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MH는 파리 올림픽을
대표해도 되는가

패션 기업과 국가 사이의
계산적인 협력과 그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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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는 거대 패션 기업의 손길이 곳곳에 보였다. 럭셔리 패션 기업 LVMH는 파리 올림픽 최대의 프리미엄 후원사로, LVMH 산하의 여러 브랜드가 올림픽을 지원했다. 메달을 디자인한 주얼리 브랜드 쇼메, 메달 받침대를 제작한 루이비통, 프랑스 대표팀 단복을 디자인한 벨루티는 모두 LVMH에 속해 있다.

LVMH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파리 올림픽을 후원한 것은 마케팅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송출되는 국제 행사에서 산하의 브랜드를 홍보하고, MZ세대를 겨냥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물론 틀리진 않겠지만, 한 가지 의문이 있다. LVMH가 이런 대중적인 마케팅이 필요한 브랜드인가? LVMH는 왜 올림픽의 전면에 나타날 정도로 적극적으로 파리 올림픽을 지원했을까? 마케팅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이점은 없었을까?

한편 LVMH가 후원사로 참여한 것에는 프랑스 정부의 열띤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왜 패션 기업을 후원사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을까? 이 기업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며 두 주체는 각각 무엇을 얻었는지, 그리고 올림픽이라는 공간에서 이 협력 관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보자.


패션 국가 프랑스

프랑스는 예전부터 패션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지위를 누려왔던 국가다. 프랑스 패션 시스템은 무엇이 패션이 될 수 있는지, 누가 인정 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지 결정한다. 레이 카와쿠보나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프랑스 패션계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을 정도다. 즉, 프랑스는 패션에 관한 권력을 대내외적으로 인정 받아 왔으며, 그 권력을 재생산하고 행사할 수 있는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였다.

프랑스 패션 시스템이 가지는 권력의 바탕엔 오뜨 꾸뛰르, 즉 고급 맞춤복을 통한 럭셔리 패션이 있다. 럭셔리 패션은 트렌드를 선도하며 현대 패션 산업에서 중심적 지위를 가지는데, 오뜨 꾸뛰르가 형성된 곳이 프랑스다. 프랑스에서는 오뜨 꾸뛰르를 바탕으로 패션 산업의 시작과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패션은 프랑스의 역사문화적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파리가 패션 도시로서 권위와 영향력을 인정 받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프랑스가 글로벌 체육 축제를 주최할 때 LVMH라는 럭셔리 패션 기업이 프랑스의 얼굴로 나타난 것은 어색하지 않다. 반대로 프랑스 역시 패션으로 국가를 설명하는 게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자연스럽다. 이러한 배경에서 LVMH는 프랑스가 가지는 문화적 지위를 대변할 수 있다.


프랑스와 LVMH는
무엇을 얻었는가

패션 국가로서의 프랑스는 프랑스와 LVMH가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개연성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협력이 각각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었는지 살펴보자. 프랑스는 LVMH를 통해 경제적, 계층적, 문화적 위상을 획득했다. 먼저, 경제적 위상이다. 프랑스는 LVMH의 후원을 통해 고액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 손 꼽히는 대기업이 프랑스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프랑스의 경제적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점은 다른 후원사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 LVMH가 패션 기업으로서 형성하는 효과는 다음 두 가지다.

두 번째, 계층적 위상은 LVMH가 ‘럭셔리’라는 상류층의 문화를 대표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다. 럭셔리 패션 기업이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원이 됨으로써 프랑스의 올림픽은 ‘고급’의 지위를 은연중에 전달했다. 어떤 언론에서는 “부내 난다”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프랑스가 본래 가지고 있던 ‘오뜨 꾸뛰르의 국가’라는 내러티브를 강조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계층적 위상은 세 번째 효과, 문화적 위상으로 연결된다. 패션이 확산되는 방향 중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이루어졌던 방향은 위에서 아래로 확산되는 하향 전파다. 상류의 유행이 아래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럭셔리 패션 기업은 새로운 스타일을 선도하는 주체다. 무엇이 트렌드가 될 수 있는지 채택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니고 있으며, 대중은 이 권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즉 럭셔리 패션 기업은 뒤쳐지지 않고 앞서나가는 이미지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한 영향력을 상징할 수 있다. 커다란 문화적 움직임을 이끌어가는 주체로서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위상에 따라 프랑스는 부유하고 고급스러우며 세련된 국가 이미지를 형성했다. 이는 LVMH가 패션 기업이기에 가능했고, 프랑스의 역사와 맞물렸기에 효과적이었다.

한편 LVMH가 확보한 이점 또한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경제적 관점에서 최대 프리미엄 파트너로서 거듭나며 국제적인 행사를 후원할 수 있는 초국가적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로컬과 글로벌에서 기업이 가지는 권위를 재확인한 것이다. 둘째, LVMH는 프랑스를 상징할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며, 경제적 권위에 문화적 가치를 더할 수 있었다. 단순히 자본의 힘으로 파리 올림픽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역사와 전통을 대변할 수 있는 상징성을 갖춘 것이다. LVMH는 다른 기업과 달리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적인 맥락이 있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셋째, LVMH는 기존에 갖고 있던 문화적 영향력을 재확립했다. 로고와 패턴으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인지도 덕분에 파리 올림픽 관련 뉴스에서는 LVMH가 자주 언급됐다. LVMH는 다른 후원사보다 효과적으로 여러 관중의 시선을 빼앗았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시선이 ‘사치’, ‘쇼윈도’ 등의 비판으로 이어졌을지언정 LVMH는 파리 올림픽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언급되었고, 그 영향력을 입증했다.

루이비통의 다미에 패턴이 입혀진 메달 트레이와 LVMH에서 디자인한 자원봉사자 유니폼
루이비통의 다미에 패턴이 입혀진 메달 트레이와 LVMH에서 디자인한 자원봉사자 유니폼, 이미지 출처: WWD

올림픽과 LVMH의 역설

프랑스와 LVMH의 협력은 올림픽이라는 장소를 고려했을 때 미심쩍어진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을 근대 시대에 맞춰 재구성한 피에르 쿠베르탱은 국가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한희원, 2010). 그러나 20세기의 올림픽은 국가 경쟁력을 증명하기 위해 메달 경쟁이 이루어지는 국가주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강대국은 메달을 점유하고 약소국은 국위선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구조가 나타났다.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국가주의적인 올림픽의 한계를 체감하고 ‘올림픽 어젠다 2020’을 발표하며 인류가 직면한 사회 문제를 올림픽으로 완화해보자는 메시지를 내걸었다(정윤수, 2024). 이렇게 올림픽에서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 즉 올림피즘은 인류의 평등과 공존, 생태의 보호, 세계의 평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특히 이번 파리 올림픽의 경우에는 평등과 비차별을 추구하며 노동환경의 보호와 취약계층의 포용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파리 올림픽에서 프랑스가 LVMH를 등에 업은 모습은 국가의 부국강병함을 강조하는 20세기 국가주의적 올림픽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LVMH의 사회문화적 지위를 이용해 교묘한 방식으로 드러낸 점이 다를 뿐이다. 아울러 계급주의,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럭셔리 브랜드의 권위에 기대는 것은 평등과 화합을 강조하는 올림픽 정신과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패션 산업의 구조적 착취를 고려하면, LVMH가 올림픽에서 눈에 띄게 등장하는 것이 올림픽의 정신에 위배되는 셈이다. 최근 LVMH 산하 브랜드인 디올의 공급망에서 노동 착취가 문제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역설적이다. LVMH는 차별과 배제와 착취를 포함하며 극단의 자본주의를 상징하는데, 과연 올림픽의 얼굴이 되어도 괜찮았던 것인가?

물론 프랑스는 올림픽 주최 국가로서 국가를 소개하고 홍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회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LVMH 역시 상징적으로, 문화적으로 자본과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권력과 자본의 확립이 우선시되고 사회적 가치는 명목일 뿐인 모습이 낯설지 않다. 올림픽의 역설은 우리 사회가 봉착한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자본주의적인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고서 사회적 가치를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아르노 회장과 파리 올림픽 위원회
아르노 회장과 파리 올림픽 위원회, 이미지 출처: LVMH

파리 올림픽과 LVMH 사이의 그림자가 보여주는 것은 올림픽이 가진 역설일지도 모른다. 국가주의를 극복하고자 하였지만, 국가 간 경쟁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는 측면은 여전히 존재한다. 국경을 초월한 화합과 이를 위한 논의는 어디에 있는가? 또 여전히 강대국이 메달을 휩쓸어가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 패권의 질서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은데 평화의 논의는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가? 나아가 막대한 지출로 주최 국가가 거대 기업의 후원에 의존해야 한다는 구조적 문제도 짚어볼 수 있다. 이렇게 자본과 권위를 주고 받는 거래는 파리 올림픽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파리 올림픽의 LVMH는 곧 이런 질문으로 연결된다. 올림픽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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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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