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보통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복잡다양한 세상에서, 패션의 흐름은 하나가 아니다. 아래에서 위로, 하위계층의 패션이 대중으로 확산된 경우는 없었을까? 이전 글에서 미리 말했듯이, 전통적인 관습과 질서를 거부하는 반항적인 패션이 있다. 바로 ‘안티패션’이다. 패션은 사회의 부조리를 외칠 때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도구였다. 최전선에 있다고 할까. 그래서 사람들은 패션을 대담한 방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안티패션의 등장 배경
지난 글, 디올이 앞장섰던 패션의 대중화를 떠올려보자. 1950년대 디올은 오뜨 꾸뛰르의 범위를 기성복 시장까지 확장함으로써 패션의 대중화를 이끌어냈다. 오뜨 꾸뛰르라는 고급 패션과 대중의 접점이 점차 확대되면서, 패션은 대중문화와 깊은 영향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특히 1950-60년대는 사회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대량생산 시스템이 발전했고, TV, 영화, 잡지 등 대중 매체가 생겨나면서 대중문화도 빠르게 발달했다. 또 도시화와 함께 개인주의도 확산되었다. 경제가 성장하고 중산층이 확대되었으며, 이들의 소비와 문화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힘입어 패션은 더욱 개인화되고 다양해졌다.
패션이 대중문화와 가까워지고, 패션의 소비가 활발해지는 것은 의미가 깊다. 패션을 소비할 만한 여력을 가진 사람이 증가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패션을 접하게 된 것이다. 패션에 접근하고, 경험하고, 시도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졌다. 즉, 패션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면서, 패션으로 자신의 취향, 가치관, 사고방식을 드러내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분, 경제적 능력과 같은 집단적 특성보다 개인적인 욕구가 패션에 담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패션은 대중문화의 발달과 함께 세상의 다양한 가치관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한편, 사회의 빛나는 발전 아래에는 짙은 그림자가 있었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사회문제가 여럿 드러났던 것이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했고 인간의 가치를 경시하는 풍조가 생겼다.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됐고, 도시 노동자의 삶은 고단했다. 이러한 문제는 곧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량생산이 가져온 획일화된 사회를 거부하고, 주류 사회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생긴 것이다.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이 확산되면서 정해진 규범을 거부하는 성격이 짙어졌다. 보편성을 지양하고 독창적인 개별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상황은 당시의 패션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사회에 대한 반항적인 의견을 담고 개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안티패션이다.
주류 사회에 대한 저항
안티패션은 ‘저항’의 의미가 강렬하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저항일까? 안티패션은 사회에서 가장 굵게 구분된 경계에 도전한다. 바로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권력의 경계다. 자본주의, 대량생산, 기성세대, 엘리트주의, 보편화된 규범 등 기존에 ‘주류’로 정의되며 권력을 가진 대상에 대한 반발을 표현한다. 주류 패션의 고정적인 속성에 대해 도전장을 던지기도 한다. 안티패션은 하위 집단의 이야기이자, 비주류가 주류에 대항하는 방식이다. 20세기 후반, 안티패션이 시작됐던 시점의 세 가지 패션을 보며, 그 저항의 맥락을 확인해보자.
1) 히피
히피는 196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생겨났다. 당시 젊은 층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태어나, 냉전과 월남전 등 전쟁의 고통을 몸소 겪었다. 또 미국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뤘다. 경제적 풍요에 힘입어 산업화의 속도가 빨라졌고, 소비활동도 매우 활발해졌다.
그래서 히피는 저항했다. 잔인한 전쟁을 거부하고 사랑과 평화를 추구했다. 산업화의 물질주의적이고 획일화된 사회를 비판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강조했다. 도시를 거부하고, 자연을 추구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소외 현상을 비판하며, 민속적인 가치를 기억하려 했다. 그래서 히피의 스타일은 에스닉하고, 꽃과 같은 자연물 프린트를 잔뜩 강조하거나, 몽환적인 패턴을 사용한 모습이다. 히피는 정신적 해방과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마약 사용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정신 착란을 형상화한 사이키델릭(Psychidelic) 패턴이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2) 펑크
펑크가 가장 두드러지던 때와 장소는 1970년대 영국이다. 이때 영국은 경제난이 심각했다. 오일쇼크까지 겪으며 인플레이션이 심각했고, 결국 IMF의 금융지원을 받을 정도였다. 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노동자 임금에 제한을 걸었고, 이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일으켰다. 당시 영국의 하위계층, 노동자, 젊은 층에서 분노가 극심했다. 펑크는 이들이 느끼는 혼란과 좌절, 주류 사회에 대한 분노를 대변했다.
그래서 펑크는 국가나 정부, 지배계층과 사회의 규범을 거부했고, 주체적인 태도와 독립적인 사고방식을 강조했다. 대량생산 시스템의 획일적이고 동일한 모양새를 거부하고, 개별성을 추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체적인 태도와 개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DIY(Do It Yourself) 정신은 펑크에서 정말 중요한 개념이었다. 펑크는 DIY 개념을 바탕으로 티셔츠를 찢고, 메시지를 적거나, 여러 소품을 사용했다. 안전핀, 스터드, 스파이크, 체인, 지퍼, 자물쇠, 스트랩 등을 주렁주렁 달았다. 헤어 스타일은 삐죽삐죽했고, 화장은 짙은 스모키가 상징이었다. 펑크는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3) 그런지
그런지 패션의 배경은 1990년대 미국이다. 1990년대 초, 미국은 경제 성장률이 둔화했고 실업률도 증가하던 시점이었다. 바깥으로는 걸프 전쟁, 안으로는 경기 침체에 불안과 우울이 점철된 때였다. 그런지 록과 패션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함께 불안정한 현실에 대한 불만, 두려움, 냉소 등을 표출했다.
그런지는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며, 엘리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주목했다. 그래서 그런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빈곤’을 대놓고 과장한다는 것이다. 구멍이 잔뜩 뚫려있고, 올도 풀리고, 곳곳에 찢어진 디테일들이 숨김 없이 나타난다. 정신없이 이것저것 갖다붙인 지저분한 믹스앤매치와 과도한 레이어링으로 아무 옷이나 잔뜩 주워입은 모양새를 묘사하기도 했다. 빠르게 바뀌는 주류 패션의 유행에 반대하며 오래되고 닳고 헤진 디테일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지는 사회가 규정한 정상이라는 범주에 질문을 던지고, 아름다움의 기준에 도전했다.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패션
안티패션은 사회적인 기준에 동조하지 않았고, 사회적인 시선에 아름다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자기 집단에 대한 주체적인 사고방식에 집중했다. 즉, 상위 집단의 권력에 반항할 뿐만 아니라 하위집단 스스로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확실하게 내세우면서 오롯이 구별되고자 한 것이다. 패션이 사회의 권력적인 기준에 저항했던 방법은 주류 사회로부터 하찮게 여겨져 왔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규칙과 기준에 코웃음치고, 마이너한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안티패션을 표현하는 하위계층은 오히려 스스로의 정체성을 차별화했고, 자신 있게 드러냈으며 오히려 과장하기까지 하면서 사회적 풍자를 노렸다.
안티패션이 드러낸 독창적인 정체성은 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주류 패션은 안티패션에서 영감을 얻었고, 여러 요소를 차용하고 완화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놓았다. 그 과정에서 안티패션의 공격성은 완화되고 대중성은 더해지면서 주류 패션으로 확대된 것이다. 물론, 20세기 후반에는 히피와 펑크를 주도했던 젊은 계층이 베이비붐 세대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았던 것도 큰 이유였을 것이다.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소비가 활발하던 사회적 배경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위문화에서 대중문화로 확산되는 트리클업(Trickle-up) 구조가 완성되었다. 비주류를 대변했던 안티패션은 주류 패션을 휩쓸게 되었다.
안티패션은 21세기의 패션에도 여전히 큰 축을 차지한다. 히피와 펑크 등에서 시작했던 20세기를 지나면서 안티패션의 도전은 심화되었다. 더 다양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발굴하고, 도전하고, 질문을 던지고, 정답을 파괴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패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주류 패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패션에서 표현될 수 있는 아름다움의 정의에 대해 고민했고, 패션의 정형화된 구성을 파괴하는 해체주의에 주목하기도 했다. 안티패션은 기존에 합의되고 검증된 스타일을 거부하고, 새로운 패션을 이끌어냈다.
안티패션에서 던지는 질문은 사회를 향하고, 그 의도는 사회를 놀래키는 것이다. 예쁘거나, 찬양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거부반응을 보이길 기대했으며, 놀람을 즐겼다. 이런 괴짜 같은 특성이야말로 사회의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는 충분조건이지 않을까? 대중의 동조를 바라지 않고, 파장을 일으키는 것. 안티패션에서는 사회에서 소외된 부분의 특징이 자랑스럽게 드러나고, 새로운 가치로 인정 받았다.
안티패션은 패션을 거부했기에 패션이 되었다. 그 자체로 패션의 새로운 경향성이 되었고, 패션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대중의 입맛에 맞춰진 주류 패션과 달리 더 다양한 가치관을 담고, 더 다양한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었다. 비주류와 주류의 경계에 도전한 결과였다. 여전히 현대사회는 여러 군데에서 권력의 경계가 명확히 그어져 있다. 아직 안티패션의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 권하진, 2000년대 이후 나타난 펑크패션의 미학적 고찰, 한국패션디자인학회지(제15권 제1호), 2015
- 김선영, 21세기 패션에 나타난 그런지 룩의 표현특성, 복식문화연구(제19권 제5호), 2011
- 변영희, 채금석, 현대패션에 나타난 Anti Couture 경향 연구, 한국의류학회(제33권 제7호), 2009
- 오현경, 이연희, 현대 여성 컬렉션에 나타난 히피 스타일의 재현적 특성, 한양대학교 의류학과, 석사학위
- 임소영, 하지수, 21세기 안티패션의 특수성에 관한 연구, 한국패션디자인학회(제21권 제1호), 2021
- 임아름, 임은혁, 킨포크 매거진에 나타난 안티패션 경향,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 석사학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