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조망하게 하는
과학책 3권

잃어버린 마음의 균형을
자연에서 다시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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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을 떠났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풍경은 웅장한 마추픽추도, 귀여운 라마도 아닌 별이 가득한 밤 하늘이었어요. 이 넓은 세상에서 인간이란 먼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처음 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끝이 없어 보이는 하늘, 넓고 깊은 바다, 여러 은하가 공존하는 우주 등 대자연을 바라볼 때면 일상과 거리가 멀어지며 이토록 작은 존재인 나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높고 넓은 대자연의 시선을 통해 나만의 균형점을 되찾게 하는 과학 책 3권을 소개합니다.


우주 비행사의 태도를
나의 일상 속에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과학책 『우주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표지
이미지 출처: 돌배게

우주에서부터 시작해 볼까요. 시인, 소설가이자 우주 전문 기자이기도 한 작가 마욜린 판 헤임스트라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정적인 사건에 진절머리를 치다 불현듯 한 사진을 떠올립니다. 허블 망원경이 지구 상공 약 547킬로미터 위에서 2003년 9월부터 2004년 1월까지 관측한 사진들을 합성해 만들어낸 ‘허블 울트라 딥 필드‘가 그것이죠. 칠흑 같은 배경에 다양한 모양과 색을 한 3천 개의 은하가 모여있는 아주 아름다운 사진이에요. 저자는 이를 시작으로 우주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허블 울트라 딥 필드, 이미지 출처: NASA

평소 우주와 지구를 멀리서 찍은 사진을 볼 때 느껴지는 이 초월적인 감정이 뭔지 궁금해하던 저자는 한 영상을 보게 됩니다. 우주 비행사 31명의 이야기를 담은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마음속에 일종의 변화가 생겨나는 현상을 ‘조망 효과’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돼요. 우주 비행사들은 먼 거리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지구라는 행성에 대한 사랑, 지구를 보호하고자 하는 욕망,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결감 등을 느꼈다고 하죠. 일상에서 하던 작은 고민과 욕심은 사라지고 좀 더 높고 넓은 관점에서 삶을 돌아보게 된 거예요. 심지어 지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치료적인 효과를 발휘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모두가 직접 우주를 여행할 수는 없더라도, 어떻게 하면 지구에서 ‘우주 비행사의 태도’를 지니고 조망 효과를 경험하며 평온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 나서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며 별 못지않게 중요한 달의 의미, 화성 이주, 외계 생명체 등 우주에 관한 다양한 주제 사이를 탐험하게 되죠.

지구와 거리를 뒀을 때 지구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 우주 비행사들처럼, 가끔 삶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빌딩 숲 사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자연이라곤 가로수와 한 조각의 하늘뿐인 현대 도시 사회에서는 더더욱이요. 너무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죠,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 코앞에서 멀어지”는 순간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주에서 삶을 내려다보는 듯한 ‘우주 비행사의 태도’를 갖춘다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과 걱정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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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모양을 한 작은 휴식

『구름 관찰자를 위한 그림책』

과학책 『구름 관찰자를 위한 그림책』표지
이미지 출처: 김영사

이제 우주에서 하늘로 내려와 볼까요. 사진첩에 하늘과 구름 사진이 가득한 구름 덕후를 위한 책이 여기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구름을 관찰하고 공유하는 ‘구름 감상 협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구름 관찰자를 위한 그림책은 구름 감상 협회 회장인 개빈 프레터피니가 쓴 구름 감상에 대한 안내서에요.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본 뭉게구름부터 쌘 구름, 새털구름까지, 언젠가 본 적은 있지만 이름은 몰랐던 다양한 구름들을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만나볼 수 있어요. 어떤 날씨에, 어떤 원리로 구름이 생겨나는지 쏠쏠한 구름 정보들까지 알 수 있어서 더 흥미롭죠. 늘 멀리서만 봐서 구분이 가지 않던 구름들의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며, 각 구름들의 특징을 사람의 성격처럼 묘사한 글을 보다 보면 작은 웃음이 납니다. 구름에 대한 더 전문적인 지식을 알고 싶으시다면 같은 저자가 쓴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날마다 구름 한 점』 도 함께 추천드립니다.

이미지 출처: 『구름 관찰자를 위한 그림책』

무언가에 너무 몰입했을 때 혹은 작은 문제에 정신이 팔려 예민해져 있을 땐 이 구름 책을 기억해 주세요. 비록 책으로 보는 하늘일지라도 휴식이 필요할 때 펼쳐보면 작은 위안이 되어줍니다. 매일 달라지는 하늘과 구름 혹은 운이 좋을 때 볼 수 있는 분홍빛 노을을 통해 ‘이렇게 넓은 세상과 삶이 있었지, 무언가 성취해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며 한 쪽으로 치우친 마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이 책 모양의 하늘과 구름도 독자 여러분의 기울어진 마음에 균형을 찾아줄 거예요.


『구름 관찰자를 위한 그림책』 구매 페이지


폐허 속 솟아오르는
버섯 같은 희망

『세계 끝의 버섯』

이미지 출처: 현실문화연구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딛고 섰습니다. 가을은 특히나 땅을 밟으며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죠. 숲 속 나무 사이를 거닐다 보면 종종 작지만 씩씩하게 우뚝 서있는 버섯을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여기 송이버섯에 대한 내용으로만 500페이지를 채운 버섯 책이 있습니다. 도대체 작은 버섯에 대해 이야기할 게 뭐가 그렇게 많을까 싶지만, 많습니다! 송이버섯은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으로 파괴되어 생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을 때, 그 자리에 가장 먼저 생겨난 신비로운 생명이거든요. 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화된 숲에서 제일 먼저 움튼 버섯, 비싼 돈에 거래되지만 인간이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재배하려고 하면 절대 순순히 자라주지 않는 버섯이기에 이 버섯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요.

이미지 출처: Unsplash

이 책은 송이버섯이 생태계에서 하는 역할, 다양한 인종의 난민과 이주자들이 각자 사연을 가지고 송이버섯 채집에 뛰어드는 이야기, 그 채집된 버섯들이 거대한 상품 사슬에 올라타 고급 선물로 사고 팔리는 과정까지 거대한 세계를 다루는데요. 특히 재밌었던 부분은 송이버섯과 소나무 숲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송이버섯은 땅속 곰팡이의 자실체인데, 이 곰팡이는 소나무에게 양분을 찾아준 대신 소나무로부터 탄수화물을 얻어 자랍니다. 현대 사회에서 부정적인 존재로만 여겨지는 곰팡이는 숲에서 자신과 다른 생명을 위한 숲의 환경을 조성해내는 건설자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데요. 수십 년에 거친 벌채로 황량해진 숲에서 더 잘 자라는 소나무와 폐허 속 가장 먼저 나타난 생명 송이버섯이 곰팡이의 특성을 활용해 도움을 주고받으며 생태계를 재건하는 과정은 꽤나 놀랍습니다.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폐허 속에서 자연은 인간의 인위적인 조작 없이도, 심지어는 인간의 방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오염시키고 침범하고 다시 이어 붙이면서 더 다채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작은 송이버섯 하나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아무리 황폐화된 마음이어도 서로의 손을 잡고 다시 한 번 일어날 용기를 내보자는 마음이 솟아올라요.


『세계 끝의 버섯』 구매 페이지


삶의 균형 혹은 마음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다시 되찾아오는 방법 중 하나는 사람이 없는 자연 속으로 떠나는 것이죠. 주로 삶의 대부분의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니까요. 하지만 자연 속으로 떠날 여유가 없으시다면, 이렇게 넓고, 높고, 또 낮은 자연을 그려내는 과학 책을 펼쳐보시는 건 어떨까요? 자연은 이렇게나 신비롭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며, 불완전하지만 기어코 다시 일어서고 맙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자연의 이야기 앞에서, 타인의 침범 하나 작은 실수 하나에 마음이 금세 황량해지는 인간은 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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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다혜

서점에서 일하는 여름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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