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림로를
살려줍서

비자림로의 개발과 보존 사이
권력에 맞서는 이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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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8일, 제주 비자림로에는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 회원 50여 명이 모였다. 비자림로 확장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공사 중단 챌린지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서 봉개동을 잇는 1112번 지방도, 이른바 ‘비자림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손꼽힐 만큼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쭉 뻗은 삼나무들이 촘촘한 군락을 이루고 있던 이곳이 몇 해 전부터 논란의 중심이 됐다. 제주도에서 비자림로의 늘어난 통행량, 이용객 편의 등을 이유로 도로 확장 공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공사는 2018년 착수 이래, 다수의 시민과 환경 단체의 반발로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편의를 위한 자연 파괴는 무분별하게 자행되어 왔다. 그런데도 비자림로 확장 공사가 유독 첨예한 갈등을 빚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행정 권력에 맞선 사람들이 쉼 없이 부르짖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삼나무는 베어져도 되는가

이미지 출처: 한국도로공사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해 마지않는 제주는 하늘과 바다, 숲이 한데 어우러져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보물섬이다. 특히 울창한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숲 내음을 한껏 들이킬 수 있는 비자림로는 제주 여행의 필수 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도로의 동북쪽 끝에 비자림이 있어 ‘비자림로’라고 이름 붙었지만, 실제로는 삼나무로 가득한 길이다. 2018년 6월 착공한 비자림로 확포장공사는 대천 교차로에서 금백조 입구까지 2.94km의 구간을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는 늘어나는 교통량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도로 확장을 위해 벌목은 불가피했고, 4~50년 동안 곧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켰던 삼나무들이 무참히 쓰러지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지자체와 공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삼나무가 가치 없는 유해수종이라고 주장하며 삼나무 벌목을 정당화한다. 삼나무는 일본 규슈지방에서 주로 재배했던 나무로,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제주의 목재를 생산하고 수탈하기 위해 심기 시작했다. 이후 1960~70년대에 국가적으로 대대적인 녹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삼나무는 도내 약 7천만 평의 땅을 차지하게 된다. 천연림이 아닌 인공조림이라는 점, 개체수가 너무 많다는 점, 삼나무 꽃가루가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피부염 등을 유발한다는 점 등은 삼나무 벌목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이는 다소 위험한 생각이다.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숲은 파괴되고 황폐해져 그 형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 조림 사업을 권장했고, 지금의 아름다운 숲들을 조성할 수 있었다. 위 주장에 따르면, 인공적으로 형성된 삼림은 진정한 자연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훼손해도 무관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숲이 인공조림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을 향한 어떤 파괴나 훼손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봄철 꽃가루는 비단 삼나무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나무 또한 송홧가루를 내뿜으며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자연에는 인간에게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수많은 요인이 존재한다. 개인의 면역체계 또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삼나무가 누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단정 짓기 어렵다.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 대상을 제거해버려도 된다는 게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고 기만적인 발상인가.


공사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

이미지 출처: 뉴시스

그러나 삼나무의 가치에 대한 논쟁은 이 사안의 진정한 논점을 흐린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삼나무를 베는 행위 자체를 넘어, ‘이 공사가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제주도는 비자림로가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기에 비좁고, 겨울철이면 결빙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는 이유로 확장 공사를 계획했다. 하지만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다른 대안이 존재함에도, 가장 단순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고 호소한다.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고 교통 체계 및 갓길 정비, 충분한 제설 대책을 세움으로써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아무리 중요한 자연환경이 있어도 통행량이 많으면 언제든지 도로를 확장할 수 있다는 논리대로라면, 제주도의 모든 도로는 개발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다른 대안을 두고 생태계 파괴를 야기하는 공사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¹⁾ 현재는 2.94km의 공사 구간이 짧은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자림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 이와 연결된 도로나 교각 또한 불가피한 공사를 면치 못할 것이다. 비자림로 확포장공사는 비극의 단초에 불과하다.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_jeju_lala

삼나무가 사라진다는 건 귀한 나무가 베어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삼나무 숲이 다양한 동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2015년에 비자림로에 대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²⁾를 진행했다. 도가 제출한 평가서에는 ‘계획노선 및 주변 지역에는 보호되어야 할 멸종위기야생동물은 서식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어 중요한 동물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는 결론이 담겼다. 그러나 이 평가서는 거짓으로 작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실함의 총체였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2019년 5월, ‘비자림로 시민 모니터링단’은 비자림로에서 멸종위기종인 팔색조와 애기뿔소똥구리 등을 발견하고 환경청에 이 사실을 신고한다. 환경청은 즉각적인 공사 중단과 정밀 조사를 명령했고, 이에 참여한 김종원 계명대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평가서의 조작 가능성을 주장했다. 실제 비자림로에 서식하고 있는 보호종들이 목록에서 누락되거나 조사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점, 조사 결과의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그 근거였다. 제주 행정 권력의 환경윤리 의식 부재는 물론이거니와 생태 보존에 대한 일말의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는 지점이다.


‘생태도로’의 자격이 있는가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_jeju_lala

제주도는 세 번의 공사 중단을 겪으며, 환경청과 시민들의 환경영향 저감 요구를 수용하고 비자림로를 ‘생태도로’로 재탄생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우선 왕복 4차선을 유지하는 대신 확장 도로 폭을 기존 21m에서 16.5m로 축소하기로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서식 동물들의 로드킬 방지를 위해 왕복 5.88km의 동물보호 울타리도 설치하고, 삼나무를 벤 자리에 제주의 향토수종을 이식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의 대체 서식지 마련에도 힘썼다. 2021년에는 법정보호종인 애기뿔소똥구리 1,487마리를 포획해 아부오름으로 이주시켰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과 환경단체의 시선은 탐탁지 않다. 자연을 파괴해서 만든 도로에 ‘생태도로’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부터가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공사 소음으로 새들이 번식을 포기하고, 곤충들은 영문도 모르게 강제 이주를 당하는 동안 비자림로의 생태는 크게 흔들렸다. 기존의 생태계를 교란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는 행위가 과연 생태도로라는 명칭에 걸맞은가.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많은 이들의 간절한 저지에도 불구하고 확장 공사를 위한 벌목은 최근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공사 시작 이후 베어나간 삼나무만 약 3천 그루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시민들은 아직 비자림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환경단체에서는 제주시를 상대로 비자림로 도로 구역 결정 무효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벌목된 나무들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공사를 중단하는 것만으로 생태 보전에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비자림로를 가로지르는 하천이자 멸종위기종이 다수 서식하고 있는 천미천 공사와 비자림로 구간의 약 4배 규모인 금백천로 공사 또한 예정되어 있어, 비자림로를 포기한다는 건 앞으로 제주에서 이뤄질 수많은 난개발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안타까운 사실은 비자림로에 대한 논의가 수년간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는 점이다. 서문에서 소개한 시민모임의 공사중단 챌린지 관련 기사도 단 1건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의 모임명은 그들의 절박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직접적인 행동이 어렵다면,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통해 이들에게 힘을 더해야 할 시점이다. 이 아티클이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한 ‘뭐라도’의 일부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한순간의 편리를 위해 긴 세월을 무너뜨리는 일을 우리는 얼마나 더 반복하고 후회할 것인가.

“그 길은 누굴 위한 길일까 / 그 길은 얼마나 많은 삶을 덮쳤을까 /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이 / 사라지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 숲과 바다의 생명들처럼 너와 나 같이 살자 / 너랑 나 다르지만 생명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 이제 선을 지우자 / 사람은 마을을 빼앗기고 / 새는 전투기에 치였지 / 산호초는 숨을 빼앗겼지 / 뺏기지 않는 세상 뺏기지 않는 삶 / 숲과 바다의 생명들처럼 너와 나 같이 살자 / 너랑 나 다르지만 생명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 이제 선을 지우자”

_’같이 살자’, 포스트중등-화경 작사 작곡

1) 뉴스펭귄, [제주 비자림로] 교통불편 해소는 개발 통해서만 가능할까?(2022.05.30)
2) 환경영향평가: 개발사업의 시행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환경영향을 미리 예측·분석하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저감방안을 강구하는 제도

  • 직썰, 7개월 만에 ‘비자림로 벌목 재개’하며 원희룡이 한 말(2019.04.01)
  • 오마이뉴스, 비자림로 공사 환경영향평가, 거짓인가 부실인가?(2019.08.26)
  • 한국일보, 우리는 비자림로를 사랑했다(2020.08.18)
  • 서울신문, 가장 아름다운 도로 비자림로, 생태도로로 다시 태어난다(2022.12.13)
  • 제주환경일보, “비자림로, 이렇게 넓힐 필요 없습니다!.. 재판 앞두고 공사강행 이유 무엇입니까?”(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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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유림

아무래도 좋을 것들을 찾아 모으는 사람.
고이고 싶지 않아 잔물결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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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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