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르세라핌이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 무대에 서게 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이 되어 돌아왔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문화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라이브를 기대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한 노래 실력으로 많은 질타를 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K-POP의 현주소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에 비판의 목소리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수준이 도를 지나쳤다는 것이다. 라이브 실력 부족이라는 본래의 비판점을 넘어 멤버 개개인에 대한 공격이 이어졌다. 특정 멤버의 모든 과거 발언, 행동을 문제시하며 자극적인 썸네일을 사용한 숏츠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생산되었고, 개인 SNS로 악플이 이어졌다.
이러한 아이돌 실력 논란은 르세라핌을 시작으로 타 아이돌로 이어졌다. 신인 그룹 아일릿을 비롯해 여러 아이돌의 무대가 논란이 되었다.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수상한 후 이어지는 앵콜 라이브 무대에서 음원 대비 현저히 부족한 가창 실력으로 실망을 안겼기 때문이다. 아이돌의 라이브 실력 부족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가운데, 역량 부족에 대한 비판이란 이름 하에 과도한 비난과 공격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비판을 하는 이유는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하며 비슷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종종 본래 비판의 목적은 잊은 채 그저 비난을 위한 비난을 가하는 것처럼 과열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아이돌의 실력에 관해 선을 넘은 비난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K-POP은 나를 대변한다
K-POP의 정의는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한국의 대중음악 장르인데,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이름을 알리면서 ‘아이돌 음악’을 주로 뜻하게 되었다. K-POP은 이렇듯 한국에서 창작하고 소비하는 발라드, 힙합, 팝, 락 등 다양한 음악 중 하나의 장르라고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현재는 하나의 장르를 넘어 보다 넓은 의미를 내포하며, 문화 그 자체를 상징하기에 이르렀다.
K-POP은 현재 음반 연간 판매량이 1억 장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11월 음반 수출액은 2억 7천만 달러(약 3496억)를 웃돌며 전년대비 17%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한국 문화가 익숙한 아시아권을 넘어 미국 대상 음반 수출액이 52% 상승하며 글로벌 인기를 입증했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미국의 음악 청취자 중 K-POP 팬은 평균적인 타 청취자보다 매월 음악과 관련된 소비에 약 75%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다. 가수에 대한 애정과 지지의 표현으로 음원과 음반을 소비하는 경향이 높았고, 이는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K-POP은 일상에 즐거움을 주는 음악 장르를 넘어섰다. 해외에서 많은 주목을 얻으며 국가 브랜딩은 물론 경제적 효과까지 이어지면서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에서 부족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가수의 역량이 부족한 것을 넘어 K-문화와 한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킨 치명적인 사건이 된다.
나아가 사람들이 K-POP에 ‘과몰입’해 과도한 비난을 하는 데에는 사회가 바라는 ‘이상향’에 느끼는 부담과 피로감도 반영된다. 최근 사회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과도한 정의감에 도취된 모습을 보였다. 어린 시절 학업부터 취업, 결혼 등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와 책임을 강하게 부여받으며 생긴 영향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와 타인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모습은 실력이 출중한 아이돌과 부족한 아이돌을 비교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일상 속에서 느끼는 비교의식, 이상적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패배감, 수치심이 표출된다.
라이브 콘텐츠가 중요해진 시대
이전 콘텐츠는 방송국과 영화 제작사 같은 전문적인 콘텐츠 제작 능력을 지닌 기성 매체가 생산한 것을 소비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점차 유튜브를 포함한 영상 플랫폼, SNS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콘텐츠의 수와 종류가 폭발적으로 많아졌다.
나아가 기술의 발전으로 AI 기술 기반 콘텐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불러주길 바라는 곡이 있을 때, 기존의 팬들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면 이젠 기술을 기반으로 마치 가수가 실제 부른 것처럼 만드는 AI 커버 곡 영상이 있다. 이처럼 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때 보조적인 도구로 기술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의 편의를 위해 기술을 더하기도 한다. 이미지를 영상으로 바꿔주는 기술이 출연했고, 영상의 대본을 작성하고 녹음하는 목소리에 AI를 활용해 제작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많은 콘텐츠가 범람하고 기술이 결합되는 시대에 라이브 콘텐츠는 이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다른 콘텐츠와 비교되는 유일성과 진실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영상에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사람의 노고가 최소화되면 만드는 이의 입장에서 효율적이지만 시청하는 이가 받아들이는 감상은 달라진다. 기획부터 제작, 공개되기까지 기술이 개입한 콘텐츠들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AI가 작성한 대본은 과연 100% 믿음직스러울까?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은 콘텐츠가 주는 재미뿐만 아니라 만든 이와의 감정적 교류, 공감, 믿음이 형성될 때 시청을 지속하게 된다.
이처럼 가상화되는 콘텐츠 속 라이브 영상은 유일하게 진실해진다.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보여진다는 점에서 거짓으로 꾸미거나 조작할 가능성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점점 더 짧고 자극적인 숏폼 중심으로 영상 트렌드가 변화하는 중에도 긴 시간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라이브 수요가 증가하는 이유다. 아이돌의 무대 또한 보기 좋게 편집된 영상보다 실시간 라이브 영상에 대한 화제성이 커지고, 동시에 즉각적으로 알 수 있는 가창과 춤, 무대 매너 등의 실력이 큰 논란이 되는 이유다.
특히 아이돌 및 공연 분야에서 라이브 콘텐츠는 한층 더 중요해진다. 공연은 특정한 시간, 특정 장소에서만 관람 가능하다. 또 갈수록 값이 높아지는 티켓을 구매해야 하며, 이 또한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구매하는데 성공해야만 관람이 가능하다. 다양한 제약이 보다 저렴한 가격 혹은 무료로 공연을 볼 수 있는 라이브 콘텐츠에 대한 수요로 이어진다. 이처럼 공연 자체의 특성과 콘텐츠의 변화가 라이브에 대한 관심을 이끈다.
콘텐츠 소비자가 달라졌다
콘텐츠를 감상하는 소비자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전에 소비자는 주어진 콘텐츠를 있는 그대로 시청하는 수동적인 관객이었다. 그러나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하고 관람하고 공유하는 전 과정이 대중화되면서 소비하는 모습 또한 크게 변화했다. 우리는 예전처럼 영화관에 앉아 다 만들어진 창작물을 관람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화되었고, 관람할 수 있는 콘텐츠의 종류와 수가 놀라울 정도로 확장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그것이 제작되는 과정을 학습하고 직접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K-POP 팬들이 만드는 자체 콘텐츠는 아이돌을 소비하는 모습을 바꿔 놓았다. 예전처럼 소속사나 방송사에서 제작한 아이돌 관련 영상을 보는 것에서 나아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지점을 발굴하고 콘텐츠로 만든다. 공식 콘텐츠에서 다루지 않은 아이돌 멤버의 성격을 모아 편집한 영상, 다양한 무대를 하나로 편집한 교차편집 영상 등이 있다. 이러한 팬들의 자체 콘텐츠는 새로운 팬을 불러 모으고, 팬덤 내 서로 교류하는 모습까지 이어진다.
팬덤 안에서 이와 같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면, 그 밖에서는 공연 무대에 대해 더 작은 단위로 세밀하고 정확한 분석에 집중한다. 듣기 좋게 후보정 된 음악은 아닌지, AR로 부족한 가창 실력을 교묘히 숨기진 않았는지, 실제 라이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 판단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K-POP 아이돌이 기대한 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 실망감을 표출하고 연습을 통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사회 속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듯, 가수는 노래를 잘하고 좋은 무대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선을 응원하는 쓴소리를 넘어 인신공격 수준의 악플과 비난이 가해지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목격했다. 이를 애정 어린 비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K-POP이 지니는 의미, 콘텐츠를 소비하고 생산하는 방식과 채널의 변화 등 다양한 배경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아이돌 실력 논란이 이어질 때면 단순히 비난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바탕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비판적인 태도로 콘텐츠를 바라보고, 그에 대한 여론을 생각해 볼 때 그토록 바라던 K-문화의 발전이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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