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로 출근길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권리의 주장도 좋지만 적법한 절차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목소리는 일면 타당할뿐더러 절대다수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습적인 시위는 지양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이동권’이 왜 이들에겐 투쟁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어 도착이 지연되거나, 기다리던 엘리베이터가 늦게 도착할 때면 우린 불편을 느낀다. 찰나에서부터 수 십 분에 이르는 그 시간 동안 견딜 수 없는 불편을 우리는 인내하지 못한다. 그러나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 십 년에 걸친 인내심을 요구하는 아이러니가 우리 사회에 펼쳐지고 있는 셈일뿐더러,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불합리와 불평등이 비단 이동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욕구는 개인의 자유 하에 원하는 장소를 가기 위함이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이동권의 침해는 곧 다른 기본권의 제약과 직결될 수밖에 없기에, 이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제약 중 본 글에서는 문화공연에 대한 장애인들의 제한된 권리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장애인들의 시각과 입장에서 바라본 공연 문화에 대한 접근성을 짚어봄으로써 현 상황에서 이들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한계를 기술하는 한편,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의 필요성을 담고자 했다.
누군가에겐 넘기 힘든 공연 현장의 문턱
갑작스러운 재난과도 같았던 코로나가 온 세계를 덮친 지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산업 하나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관객과 직접적인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공연계가 입은 피해는 그야말로 막대했다. 코로나가 주춤하며 각종 거리두기 제한이 모두 해제된 지금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며 각종 공연을 재개하고 있는 건 그간 중단되어 왔던 관객들과의 열린 소통을 재개하고자 함이다. 늘 그렇듯 공연 현장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장애인들 또한 비장애인들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수단과 환경이 부실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따금 공연 현장에서 장애인 전용석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그곳에서 실제로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마주한 적은 공교롭게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러한 공교로운 경험은 통계 자료를 통해 사실로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가 발표한 2020년 장애인 관련한 통계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주말에 문화 예술을 관람하는 장애인은 단 6.9%로 비장애인 20.1%에 비하면 약 1/3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문화 예술 현장에서 장애인의 소외 현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참고로 2017년도의 통계 역시 단 6.4%에 불과하기 때문에 2020년의 통계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는 건 장애인들의 문화 예술 경험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연장으로의 접근을 가장 크게 방해하는 건, 장애인들에게 채워진 ‘이동권’의 제한에 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갈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된다는 건,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이동과 연관된 모든 권리와 자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동권의 문턱을 가까스로 넘는다 하더라도 산적한 문제는 적지 않다.
1) 공연장으로의 접근성 제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을 연구해 온 ‘0set프로젝트’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서울 혜화동 대학로 공연장 120곳 가운데 장애인이 활동보조 없이 입장할 수 있도록 시설을 조성한 곳은 14곳(11.7%)에 불과했다. 부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공연장 역시 21곳(17.5%) 뿐이었다. 중대형급의 공연 극장의 수가 지극히 제한적이고, 반대로 규모가 작은 공연장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공연계 현실을 비추어봤을 때 이는 사실상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제한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공간 중 세종문화회관의 경우 휠체어석이 1층 가장 뒷좌석에 위치해있음에도 앞 좌석과의 단 차이가 없어 시야를 가리는 등, 그나마 최소한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중 대형 공연 현장들의 여건도 장애인의 입장에선 편리하다고 보기 힘들었다.
또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극장이 있다고 해도 장애인 관객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작품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 또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연극을 제외하고는 무용이나 국악, 뮤지컬 장르는 배리어 프리 도입률이 낮고, 연극조차도 공연 전 회를 배리어 프리로 하는 극장은 드물다. 배리어 프리를 감안하여 관련한 설비나 지원을 하고 있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지정일에 한해 자막과 수어 해설을 제공하고 있어서 직장 일정 등을 고려하면 장애인들에겐 선택 폭이 정말 좁은 것이 현실이다.
2) 공연 현장에서의 안내 장비 미비
물론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이나 자막,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 등, 새로운 시도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설들을 이용하기까지의 과정을 또한 감안한다면 장애인들은 한 번 더 문턱을 넘어야만 비로소 공연 감상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바로 공연 현장 내 적절한 안내 시설 및 인력의 부재가 바로 그것이다. 2022년인 지금도 극장 입구에서부터 안내 데스크까지 점자 블록이 설치가 되지 않은 곳들이 여전히 많으며, 또 현장에서 수어로 통역이 가능한 인력은 전무한 상황이다. 또한 소극장들의 경우에는 내부 객석으로 진입 시 주로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통로에 별다른 손잡이가 없을뿐더러 개별 계단에도 색 대비 패드가 부착되어 있지 않아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의 경우 이용에 어려움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공연 현장으로의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시설 그 자체를 개선하는 것에 가장 큰 의의가 있지만,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 접근성을 개선하는 것 또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시설이 받침된다한들 그것을 이용하기 위한 안내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장애인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다양한 홍보 채널을 통해서 장애인들이 관람하기 용이한 배리어 프리 공연을 홍보하고 알리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때문에 시설 개선에 대한 접근과 함께 장애인의 입장에서 충분한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3) 현장의 문턱보다 무서운 근본적인 인식의 부재
앞서 기술한 장애를 가진 관객들의 공연 현장으로의 접근성도 문제이지만, 사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관객의 입장과 창작 주체로서 장애인들을 동등한 대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여전히 배척하는 태도에 있다. 올 1월 관객들에게 공개가 된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의 경우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협소한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예라고 할 수 있다.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청각장애인인 막내아들에게 ‘수화’를 가르치지 않고 정상인의 언어에 적응하며 살도록 키워온 한 유대인 가족의 이야기이다. 영국의 극작가 니나 레인(Nina Raine)의 작품으로, 한 다큐멘터리에서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가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나길 바란다는 한 청각장애인 부부의 인터뷰를 통해 ‘가족이란 그들의 문화나 그들의 언어를 그대로 전수하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 하나의 부족’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원제목인 ‘Tribes(트라이브즈)’에서 한국에서 번안되며 원제목에 작가의 의도를 관객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Tribes>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
이렇듯 청각장애인을 주요한 역할로 설정했을 뿐 아니라 수화 또한 극의 흐름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상황임에도 청각장애인을 연기한 배우가 농인이 아닌 청인 배우였다는 사실은 극단과 제작사 측에서 창작자로 장애인을 대하는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실제 원작의 경우 실제 농인 배우가 출연해 연기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더욱 아쉽고 곱씹어볼 여지가 남는다.
여기에 더해 실제 청각장애인이 해당 연극을 감상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과 방법은 부재했다는 점도 문제 중 하나였다. 극 전반에 대해 자막 제공이 불가하며 일부 구간에 한정해 제공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제 청각장애인의 경우 제대로 이 공연을 감상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극 전반을 이끌고 있는 장애인이 주요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주요한 관객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주체 측의 태도는 장애인의 공연 관람에 대해 우리나라 공연계에 만연한 구습을 답습하는 듯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논란과 문제 제기 뒤에 제작사 측에선 농인들을 위한 공연 전체의 자막 제공 및 장애인 전용 지정석을 마련했지만 이 같은 조치 역시 장애인들의 권익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은 결과라 그 역시 아쉬움이 남았다.
4) 공연계에도 불기 시작한 배리어 프리를 위한 움직임
물론 2021년도부터 장애인들의 공연 관람과 접근성 문제를 타파하고자 배리어 프리 공연이 과거 대비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망에 대해 마냥 비관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근래에 이르러 남산예술센터와 같은 중극장과 국립극단을 비롯한 국공립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수어 통역 및 국문 자막, 그리고 화면 해설 영상 등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시설 보완과 보수 작업 역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 또한 긍정적인 요소로 기대할 만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개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건, 그간 집중해왔던 양적 확중을 넘은 질적인 변화에 그 이유가 있다.
기존에는 연극을 비롯한 공연 현장에서 장애인의 접근을 용이하기 위한 시설 및 하드웨어적인 접근이 주였다면 앞으로는 장애의 유형별로 조금 더 세분화하여 각각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에서 전제가 되어야 하는 건, 단순한 배리어 프리를 위한 시설 확충을 넘어 공연 관람의 질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과 각계각층의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공연 문화가 성숙한 유럽 국가에서 자리 잡은 배리어 프리는 그런 면에서 우리가 참고해 보면 좋을 유의미한 사례가 된다. 시각 및 청각 장애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공연 시작 전 무대와 소품을 직접 만져보고 가까이서 경험하는 ‘터치 투어(Touch Tour)’는 이미 그들에겐 보편화된 방법이다. 이밖에도 대사, 혹은 서사가 없거나 부족한 무용 작품에 대한 접근이 장애인들에게 특히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여 지난해 말부터 자막과 배경 설명이 흐르는 ‘스마트 안경’을 도입했다는 영국 국립극장의 접근은 장애인 관객들의 공연 만족도를 고심한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청각 장애인들이 누릴 수 있는 공연 관람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을 통해 장르나 회차에 상관없이 언제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는 그들의 노력에서 장애인의 공연 접근성을 대하는 그들의 근본적인 태도를 확인해볼 수 있다.
정책과 제도적 뒷받침과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
장애인의 공연 현장으로의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앞서 기술한 문턱을 낮추는 방안이 계속해서 논의되고 도출되어야 한다. 시설 보수라는 단일한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장애인들의 불편을 고민해야만 ‘문턱’을 낮출 수 있으며, 이를 위한 각고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문화 공연 현장을 방문하는 장애인들의 숫자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중장기적인 접근과 계획 또한 함께 수립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공연의 제작에 앞서 시각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음성 해설 대본부터 자막 오퍼레이터, 수어 통역 인력 등 각종 전문인력의 양성과 배치가 지금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 전문 인력들이 전문기관을 통해 꾸준히 양성되어야 함은 물론 이를 위한 제도적, 국가적 뒷받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장애예술 그 자체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장애예술인 양성 또한 앞으로 단계별로 추진해나가야 한다.
얼마 전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장애인들의 문화 예술 활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을 통해 정보 접근성과 자립적 환경 조성 기반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더해 창작자의 일원으로 장애예술인에 대한 공정한 활동 기회 보장도 함께 약속했다. 국공립 문화시설에 배리어 프리 기준을 강화하고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활동을 제도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며, 그에 따른 예산을 지원하고 장애예술인 작품의 공공기관 우선 구매 및 유통기회를 확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장애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핵심적인 국정과제”라는 정부의 발표가, 그리고 그 목표 하에 수립된 현 정부의 장애인 관련 정책이 이번 정부에선 약속한 만큼 이행되길 바란다. 배리어 프리가 더 이상 배려가 아닌 필수 사항으로 우리 모두에게 인식되길 바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경계 없는 평등한 권리를 위한 제도적 지원과 실행을 위한 건강한 담론 또한 조성되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문화 예술 공연과 그것들로 인한 감동과 영감이 장애인에게도 차별없이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공평함 또한 투쟁해서 쟁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권리’가 되는 세상이길 바란다.
- 한겨레, “그럼에도 지하철을 탑니다” 전장연 박경석 대표 인터뷰, 2022
- 한겨레, 극장 내 휠체어석은 왜 맨 뒤에 있나요, 2022
- 뉴시스, 인수위, 장애인 이동권 강화…”장애물 없는 교통환경 확대”, 2022
- 웹진 연극인, 농인이 바라보는 공연계와 배리어 프리, 2022
- 한국예술교육학회, 장애인 문화여가활동 현황 연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