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선명한
추락의 해부 OST

영화 ‘추락의 해부’ 속
음악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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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가 개봉했습니다. 작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고, 다가오는 3월에 프랑스 여성 감독으로서 처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후보에 올랐는데요. <추락의 해부>는 집 앞에서 남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되고, 용의자로 몰린 부인 ‘산드라’가 자신의 결백을 변론하면서 진행되는 법정 드라마 영화입니다. 그 과정에서 산드라, 남편 사무엘, 아들 다니엘이 거쳐온 가족의 내막을 파헤칩니다. 오늘 소개할 <추락의 해부>의 음악은 가장 선명한 단서가 되어 관객에게 들려옵니다.


<추락의 해부>
이미지 출처: Le Pacte

<추락의 해부>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명료한 진실로 향하는 기존 법정 영화와 달리 <추락의 해부>의 진실은 모호하고 희미해져만 가는데요. 다양한 시점과 영화적 트릭은 진실을 궁금해하는 관객의 눈을 가리고 혼란을 줍니다. 어쩌면 다중 시점으로 진실을 추구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과는 반대되는 영화인데요. 영화에서 산드라의 양성애적 성향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가 아닌, 그녀를 상대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이처럼 관객은 사건의 중심과 진실로부터 멀어져, 한 가정과 개인이 철저히 난도질 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외도, 자해, 사고 등 오고 가는 변론과 주장만으로 한 가족의 서사는 상상되고 창조됩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복잡하고 다면적일수록, 모호한 것을 파고 들면 들수록 오독되고 잘려 나가는 현상을 담았습니다. 이토록 냉정한 <추락의 해부>에서 음악은 안개 같은 이 영화와 닮으면서도, 가장 선명하게 영화가 향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1) 50 cent – PIMP

동영상 출처: 그린나래 미디어

‘PIMP’는 영화 시작부에 산드라의 남편 사무엘이 튼 곡입니다. 사무엘은 2층에서 집을 수리하면서 이 곡을 듣는데요. 온 집안이 울리고 목소리가 묻힐 만큼 음악을 크게 틉니다. 그리고 그는 이 음악을 튼 채 의문사 하게 되죠. 아마도 영미권 관객들은 이 곡의 의미를 눈치 챘을지도 모릅니다. 50 센트의 ‘PIMP’는 20년 전 큰 히트를 친 곡으로, 남성의 힘을 과시하는 가사가 담겨 있는데요. PIMP 라는 용어 또한 많은 이성과 잠을 잔 사람을 뜻하는 힙합식 슬랭입니다. 산드라는 이 음악을 무시한 채 1층에서 화기애애하게 인터뷰를 합니다. 와이프 산드라는 작가로서 성공해 인터뷰를 하고, 외도하여 성생활을 즐기는데, 정작 사무엘 본인은 망치로 집을 고치고 있어 화가 났던 걸까요? 두 부부의 갈등은 이미 이 곡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인터뷰를 방해하면서까지 음악을 트는 사무엘의 시니컬한 성격도 느껴지는데요. 해당 곡은 사무엘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추락의 해부>에서 유일하게 제공하는 그에 대한 힌트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이삭 알베니즈 – 아스투리아스 (Miguel Baselga – Suite espanola No. 1, Op. 47: No. 5. Asturias)

동영상 출처: 그린나래 미디어

다니엘은 극 중에서 이삭 알베니즈의 ‘아스투리아스’를 피아노로 연주합니다. 아이는 시각 장애를 가졌음에도 빠르고 리듬감 있는 이 곡을 연주해내는데요. 스페인의 대표 작곡가 이삭 알베니즈는 스페인 각 지방의 리듬과 민요를 소재 삼아 8개의 스페인 모음곡을 작곡했습니다. 따라서 곡 마다 스페인 각 지역의 풍경과 양식이 녹아 있는데요. ‘아스투리아스’ 또한 스페인 북쪽에 위치한 지역명입니다. 아스투리아스는 산간 지역이라 안개에 자주 가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 점에서 <추락의 해부>의 아득함과도 닮아 있는데요. 발재간 같은 리듬은 기타의 표현 기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건반을 때리듯이 연주하는 다니엘. 음이 빗겨 나갈 듯한 그의 연주에서, 아이의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다니엘의 연주는 한 해가 지나도록 계속됩니다. 이제 다니엘은 더 부드럽고 정확하게 건반을 누르는데요. 이 연주의 변화는 영화에서 다니엘의 역할을 암시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타인과 사회가 만들어내는 추측과 상상. 그 상처에 적응하고 훗날 법정에서 주도권을 잡게 될 다니엘을 암시하죠. “상처받았어요. 이미 받았다고요. 그래서 더 필요해요. 전부 다 듣고 극복하려고요.” 재판 방청을 하고자 다니엘이 한 말 입니다. ‘아스투리아스’ 곡은 <1년 후> 자막으로 생략된 시간동안 변화한 다니엘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3) 쇼팽 전주곡 4번 (Chopin : Prelude No.4 In E Minor Op. 28-4)

동영상 출처: 그린나래 미디어

이 곡은 익숙한 분들이 꽤 계실 것 같습니다. 짧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쇼팽 전주곡 내에서도 꽤 유명한 곡으로, 쇼팽의 장례식에서도 연주되었는데요. <추락의 해부> 뿐만 아니라 많은 영화에서 사용되어 왔습니다. ‘무덤가’ 나 ‘질식’으로 불리는 이 곡의 표현법은 소모르찬도(smorzando)로, 영어로는 ‘drying away’, 즉 ‘서서히 죽음의 늪으로 꺼져가듯’ 연주하는 곡입니다. 영화에서 산드라와 아들 다니엘은 이 곡을 함께 연주합니다. 주 선율 ‘도’ 와 ‘시’를 반복하는 오른손은 산드라가, 계속해서 음이 바뀌는 왼손은 다니엘이 연주하는데요. 해당 곡을 끌고 가는 힘은 왼손, 즉 다니엘에게 있습니다. 이는 <추락의 해부>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다니엘의 역할과도 같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다니엘은 결정적 증언을 앞두고, 산드라 없이 홀로 이 곡을 연주합니다. 다니엘의 증언에 따라 산드라의 재판은 좌우되는데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야 하는 다니엘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촘촘히 짜여진 영화에서 음악은 기능하고 작동합니다. 필자는 <추락의 해부>에서 50센트의 ‘PIMP’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이 음악 안에 무언가 있음을 확신했는데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희미한 추락의 해부에서 가장 선명한 것은 어쩌면 음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이 향하는 곳엔 다니엘이 있고, 다니엘은 이 영화의 핵심을 전달합니다. 어쩌면 음악은 <추락의 해부>의 숨겨진 진실 또한 알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처럼 여러분도 영화와 음악이 맞아떨어지는 그 장면, 그 순간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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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빈

사랑과 경탄을 담아, 성실한 사유를 이끄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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