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퀴어 영화 신작 7편

자연스러운 대세로 떠오른
다양한 형태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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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그 해 영화 시장의 동향을 살펴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독립예술영화의 트렌드와 성장을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죠.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가 스물네 번째 봄을 맞았습니다. 올해는 247개의 작품 중 유독 퀴어를 다룬 것이 많았고, 이에 프로그래머는 “퀴어가 자연스러운 대세로 떠올랐다”는 평을 남겼습니다. 이젠 그것을 담아내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을 만큼 보통의 사랑으로 스며든 이야기,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최신 퀴어영화 7편을 소개합니다.


<폭설>

영화 <폭설>
이미지 출처: 영화 <폭설>,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빈티지한 색감과 환상처럼 부연 분위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예술고등학교에서 만난 두 소녀는 ‘우정 연기’와 ‘멜로 연기’ 사이 미묘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헤어지고, 이후 버젓한 성인 배우가 되어 재회합니다. 성공을 거뒀지만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충동에 괴로워하던 두 사람은 강릉의 바닷가를 표류하다 조난되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묘한 하룻밤이 인상적입니다. 거센 파도와 새하얀 폭설 아래 지독한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입니다. 배우 한소희의 신인 시절 찍은 영화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폭설> 공식 트레일러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영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이미지 출처: 영화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폭력의 시대에도 청춘은 용감했습니다. 1999년 한 고등학교 태권부를 배경으로 우정과 사랑, 사회의 부조리를 그려냈습니다. 태권부원 주영과 소년원 학교에 다니는 예지의 운명적 만남을 중심으로 당시엔 관습이라 여겼던 운동부 내의 폭력을 함께 다뤘습니다. 금기시되던 사랑과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 맞물립니다. 순수하기에 도리어 강인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풋풋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공식 트레일러


<도깨비불>

영화 <도깨비불>
이미지 출처: 영화 <도깨비불>,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포르투갈의 백인 왕자가 흑인 소방관을 만나 불붙듯 사랑에 빠진다는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현대 포르투갈 영화계의 떠오르는 거장 주앙 페드로 호드리게스의 신작으로 파격적인 노출 수위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왕자에게 억눌려 있던 정치적·역사적·계급적 책임감이 인물들의 맨몸을 통해 터지듯 분출됩니다. 순식간에 피어난 도깨비불처럼 충동적이고 열렬한 사랑. 현실이 냉정할수록 더욱 뜨거워지는 그들의 욕망이 불처럼 번집니다. 제4의 벽을 깨는 소격효과, 군무가 돋보이는 뮤지컬씬, 2069년의 미래 배경이 섞여 독특한 연출이 돋보입니다.


<도깨비불> 공식 트레일러


<50cm>

영화 <50cm>
이미지 출처: 영화 <50cm>,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동성애와 장애 중 어떤 것이 더 짐이 될까요? 시각장애인 가영의 목표인 마라톤은 그녀의 애인 은정이 도와줘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은정은 자신의 사랑이 연민 어린 보살핌이자 우정으로만 비치는 것이 속상하고 가영은 어찌할 수 없는 스스로의 몸뚱어리가 원망스럽습니다. 폭염이 내린 여름, 둘 사이를 잇는 50cm의 끈이 함께 발걸음을 맞추는 동행인지 서로를 힘들게 하는 족쇄인지 혼란스럽습니다. 동성애와 장애, 소수자의 사랑을 담담하게 그린 단편입니다.


<50cm> 공식 트레일러


<어젯밤에 연희가
날 더듬은 것 같은데>

영화 <어젯밤에 연희가 날 더듬은 것 같은데>
이미지 출처: 영화 <어젯밤에 연희가 날 더듬은 것 같은데>,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천방지축 풋사랑을 발랄하게 시각화했습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40주년 특별전에 초청된 2013년도 단편으로 열일곱 살 소녀 정민이 첫키스 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정민은 멋진 남자 선배와 막 교제를 시작했지만 그 첫키스의 대상이 다름 아닌 같은 반 친구 연희였기 때문이죠. 사춘기 소녀의 복잡한 심리를 의식의 흐름대로 쫓아가는 만화적 상상력이 재치 있고 유쾌합니다.


<어젯밤에 연희가 날 더듬은 것 같은데> 공식 트레일러


<신입사원: 더무비>

영화 <신입사원: 더무비>
이미지 출처: 영화 <신입사원: 더무비>,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콘텐츠 IP 시장의 확장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동명의 원작 웹소설이 웹툰으로 재탄생했고, 그 인기에 힘입어 7부작 드라마로 방영된 후 이번엔 극장판으로 찾아왔습니다. 우수한 콘텐츠 지식재산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결과물이자 <시멘틱 에러>가 일으켰던 BL 장르 붐을 이어가는 작품입니다. 해맑고 귀여운 신입사원 승현과 냉미남 파트장 종찬의 아기자기한 연애 이야기. 한국의 대표 퀴어감독 김조광수가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신입사원: 더무비> 공식 트레일러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

영화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
이미지 출처: 영화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신체정치사학자이자 그 자신이 트랜스 남성이기도 한 폴 B. 프레시아도의 영화감독 데뷔작입니다. 주인공의 성별이 바뀌었던 첫 번째 소설, 버지니아 울프의 1928년 작 『올랜도』를 감독의 언어로 재해석했습니다. 26명의 트랜스젠더 혹은 논바이너리 비전문 배우들이 각자의 ‘올란도’를 연기합니다. 7살에서 80살까지 다양한 연령과 성별을 가진 이들은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사회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퀴어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전개하는 작품입니다.


<올란도, 나의 정치적 자서전> 공식 트레일러


퀴어 영화는 개봉이 한참 지나고도 유독 오랫동안 회자되는 장르입니다. 대중적인 것에 비해 그 가짓수가 적다는 특성도 있지만, 쉽게 제작되지 못하는 만큼 한 편 한 편 정성 들여 좋은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올해 그 탄생을 알린 새로운 퀴어 영화들이 계속해서 존재감을 발휘할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WEBSITE : 전주국제영화제
INSTAGRAM : @jeonju_iff


박태임

박태임

다 보고 난 후에야 '진짜 시작'을 외치는 과몰입 덕후.
좋아하는 게 많아 늘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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