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의 모호함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우리나라 패션의
문화적 특수성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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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패션 산업은 ‘K-패션’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K-pop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졌고, 이는 우리나라의 복식 스타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K-패션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구글에 ‘K-fashion’을 검색하면,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이나 인플루언서의 스타일링 사진, 우리나라 패션 브랜드의 런웨이가 주로 등장하고, 아주 드물게 한복도 보인다. 과연 이중 무엇이 K-패션을 가리키는 것일까? 이 사진들은 과연 K-패션을 정의할 수 있을까?


모호한 K-패션

K-패션의 정의는 뚜렷하지 않다. Yoo & Ha(2023)의 연구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미 K-패션을 복식 스타일뿐만 아니라 착용자의 태도와 성격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예의를 중시하거나 집단적 동질성을 추구하는 특징까지 반영한다는 것이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특징은 K-패션이라는 용어가 내포하는 특징이다.

분명한 것은 K-패션이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각을 의식한 용어라는 사실이다. ‘K’라는 접두사가 붙은 단어가 으레 그렇듯, K-패션 역시 세계에서 인식하는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로서의 패션을 가리킨다. 즉, 이 단어는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 인정 받는 우리나라 패션의 위상이며, 국내 패션 산업의 수출과 홍보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K-패션은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복식 스타일은 우리의 규범과 태도를 나타내고 있겠지만, K-패션이 다른 나라의 패션과 차별화되는 데 충분한가? K-패션이 가지는 모호함 이면에는 우리나라 패션의 문화적 특수성이 부족한 현실이 있다. 그 이유를 우리나라의 패션 교육 시스템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한국문화홍보서비스
이미지 출처: 한국문화홍보서비스

서구화된 패션 교육

옷을 만드는 작업은 ‘의복 구성’이라 칭한다. 패션 디자인 교육 과정은 필수적으로 구성 수업을 포함한다. 의복의 구조를 이해하고 제작에 능숙해져야 디자인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성 수업에서 학생들은 정해진 방식으로 옷본을 그리며 정형화된 옷을 만든다. 이 모든 방식은 서구 복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학의 교육은 산업에서 종사할 인력을 배출하는 데 초점이 있으므로, 서구 복식 중심으로 흘러가는 패션 비즈니스에 맞춰 구성된다. 해외 럭셔리 패션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보며 디자인을 배우는 것 또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산업의 트렌드를 선도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패션 시스템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을 기르기 힘들다는 점이다. 왜 서구 복식의 형태를 배우는지, 이는 글로벌 위계질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비판적으로 상황을 살펴볼 기회가 부족하다. 필자도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야 패션 시스템에 내재하는 서구 중심의 위계질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학부 과정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할 때에는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배웠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도 기르지 못했다. 비서구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고민할 필요성 또한 배우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전통 복식의 교육 현황에서도 드러난다.

이미지 출처: Pixabay

패션 교육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현재 서울의 4년제 대학 중 한국 복식사 전문 교수가 재직하는 대학은 세 군데에 불과하다(전성민, 2024). 전통 복식 담당 교수가 은퇴한 이후 후임자를 고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학생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취업률도 저조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학부 수업을 들을 때에도 한국 복식사, 한복 제작 등의 수업은 비인기 수업이었다. 국내 패션 교육 시스템에서 국내 고유의 패션 문화는 외면되고 있다.

덴마크의 민족학 교수 Marie Riegels Melchior는 이미 2012년에 덴마크 패션에 대해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덴마크 패션은 역사적 맥락, 디자인 방법, 문화적 가치 등 여러 측면에서 뚜렷하게 정의하기 어렵고 특색이 없다는 지적이다. 덴마크만의 문화적 특수성이 실체화되지 않는 것이다. Melchior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는데, 우리나라의 상황과 맞닿은 지점이 많다.

첫 번째 이유는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는 인식이다. 역사와 전통, 문화유산은 과거에 고정된 것이고, 패션은 현재에 흐르는 것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전통 복식과 현대 패션을 서로 연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한복이 예복에 그치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하다. 과거의 복식을 재현할 때에만 활용되는 것이다. 한복을 현대적 일상에 맞춰 개량하려는 시도도 적고, 직접 입으려는 사람도 적다. 덴마크와는 역사적 맥락이 다르지만, 전통 복식을 ‘옛것’으로 치부하는 인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패션 산업 내부의 부족한 토론 문화다. 디자인 가치와 문화적 요소 등을 함께 논의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K-패션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열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침묵은 곧 무관심을 형상화한다. 이는 한복의 현대적인 디자인이 다양하지 않은 현재 상황과도 일맥상통한다.

Melchior 역시 덴마크의 전통 복식에 대한 교육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문화적 정체성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전통 복식을 탐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전통 복식을 탐구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복이 곧 K-패션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구 문물 위에 세워진 현대 시대와 그 전부터 이어져왔던 전통 문화 사이의 간극을 채우기 위해, 전통 문화를 지속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패션 교육 시스템에서 이러한 고민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서구 중심의 시스템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교육 환경과 전통 복식 문화를 충분히 배우지 못하는 교육 환경은 서로 연결된다. K-패션의 모호함은 이러한 교육 환경에 기반을 둔다. 교육의 한계가 산업의 한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K-패션이라는 용어는 글로벌 맥락에서 존재하는데, 뿌리가 얄팍하다면 가지는 얼마나 멀리 뻗을 수 있을까? 거꾸로 묻고 싶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치, 세계 구조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전통 복식 문화에 대한 이해가 어우러진다면 어떤 디자인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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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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