 전통적인 문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역행자』는 이 ‘정면 돌파’의 방법론에서 살짝 비켜나 ‘당신이 믿고 있는 그 진리, 그동안 당신이 고수해 온 삶의 전략이 정말 틀림없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메타인지의 시작이죠.
메타인지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즉 2차원적으로 살 수밖에 없도록 타고난 인간의 삶에 내비게이션을 장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역행자’ 자청이 말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독서’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 및 대학교 시절 내내 하루 2시간씩 무식하게 책을 읽었다는 저자의 방법론을 그대로 ‘복붙’할 필요는 없겠지만, 책 속 다음의 조언은 의미심장합니다. “책을 읽는 것만큼 나라는 세계에서 빠르게 빠져나와 타인의 세계에 들어갈 방법은 없습니다. 이 연습을 최대한 일찍 시작하는 것이 자의식으로부터 해방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죠.”
“어느 날 우리 집 소파에 신이 앉아 있다면”
『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2008)
“너 말이야, 여태까지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해서 이런 상황을 만든 거 아냐? (…) 그럼 반대로 한번 물어보지. 네 방식이 틀렸다면 남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방법 외에 무슨 비책이라도 있어?” 만약 퇴근하고 돌아온 집에 자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괴생명체가 소파 위에 앉아 있다면 무슨 생각이 들 것 같나요? 『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는 이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소설 형식의 자기계발서입니다.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주인공 사회초년생 샐러리맨이 어느 날 난데없이 자신의 삶에 난입한 말하는 코끼리신 ‘가네샤’로부터 전수받은 5가지의 과제를 수행하며 겪는 성장담이 담긴 책입니다.
신 가네샤의 과제는 단순합니다. 출근용 구두를 깨끗이 닦기, 늘 먹던 양의 80%만 먹기, 상대방을 웃게 하기… 성공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허무맹랑한 과제를 제시하는 신에게 주인공은 불평을 쏟아내죠. 그때 신은 주인공을 비웃으며 ‘인간이란 평소 고수하던 생활방식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제자리걸음을 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콩 싶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죠.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반응’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주변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야. 부모가 시키니까 공부하고, 모두들 시험을 치니까 시험을 보고, 다들 취직하니까 취직하고, 어쨌든 사람들은 계속 반응하면서 평생을 마감하게 되는 거지. 하지만 반응만 하면서 산다면 자신의 인생을 손에 넣을 수 없어.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말이야. 전부 스스로 생각해서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될 수 있도록 먼저 주변 세상을 자극하고 있거든. 이해가 가?”
인간이란 관성의 동물입니다. 매번 식사 메뉴는 그렇게 잘도 바꾸면서 늘 쓰던 칫솔 하나를 바꾸는 데엔 엄청난 결심이 필요하죠. 자의식은 때론 개성이나 강력한 카리스마 등 매우 외향적인 방식으로도 발현되지만, 사실 우리가 날마다 발견하는 자의식이란 이처럼 수십 년째 고치지 못하는 습관이나 생활방식 그 자체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아마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될 겁니다. ‘나는 세상에 반응하며 살고 있나, 아니면 주체적으로 대응하며 살고 있나?’ 자의식 해체란 대단한 개념이 아닙니다. 자신이 늘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 주어진 삶을 살면서 자신이 택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해 온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것, 이것이 해체의 첫걸음이죠.
“인생의 전환점에 버려야 할 한 가지”
『에고라는 적』(2017)
“당신의 최악의 적은 이미 당신 안에 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에고다.” 혹시 순간적으로 달아오른 열정에 도취되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동네방네 떠들어본 적이 있나요? 자신의 열정적인 모습에 깊이 만족하며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해 본 적은요? 처음의 에너지가 마지막까지 유지가 되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딱히 기억을 떠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용두사미의 결말을 맞이했을 겁니다.
오랜 시간 스토아철학을 공부한 라이언 홀리데이의 책 『에고라는 적』에 의하면, 자의식이라는 개념은 시간상으로도 여러 얼굴을 지닙니다. 먼저 ‘과거의 자의식’은 흔히 죄책감, 트라우마의 형태로 발현됩니다. 잊고 싶은 과거의 경험과 기억이 왜곡되어 ‘현재의 자의식’으로 발현되는 것이죠. ‘미래의 자의식’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거야’, ‘나는 이런 꿈을 이룩할 거야’와 같은 선언적 형태로 발현됩니다. 우리는 이를 비전이나 미션, 사명이라고 부르죠.
홀리데이는 이를 내가 나에게 덧씌운 프레임, 즉 에고라고 부릅니다. ‘유능한 개발자’, ‘센스 있는 기획자’, ‘배려심 넘치는 연인’, ‘남들과는 다른 비범한 예비 창업자’. 혹시 지난 2023년 당신은 스스로에게 어떤 타이틀을 부여했나요? 혹시 이 강렬한 선언 이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역설적이게도 스스로의 프레임에 갇혀 오도가도 못한 적은 없나요? 책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어떤 성공을 이룰 거라고 자세히 말하는 사람들은 그 목표를 언제 달성할 것인지도 정확히 짚어 말한다. (…) 하지만 이들은 성공을 위해 거쳐야 할 과정에 대해서는 절대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들 머릿속에 그 과정이라는 게 아예 없거나 혹은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때로 바쁘게 움직이며 일을 하면서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억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 기억을 되새김질하고, 그러다 보면 성공의 기억은 하나의 스토리가 되고 거대한 신화가 됩니다. 이를 타인에게 주입시키려 할 때 사람들은 그것을 ‘꼰대질’이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자의식’이란 자기 자신에게 주입하는 셀프 꼰대질은 아닐까요? ‘과거의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으니까 현재의 나, 미래의 나도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어!’라는 무의식에 나도 모르게 사로잡히는 것이죠.
이 심리적 오류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메타인지’이고(『역행자』), 과거의 성공 방식에 관성대로 반응하지 말라는 것이 코끼리신 가네샤의 가르침이며(『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 이 자의식이라는 꼰대가 설정해 놓은 (이제는) 불필요해진 룰을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라는 것이 스토아철학의 지혜입니다(『에고라는 적』).
사실 이 3권의 책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 아니,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는 또 다른 꼰대질, 훈수질이 될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는 이의 자의식에 달려 있기 때문이죠. 지금 이 글을 적는 필자 역시 자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2023년은 이렇게 지났습니다. 이제 1년 뒤 2024년 겨울, 여러분의 삶은 여전히 자의식에 지배를 당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과거의 나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여러분의 2024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