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님께 단상이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세요. ANTIEGG 예진입니다.

경칩이 지나자 볕의 온도는 한층 따뜻해졌습니다. 속속 밝은 녹빛을 띠는 들풀처럼, 이맘때쯤이면 또 다른 시작이 곳곳에 피어나지요. 새 학기, 새로운 프로젝트, 새 만남, 크고 작은 도전으로 이뤄진 새것들의 범람. 새하얀 시작들이 만들어내는 아우성에는 어떤 희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내일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기쁜 수확이 있을 거라는 확신입니다. 끼니마다 건강하게 챙겨 먹고, 하루 한 번 운동하고, 확보된 여가 시간을 또 다른 성장으로 채우는 삶. 오롯이 ‘나’를 위해 촘촘하게 구획된 시간은 매일의 보람을 더합니다. 그런데 소위 ‘갓생’이라 불리는 이 실천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지향할 수 있는 것일까요?

자기 개발의 낭만이 도처에 만연합니다. 미디어는 더 많이 벌고, 더 풍부히 누리고, 더 높이 올라간 사람들을 조명하죠. 세상이 만들어낸 이상향, 높아진 기준치에 청년들은 더 바쁘게 살기 시작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쟁취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근사해 보이기까지 하고요. 이런 ‘바쁨’이 청년이라면 응당 실천할 수 있는 선택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1인분의 삶 자체가 사치라면 어떤가요. 나에게 쏟는 시간이 당연하지 않다면요.

한국은 가족 중심 사회입니다. 가족에 기대어 살아가는 풍토가 존재하고, 대부분 보호자를 직계가족으로 제한하고 있죠. 그 말은 즉, 개인은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돌봄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건강 악화로 생계 활동을 하지 못한다면, 다른 가족 구성원이 부양해야 하지요. 가족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그 안에서 미래를 향한 낙관적, 건설적 기대를 저버리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저 또한 아픈 가족을 돌보는 시간을 보낸 적 있습니다. 내 삶보다 가족의 생멸이 우선시 되었던 시간이죠. 일을 멈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돌봄의 고단함, 수익의 상당 부분을 쏟아붓지만 불확실하기만 한 내일, 지쳤다는 사실을 내색할 수 없는 현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이들 사이 덩그러니 놓인 쳇바퀴처럼, 끝 모를 어둠 속에 놓인 것만 같았지요. 가족돌봄청년이 경험하는 고립감은 입체적입니다.

누군가는 왜 가족돌봄청년을 도와야 하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반을 만들지 못한 가족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냐고 되묻는 이들도 존재하죠. 정희진 작가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문제가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한다는 점이라 말했습니다. 개인의 삶에 드리운 문제는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닌, 사회의 역할이 부재한 결과라고요. 돌봄 역시 가족 안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와 지역사회의 관심이 절실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잊혀진 삶과 조우할 필요가 있어요.

한 사회를 공유하는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구조가 변치 않는다면, 누구나 언젠가 ‘돌봄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가족돌봄청년은 그 순간이 남들보다 조금 일찍 찾아왔을 뿐이고요. 자신에게 몰입하는 하루하루는 결코 당연하지 않습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는 온전히 바쁠 수 있는 몇 시간이 절실할 테니까요. 만약 당신에게 시간이라는 기회가 있다면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르죠. 우리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현재는 행운의 중첩일 뿐, 우리의 완전함은 홀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연대를 통해 나의 세상을 넘어서길. 개인의 안락함이 아닌, 우리의 평화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팀스파르타에서 가족돌봄청년을 알리고 지원하는 캠페인 ‘우리가 바쁜 이유’를 진행합니다. 가족돌봄청년 지원 방법이 궁금하다면 페이지를 확인해 보세요. 거대한 실천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보탤 수 있어요.

  •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구원의 대상이 아닌, 구원의 주체가 될 때만이 사랑은 구원이 된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뿐이다._하미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ANTIEGG에서
예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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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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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써 온기를 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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