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향한 좋고 싫은 감정. 그리고 성적 욕망의 발화.’ 뮤지션 천미지에게 쏟아진 대부분의 관심은 그의 첫 음반 [Mother and Lover]가 담고 있는 이 메시지 때문이었습니다. 뭐가 새롭냐고요? 그 앞에 ‘여성으로서’라는 수식을 붙여보면 이 궁금증은 금방 해결됩니다. 거침없이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인 나’의 여러 감정과 욕망을 꺼낸 천미지의 용감함은 지금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또 쉬이 그 전례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가치 있습니다.
그런 그를 갑작스레 찬 바람이 불어 닥친 12월 중순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여성 인디 뮤지션’ 천미지에 대해 물으려 했지만 결국 묻지 않았어요. 천미지의 음악을 ‘여성’에 결부시켜 해석하고 그쪽 면을 유독 부각한 것이 어쩌면 모난 필자의 성급한 욕심이지는 않았을까요? 천미지가 말하는 천미지를 정리했습니다. 음악으로 자신의 결핍과 위태로움을 고백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천미지. 그의 대화 속에서 ‘여성’은 꼬리표가 아닌 자연스러운 ‘개인’이자 ‘나’일 뿐이었습니다.
꿈을 좇아 홍대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미지_ 중학교 때 인디 음악에 심취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이랑 모여서 연주도 하고 믿지는 않지만 교회에 가서 밴드 대형으로 커버 곡을 연습했죠. (웃음) 참 재밌다, 언젠가 이걸 꼭 하고 싶다, 막연하게 꿈꿨어요. 성인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곡을 만들면서 꿈을 더 구체화했고요.
성인이 돼서 곡을 쓰기 시작하셨다고요.
미지_ 영어 공부만 1년 정도 했던 시기가 있어요. 제가 자기표현 욕구는 되게 강한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살아왔거든요. 조금은 폐쇄적인? 상태였는데 다른 언어를 배우면서 조금씩 해소하게 됐어요. 생각과 감정을 담은 문장을 막 적고 그 위에 기타를 입히고 노래를 부르면서요.
그 시기에 쓴 곡들은 보통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나요?
미지_ 대부분 다 사랑 얘기예요. 사랑. 저는 거의 9할이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랑의 주변부를 들여다보면 결핍된 것들을, 혹은 결핍됐다 느끼는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 안고 있던 결핍을 사랑으로 채우고 싶다는 욕심이 굉장히 컸는데 그게 항상 제 뜻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더 외롭고, 슬프고, 분노하고… 이런 감정들은 꼭 한꺼번에 오잖아요. 그걸 바라보며 (음악으로) 표현했던 것 같아요.
꿈꿨던 대로 인디신에 발을 들여놓으셨어요. 어린 시절 상상과 실제 현실의 거리는 어떤가요?
미지_ 어릴 때는 공연만 할 수 있으면 뭐가 됐든 대단한 음악가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제 눈엔 인디 음악가가 그래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전에 더 작은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창작을 계속하기 위해선 삶을 잘 꾸려나가는 것도 중요해요. 잘 먹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것을 접하는 것 등… 2014도 즈음 활동을 시작할 때는 좋아했던 음악가가 공연했던 장소에서 노래하니까 자부심, 설렘 등이 더 컸고요.
만족하는 걸 넘어서 설렘과 즐거움을 안고 산다는 건 정말 값진 일인 것 같아요.
미지_ 집에서 혼자 만들었던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부른다는 것이 꼭 세상을 향해 말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했어요. 마치 나를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것 같았달까? 저는 아웃사이더의 영역에 있는 사람이라고 오랜 시간 생각하면서 자랐어요. 늘 세상에 받아들여지고 싶었고요. 혼자 만든 뭔가를 사람들에게 들려준다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저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줬어요.
대부분 홍대 주변의 클럽에서 공연하셨던 건가요?
미지_ 네, 맞아요. 서울에 올라와서는 줄곧 홍대, 신촌 등지에만 살았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신림이나 동서울터미널 근처의 소규모 공연장 혹은 카페에서도 노래한 기억이 있어요.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경기도의 한 공연장에서 저를 되게 정기적으로 불러주시기도 했어요. 작업실 겸 공연장으로 운영되던 곳인데 1시간짜리 단독 공연도 기획해주시고 당시 제게 꽤 큰 공연비도 챙겨 주셨죠.
‘클럽 빵’, ‘언플러그드’ 등 만이 활동의 중심지는 아니셨던 거네요.
미지_ 홍대 주변의 클럽을 본거지로 두고 가끔 공연 기획자가 불러주는 다른 지역으로도 공연을 가곤 했어요. 위의 두 공간은 인디신에서 공연하고 싶다 하시는 분들이 찾는 대표적인 공간이고요. 그 외에 지금은 사라진 ‘살롱 노마드’, ‘씨클라우드’라는 곳도 있었고… 신청이나 오디션을 통해서 비교적 쉽게 공연할 수 있는 오픈 마이크에 서거나 하면 간단하게 뒤풀이를 했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정보를 주고받아요.
공연이 매번 즐겁지만은 않을 거 같아요.
미지_ 당연히 힘들 때도 있죠. 허무한 건 항상 따라와요. 피드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페이를 늘 넉넉하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제 음악은 굉장히 저의 중심부에 있는, 방에서 은밀하게 꺼낸 속 마음이 담긴 이야기들이예요. 그걸 적은 수의 관객들 앞에서 부르고 혼자 쫄래쫄래 집에 오면 막연하고 허무할 때가 있어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니까. 혹은 되게 창피할 때도 있고요. 괜히 부끄러운 거죠.
정규 1집 [Mother and Lover]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요. 앨범 발매 전후로 가장 크게 바뀐 건 뭘까요?
미지_ 그 지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정말 공식적으로 음악가로 불리는 사람이 되는구나’하는 반농담식의 생각을 했고 무엇보다 책임감이 생겼어요.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확 커졌음이 느껴지더라요. SNS에 올라오는 피드백들을 자주 찾아 읽었어요. (웃음) 내 음악을 세상에 쏟아 내고 나니 감정적으로 많이 편안해지기도 했어요.
‘천미지’ 이름을 건 첫 작품이잖아요. 하나하나가 다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미지_ 꿈꿔왔던 일이기에 도전들도 미션처럼 느껴지고 즐거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고요. (웃음) 그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줬던 오랜 친구 김사월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네요.
앨범을 준비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미지_ 보컬, 보컬이요. 트레이닝 경험 없이 혼자서 해오다 보니 굳어진 습관이 있었어요. 그게 개성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정돈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더라고요. 또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도 많이 배웠죠.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전해야 그분들 머리 위에 물음표가 뜨지 않게 할 수 있잖아요. 서로 만족할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독립 창작자에게는 중요한 자질이더라고요.
위태롭지만 솔직하게,
밖이 아닌 나를 향한 음악
식상하지만 여쭤볼게요. 천미지의 음악은 뭘까요?
미지_ (오랜 침묵) 그때의 감정을 다시 떠올려보고 있어요. 조금은 제 멋대로인 영어 가사를 통해 마주하는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활동명을 ‘미지’라고 지은 것도 내가 모르는 나의 영역을 음악을 통해서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자기 치유적이기도 하고요.
‘도피’의 한글 가사도 정말 좋았어요. 어떤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인가요?
미지_ 마음이 힘들어서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4월로 넘어가는 시기였죠. 방에서 혼자 파괴적인 생각에 깊게 잠겨 있었죠. 에너지를 겨우 끌어내서 오랜만에 밖으로 나왔더니 꽃이 흐드러지게 펴 있는 거에요. 깜짝 놀랐어요. 꽃이 핀지도 모르고 나는 우물 속에서 갇혀 있었구나, 하고요. 아름다운 꽃을 보니 제가 부끄러워졌어요. 나 없이도 계절이 바뀌고 잘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나만 오점같이 느껴졌던 시기입니다. 거기다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삶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짐만 되고 있다는 죄책감도 있었고요. 그런 수치심과 죄책감을 잘 버무린 다음 종교적인 모티브를 한 방울 섞은 것이 도피의 내용이에요. 그 감정들 속에서 저는 죄인일 뿐이고 고해성사라도 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죠. 무신론자인 제가 신을 찾았었네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 결핍은 어떤 벗어날 수 없는 영감의 원천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멀어지고 거리를 두고 싶은데 그 갈아먹음이 작품의 원동력이 된다고나 할까요?
미지_ 예술과 아픔, 결핍을 연결하고 예술을 위해 힘든 감정을 참아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건강해야지 계속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결핍으로 영감을 얻는 건 한시적일 수밖에 없어요.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요. 저는 오래 하고 싶거든요. 이건 창작자이든 아니든 공통적인 것 같아요.
미지님이 음악 안에 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미지_ 우선시 하는 건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가’예요. 1집 때에는 불안정한 성장환경에서 겪었던 고통과 분노, 병적인 생각들을 위태롭지만 당당하고 솔직하게 세상에 남기고 싶었어요. 거기서 청자를 상상해보면 어머니를 주요 양육자로 둔 딸들이 제 음악을 듣고 각자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떠올리면서 각색의 고리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앞으로는 현재의 나의 모습을 조금 더 편안하고 가볍게 담아내고 싶어요. (웃음)
말씀하신 1집의 경우 어머니에 대한 좋고 싫은 감정을 모두 담고 있으니까 조금 복합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 또한 청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미지_ 그 곡들을 쓸 때 정말 ‘나 죽네, 나 죽네’ 하던 시기였어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걸 누구도 들을 텐데’하는 생각은 안 했어요. 정말 나를 위한 작업이니까 솔직하지 않을 수도 없었고요. 그냥 내가 죽어도 이 음악들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또 그렇게 남기를 바라면서 만들었어요. 정확히 어떤 메시지를 써야지가 아니라 그 메시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로든 가닿지는 않을까 했고요. 어머니의 몸에서 제가 나왔고 엄마와 딸은 서로 너무나 가까운 사이죠. 그럼에도 당연히 다양한 감정이 다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좋을 수만은 없죠. 저는 그게 아주 큰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느껴요. 예전에 어머니께 1집 수록곡 ‘Girl’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들려드렸었어요. 눈물이 그렁그렁 하셨죠. 어머니를 참 많이 미워했던 당시의 저를 이해해주세요. 지금은 오히려 어머니가 저에게 당시에 못 해준 부분이 많다며 미안하다고 하세요. 당신의 잘못이 전혀 아니니까 제발 그러지 말라고 웃으며 말리기도 해요. (웃음)
솔로로 활동하시지만 음반은 밴드 구성의 록을 중심으로 꾸리셨어요. 요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밴드와 록을 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미지_ 세션을 구하려는 시도를 몇 번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1집 편곡을 하면서 멋진 드러머와 베이시스트를 만나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앨범은 록 사운드를 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특히 밴드 ‘Hole’을 들으면서 그 결심을 굳혔었죠. 결정적으로 제가 듣고 자란 음악이 록이라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밴드 음악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딱히 한 적도 없고요. 최근에는 그런 생각도 좀 해요. 1집은 콘셉트 때문에 몇몇 곡들은 디스토션이 빵빵하게 들어간 기타가 필요 했었지만 다음 앨범에서는 편안하게 흘러가는 기타 사운드와 함께하는 밴드 편곡도 참 재밌겠다고요. 저라는 사람이 변하니까 창작물도 그런 거겠죠.
천미지가 만들어갈 길
활동하시면서 제일 행복했던 순간도 궁금해요.
미지_ 공연으로 한정하자면 1집 쇼케이스 때요. 밴드 셋으로 공연을 한 게 거의 처음이었는데 늘 꿈에 그리던 밴드 구성으로 무대에 서니까 행복하더라고요.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을 정도로요. 생기 스튜디오에서 했었는데 그 공연이 제가 했던 공연 중 가장 에너지가 좋았던 공연이 아닐까 싶어요.
현재 소속사 없이 활동 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혼자 모든 걸 처리하는 게 힘들진 않으세요? 경제적인 부분 역시 마찬가지고요.
미지_ 힘듭니다. 그래도 해야죠. 제가 굉장한 야심가가 아니어서 좋은 성과를 내면 소속사가 생기겠지, 뭐. 아니면 어쩔 수 없고. 하고 생각하곤 있어요. 어쨌든 제가 할 수 있는 건 좋은 음악을 열심히 만드는 거예요. 곡을 만들고 음반으로 내는 것들이 이제 제 삶에서 뗄 수 없는 부분이 됐어요. 그게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요. 경제적인 걸 채우려 많은 인디 음악가들이 그렇듯 저도 따로 돈을 버는 일을 겸하고 있어요.
거기에 미지님 곁에는 든든한 동료들이 참 많잖아요.
미지_ 맞아요. 1집의 공동 프로듀서이자 편곡부터 마무리 과정까지 도움을 준 동료이자 오래된 친구 김사월, EP의 수록곡 [몸]의 신스 편곡과 [Everyone So Loves Me!]의 기타 연주와 믹싱에 도움을 준 피아노 슈게이저, 코스모스 슈퍼스타, 서이다, 애리, 키라라, 인메이, 드러머 무이, 베이시스트 서현…. 휴 잠시만요. 빼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웃음)
2021년도 어느덧 저물어 가네요.
미지_ 올해는 활동을 많이 못해서 좀 아쉬운 해였어요. 간간이 사운드 클라우드에 데모 음원을 올렸지만 사실 그게 다예요. 현생에 치이면서 유독 힘들기도 했고요. 자기표현 욕구가 표출이 안되니까 쌓여서 이상하게 발현되기도 하고. (웃음) 그래도 크게 보면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아요. 조금씩이라도 곡을 계속 만들고 있으니까요. 곡이 많이 쌓였고 앨범으로 묶을 만큼 나와 있으니까 다시 천천히 작업하면 되겠지 하고 있어요. 긍정적으로요.
끝으로 활동 계획을 묻고 싶어요.
미지_ 내년에는 꼭 정규를 내는 게 목표예요. 편곡을 조금씩 하고 있거든요. 또 상황이 좋아져서 공연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재밌게 음악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천미지의 음악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가 품고 있던 거칠고 각진 ‘미지의 영역’을 찾아낼 수 있길 바랍니다. 쓰기 위한 노래가 아닌 치유하고 바로보기 위해 쓴 나를 향한 음악들. 천미지의 손끝에선 오늘도 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