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말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어른

ANTIEGG 한빈입니다.

새해입니다. 해가 변했지만, 여전히 고여있는 관습과 꿈적하지 않는 불합리를 보며 절망이 틈탈 때 현명한 어른의 존재가 간절히 그리워집니다. 그렇게 새 마음, 새 다짐이 필요할 때 떠오르는 철학자, 아니 한 어른이 있습니다. 몇 년 전 타계한 철학자 김진영 선생입니다.

좌절감이 들 때 가장 손쉽게 품을 수 있는 마음은 이기심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잠시 마음에서 지우는 것입니다. 세계의 중심에 나를 세우는 것도 모자라 유일무이한 존재로 나 자신만을, 또는 극소수의 주변인만 남겨놓습니다. 그렇게 타자를 지워내면 좀 더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뿌연 미래를 목전에 두고 사랑을, 사람을 자꾸 포기합니다.

하지만 김진영 선생은 말합니다. 사랑을 말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사랑이 곧 자기 주체라고요.

오늘은 생의 마지막까지 확신을 두고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의 사유가 주는 감동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죽음, 이별, 난세라는 무거운 주제를 일상으로 가져와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로 빚어낸 아름다운 책들입니다. 새 마음을 다잡을 때 기꺼이 모델로 삼을 만한 멋진 어른의 단상을 모은 산문 3권을 소개합니다.

아침의 피아노

삶과 죽음의 신을 독대하며 되뇌이는

경건한 기도문

이 책은 김진영 선생님이 암 선고를 받은 후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의 메모를 모은 산문집입니다. 사그라지는 생의 끝에 선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과거 찬란했던 기억의 편린들을 더듬고, 세상 전반을 다시금 돌아봅니다. 죽음이라는 결말을 향해 가는 숭고한 기록의 과정을 지켜보며 나의 생은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고 있는지 고요히 묵상하게 됩니다. 한 사람 인생의 정수만을 뽑아낸 기록은 정직하고 올곧게 살아온 한 학자의 삶 그 자체로 찬란히 빛납니다. 짧은 아포리즘 앞에 맹렬히 무너지는 독서 경험에 기꺼이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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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

이별과 부재의 힘은

모든 것의 기원이다

슬픔과 애도는 마음에서 빨리 털어내야 할 감정으로 느껴집니다. 설렘과 기대로 가득한 새해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김진영 선생님은 이별의 근원, 부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본질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이별에 관한 단상을 모은 이 산문집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해 사랑의 행복에 관한 단상일 것 같지만, 이별의 시작과 연속성에 담긴 모든 속성을 다룬 철학 단상 모음집입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시작은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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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기억들

우리가 서로의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는 외침

신년을 꼭 설렘으로 맞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세상에는 음울하고 불합리한 일들이 가득하니까요. 김진영 선생은 이 책에서 개인보다 ‘우리’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겨레>에 연재했던 백남기 농민, 젊은 검사의 죽음에 관한 글을 비롯해 세월호 관련 글들을 모아 펴냈습니다. 그는 난세를 살아가는 태도에 관해 질문을 계속해 던집니다. 새해에 ‘나’를 중심으로 두느라 무심히 놓칠,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될 것을 조용히 일깨워줍니다. 관심의 주체를 타자로 돌리는 순간, 이 난세를 살아낼 자신이 수그러지기 마련이지만, 어쩐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작은 촛불 같은 용기가 피어나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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