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가 교복 문제로 시끄럽다. 1968년에 교복이 사라지고 56년 만에 교복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왜 갑자기 교복에 주목했을까? 우리나라에도 교복은 늘 논란이 되어왔다. 자율화와 의무화 사이를 오갔던 역사가 있고, 교복과 사복이 혼재했던 시절에는 교복을 입으면 사복을 원했고 사복을 입으면 교복을 원했다. 교복은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기에 논쟁이 끊이질 않는 걸까?
사회 통합을 향하여
프랑스가 교복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한 마디로 공동체 의식을 장려하기 위함이다. 여러 이민자가 유입되고 국가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현대 사회에 “우리는 모두 프랑스인이다”라는 공통된 인식을 확산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에서 교복이 필요한 이유엔 프랑스만의 독특한 정치적 배경이 자리한다. 프랑스에서는 공적인 장소에서 종교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이는 가톨릭뿐만 아니라 이슬람 등 모든 종교에 적용된다. 종교적 의미가 두드러지는 히잡이나 부르카를 금지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는 이슬람교에 대한 차별과 탄압으로 인식되었고, 프랑스도 국가의 이념을 굽히지 않으며 갈등이 발생해왔다. 프랑스의 교복 도입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학생의 종교를 가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프랑스가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원인이 무엇이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서구 사회가 집단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유행하던 때도 비슷한 소식이 들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 영국에서는 학교 커뮤니티와 연결된 감각을 갖기 위해 자발적으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있었다. 반대로 일부 서구 국가에서는 마스크 의무화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집단의 이익보다 개인의 선호가 중요했던 사람들을 통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공동의 위기 앞에 화합과 단결이 절실했기에 공동체 의식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꾸만 분열되는 현대 사회, 그리고 기후변화나 전염병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에서 사회 통합은 중대한 의제가 되었다.
이때 교복은 사회 통합의 기초적 수단이다. 먼저 학생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이룬다. 단일한 외양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형성함으로써 공공 교육 시스템에 속한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하게 한다. 또 교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학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게 된다. 이로써 청소년기부터 공동체의 개념을 이해하고 규범을 습득함으로써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교복은 공동체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안내하는 가이드인 셈이다.
권위에 의한 통제를
얼마나 긍정할 것인가
교복은 공동체를 위한 옷이기에 모든 개인을 단일한 복장으로 통일한다는 점에서 비판 받아 왔다. 십여 년 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유행하던 문구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학생이라는 죄로 /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 출석부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 공부란 벌을 받고 /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우스갯소리로 공유되던 문구이지만, 학술 연구에서도 학교는 감시와 처벌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감옥과 대조되곤 한다. 즉, 교복은 “권위에 의한 통제를 얼마나 긍정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포함한다.
교복은 학생을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이방인과 학생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다수의 학생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개인은 개인으로서 존재할 때가 아니라 집단으로서 존재할 때 관리가 쉬워진다. 학생 30명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1반을 관리하는 것이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교복은 단일한 복장으로 학생들을 통일함으로써 다수를 묶고 관리 대상임을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한편, 개인은 교복을 입은 상태에서는 행동을 제한하게 되는 것처럼 스스로 관리 체계를 내면화하게 된다. 주변의 시선이라는 사회의 감시 시스템을 인식함으로써 규범을 준수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인은 통제의 감각을 체화한다. 통제는 양날의 검이므로, 교복 또한 같은 기능과 한계를 띠게 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교복이 집단, 사회의 입장에서 개인에게 적용되는 제도라는 점이다.
불평등을 담은 교복
교복은 사회가 개인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므로, 사회의 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우리를 둘러싼 여러 권력 구조가 교복에 녹아있다는 뜻이다. 먼저, 이분법적 젠더 구분이다. 남녀로 구분된 성별과 그로 인한 서로 다른 행동 양식이 교복에 담겨 있다. 특히 교복의 섹슈얼리티는 숱하게 논의되어 왔다. 이로써 우린 여학생/남학생으로서의 복장을 배우고, 젠더화된 자세와 몸짓까지 함께 습득한다.
둘째, 학년을 구분함으로써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를 학습한다. 우리나라는 보통 명찰의 색으로 학년을 구분하곤 했다. 지금은 이런 관습이 사라졌으리라 믿지만, 필자는 학창 시절 선배 학년의 명찰 색깔이 보이면 허리 숙여 인사하곤 했다. 교복을 통해 나이가 권력인 우리 사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체화한 것이다.
셋째, 직업의 귀천을 구분한다. 교복의 전형적인 디자인은 하얀 셔츠와 단정한 정장 하의로 구성되어 있다. 즉, 학교에서 긍정하는 직업상은 ‘화이트 칼라’로 대표되는 사무직이며, 이것이 학생이 추구할 만한 직업임을 은연중에 전달한다. 다양한 노동과 직업의 형태를 배제하고, 어떤 직업이 추구할 가치가 있는 직업인지 가리킨다. 학교가 사회의 규범을 학습하는 공간보다는 고용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만약 교복이 동일한 차림새를 통해 집단의 소속감을 강조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성별과 나이는 왜 구분하는가? 왜 오피스룩의 형태를 띠게 되었는가? 교복은 사회의 일반적, 또는 차별적 분류 체계를 그대로 따른다. 이로써 쉬운 통제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의 분류 체계를 공고히 하게 된다.
교복 바깥으로 밀려나는 소외
평준화된 옷차림은 얼마나 많은 개인을 포용할 수 있을까? 사회가 담지 못한 개인은 교복도 담지 못한다. 권력의 흐름이 발생시키는 소외는 교복에서도 나타난다. 이를테면 앞서 서술한 것처럼 교복은 이분법적 젠더 체계를 선명하게 답습하므로 그 바깥의 수많은 젠더는 포함할 수 없다. 또한 비장애인의 신체를 기준으로 하므로, 다양한 장애인의 몸은 교복 안에서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쉽게 일화된 복장은 사회에서 소외되는 존재들을 품을 수 없다.
빈곤할 경우에도 교복 바깥으로 밀려날 수 있다. 교복의 순기능 중 하나는 똑같은 차림새로 학생들을 통일함으로써 부와 계급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교복의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가정은 해당되지 못한다. 교복은 중산층의 기준으로 통일된 셈이다. 빈곤층은 고려되지도, 포함되지도 못한다. (교복을 물려입는 경우도 있지만, 교복을 물려 받는 경로는 학교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하지 않는 한 개인이 접근하기 힘들다.)
여기서는 젠더, 장애, 계급이라는 비교적 가시적인 항목으로 교복이 아우를 수 없는 사회의 여집합을 설명했지만, 이 항목이 포함할 수 없는 예외적 개인이 많을 것이다. 모든 개인을 포용할 수 있는 집단은 현실화될 수 있을까? 교복의 한계는 집단을 지향하고자 하는 사회의 한계로 연결된다. 교복이 학생들을 평준화함으로써 불평등을 축소할 수 있다면, 이는 소극적인 방식이다. 이미 기울어진 사이에 같은 힘을 가하면 기울기는 달라지지 않듯이 단일한 차림새는 주류와 비주류 집단의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 개인의 다양성은 똑같은 복장 안에서 존중되지 않고, 교복의 범주에서 벗어난 학생은 존재조차 지워진다. 교복이 사회 통합의 도구라면, 사회 통합을 위한 얼마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교복에 대한 찬반은 분분하다. 글에서는 교복의 한계에 대해 더 많이 서술한 편지만, 이는 교복의 문제라기보다는 교복을 활용하는 사회의 한계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집단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함께 살기 위해 집단의 규율을 체득해야 한다. 공동체를 위해 개인은 적당한 통제가 필요하지만, 집단의 규제와 감시가 암묵적으로 강제되는 환경을 옹호할 수만도 없다. 집단의 선택권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불평등한 권력 구조가 답습됨에 따라 집단의 테두리는 보호의 경계인 동시에 배제의 경계가 된다. 이처럼 사회의 위계질서는 늘 불평등하게 작용한다. 집단이 공고한 동시에 공고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교복의 기능과 약점을 살펴보는 일은 공동체 의식의 확산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고 누가 소외되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교복에 대한 논쟁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했던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도 연결된다. 집단의 동일성은 얼마나 추구해야 하고, 개인의 다름은 얼마나 존중해야 하는가? 분명한 것은 개인주의만 채택할 수도, 집단주의도 채택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개인주의만 채택하고 있지도 않고, 집단주의만 채택하고 있지도 않다. 유행을 좇는 동시에 개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개인과 집단이란 구분된 개념이 아닌 뒤섞인 스펙트럼이다. 우린 개인인 동시에 집단이다. 개인인 동시에 대중이고, 개인인 동시에 국민이며, 개인인 동시에 사회다.
- syukaworld. [슈카월드]. (2024, January 24). 프랑스는 왜 지금 교복을 입히는가[Video]. Youtube.
- Friedrich, J., & Shanks, R. (2023). ‘The prison of the body’: School uniforms between discipline and governmentality. Discourse: Studies in the Cultural Politics of Education, 44(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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