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우수한 아티스트와 앨범, 노래를 선정해 시상하는 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이 몇 달 전 성료했습니다. 한대음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들의 성취와 수고를 기념하며 20여년 간 대중음악의 다양성 회복을 위해 힘써왔는데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의미 그리고 방향성에 관해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숨은 보물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
2004년에 시작된 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은 ‘주류 시장에서 주목받는 음악만 듣게 되는 환경에서 숨겨진 음악을 발굴’하는 시상식을 표방합니다. 대중음악의 다양성 회복을 추구하는 것인데요. 90년대 부흥하기 시작해 2000년대 이후 주류 시장을 독점하게 된 아이돌 음악 외 여러 아티스트와 명반을 조명하자는 취지에 맞게, 한대음에서는 비교적 차별화된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하죠.
시상 부문은 매우 다양합니다. 마치 미국 그래미 어워즈처럼요. 종합분야에서는 올해의 음반, 노래, 음악인, 신인(총 4개 부문)을, 장르분야에서는 최우수 록, 메탈&하드코어, 랩&힙합, 알앤비&소울, 팝, 케이팝, 일렉트로닉, 포크, 재즈 음반과 노래(총 20개 부문)를 수여해요. 케이팝 아이돌 중심으로 진행되는 타 시상식들에 비해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죠. Top 100 차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음악도 한대음에서는 수상 후보가 됩니다. (올해 수상 후보들이 궁금하다면 한대음 유튜브 채널에 플레이리스트가 마련되어 있으니 들어봐도 좋습니다.)
프로듀서 250는 가장 최근 주목할 만한 사례입니다. 250은 뉴진스의 첫 앨범에 참여한 프로듀서인 동시에 ‘뽕’을 소재로 개인 앨범을 내놓은 아티스트인데요. 뉴진스가 3관왕을 차지했던 2022년, 올해의 음반과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일렉트로닉 앨범 등 4개의 상을 휩쓸며 가장 핫한 음악인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처럼 돈이 되는 음악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보다 독보적인 실력과 매력을 보유한 음악에 찬사를 보내는 한대음은 음악의 상품 가치를 가장 중시하는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대중음악사 상 주요한 업적을 남긴 음악인들(김민기, 조동진, 산울림, 양희은, 사랑과 평화 등)에게 공로상을 주고, 음악인들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활성화에 힘쓰는 공간(학전 소극장 등)이나 프로젝트(서울레코드페어 등)에 선정위원회 특별상을 수여하는 것도 그 일환이라 볼 수 있죠.
대중음악과 시상식,
청중의 관계를 돌아보기
사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한대음과 함께 수많은 시상식들(’MAMA 어워즈’, ‘멜론 뮤직 어워드’, ’서울가요대상’, ‘골든디스크’, ‘대한민국대중음악시상식’ 등)이 있었지만, 일부 폐지 수순을 밟았습니다. 과거 ‘가요대전’ 등 공중파 3사 가요축제와 함께 진행됐던 시상식들은 아티스트의 방송 출연 횟수와 문자 투표를 선정 기준으로 삼아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어요. 방송 출연 기회가 적거나 팬덤 규모가 크지 않은 아티스트는 불리하다는 문제였죠. 한편, 음원 사이트 주최 시상식은 투표를 위한 직간접적 소비를 조장해, 팬들의 애정을 수익화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전자는 기획사와 팬덤 규모가 수상 결과를 결정해 온 현실, 후자는 팬덤을 이용해 이윤을 창출하려 했던 음원 서비스 회사들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분명한 건, 대중음악 산업 내 청중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현재 진행되는 시상식들 또한 대중음악 청중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식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대음은 청중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을까요? 애초에 한대음은 초창기부터 상업성 대신 작품성을 평가한다고 명시해 왔기에, 2017년까지 유지된 ‘네티즌상’ 부문 외에는 현장 실무자나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선정위원들이 수상자를 선정해 왔어요. 산업 내 권력 구조나 팬덤의 영향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 타 시상식들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적었습니다.
그렇다고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선정 결과에 대한 갑론을박이 종종 나타나곤 했거든요. 작품성에 가치를 두는 ‘전문가’의 시상식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일부 청중은 높은 대중성으로 인해 폄하되기 쉬운 음악에 전문가의 찬사가 더해지는 것에 호응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청중은 선정 결과에 적절한 근거가 부족하다며 선정위원들의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죠. 청중은 한대음의 의견을 각기 다르게 해석합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하지만, 누군가는 그들의 평가를 타당하지 않다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좋은 음악을 고민하는
담론의 장을 열기 위해
위와 같은 청중의 기대와 비판, 여러 반응은 중요한 변화를 보여줍니다. 팬덤을 중심으로 재편된 대중음악 산업에서 청중은 음악문화를 만들어가는 집단으로서 의견을 개진해 나가는 중이고, 제작자들 또한 이들을 수동적인 청취자가 아니라 능동적 수용자로 인식하고 있어요. 이런 변화 속에서 음악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전문가에 기대되는 ‘전문성’은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현재의 청중들이 생각하는 ‘좋은’ 혹은 ‘뛰어난’ 대중음악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자신의 통찰과 의견을 타당하게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일 거예요.
대중음악 산업의 여러 주체와 공존하는 미래를 도모한다면, ‘전문성’과 더불어 ‘작품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작품성은 화려한 주류에 가려진 비주류의 가치를 설명할 때 유효한 척도임은 틀림없지만, 상업성과 작품성을 가르는 이분법은 점점 그 의미를 잃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단순히 인기만으로 음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편파적이지만, 상업성을 완전히 배제한 평가 또한 청중의 취향을 타당한 근거가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어느새 음악 산업의 또 다른 전문가로 부상한 청중은 ‘음악을 아직 잘 모르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좋은 음악이 무엇인지’ 논의할 주체로서 한대음이 마련할 담론의 장을 기다리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의 귀는 언제나 내가 축적한 지식과 경험, 취향에 영향을 받습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최고의 음악’이 존재하기 어려운 이유죠. 그래서 대중음악 시상식은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있는 음악에 마땅한 찬사를 보냄으로써 음악 생태계의 회복을 고민해 온 한대음은 대중음악의 다양성에 기여해왔어요. 20여년 간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청중과 호흡하기 위한 변화와 성찰을 이어간다면, 더 나은 음악문화의 토대가 될 풍성한 축제가 만들어질 거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