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를 향한 비난은
공명정대한가

카피에 반영된
패션 산업의 위계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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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피할 수 없는 카피copy”에서 카피가 패션 산업의 본질이며, 창조를 독려하는 역설적인 순기능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카피가 암시하는 위계질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트렌드를 이끄는 패션산업의 주체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일 뿐이며, 심지어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까지도 이 브랜드들이 주도하고 있음을 비판 없이 수용했다. 즉, 패션 산업은 일부 상위 브랜드 중심으로 기울어져 있고, 카피는 이러한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카피에 얽힌 패션 산업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카피에 대한 비난과 제재

카피를 비난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누군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낸 창작물을 쉽게 도용하고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작물은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 대상이다. 우리는 창조적 활동의 결과물에 대해 소유권과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적극적인 창작 활동을 보호하고 장려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이다. 마찬가지로 패션 산업에서도 카피를 하지 않는 것과, 카피를 들춰내고 지적하는 것까지 모두 굳건한 윤리로 자리 잡았다.

‘루이비통’과 ‘오프화이트’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도 카피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벨기에 디자이너 월터 반 베이렌동크(Walter Van Beirendonck)를 비롯해 ‘크레이그 그린’, ‘생 로랑’ 등 다양한 브랜드에 대한 카피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버질 아블로의 카피 논란에 대해 패션 잡지 GQ에서는 이와 같은 기사가 실렸다. “In Fashion, Copying is Now Cool(이제 패션에서 카피는 멋진 일이다.)” 기사는 버질 아블로의 카피 논란을 옹호하는 반면,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카피는 용인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쉬인’을 비롯한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좋은’ 카피 윤리에서 벗어나며, 특히 아시아의 값싼 노동과 값싼 가격, 품질 등과 연결시켜 카피의 부정적 특징을 강조했다. 좋은 카피와 나쁜 카피를 구분하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카피에 대한 지적에는 편중된 면이 있다. 유독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아닌, 저가 브랜드나 아시아와 연관된 브랜드에 카피에 대한 질책이 향한다.

미국 대학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의 교수 민-하 T. 팜(Minh-Ha T. Pham)은 책 『Why we can’t have nice things』을 통해 카피에 대한 비난과 제재가 중립적일 거라는 환상을 들춰냈다. 필자는 여기서 두 가지 내용에 주목했다. 첫째, 패션 산업에서 카피를 적극적으로 배제하기 시작한 것은 상위 브랜드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함이었고, 둘째, 카피 논란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뚜렷하게 확인된다는 점이다. 카피를 제재하고 비난하는 사회적 정서의 배경에는 엘리트 중심, 서구 중심의 산업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논란이 된 월터 반 베이렌동크 컬렉션(좌)과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컬렉션(우)
논란이 된 월터 반 베이렌동크 컬렉션(좌)과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컬렉션(우), 이미지 출처: 뉴욕타임스

카피를 제재하게 된 배경:
엘리트중심주의

처음 카피를 감독하기 시작한 것은 1932년 설립된 Fashion Originators’ Guild of America(FOGA)라는 단체다. FOGA는 ‘저작권 침해 위원회(Piracy Committee)’를 운영하며, FOGA의 멤버인 패션 브랜드 제품을 카피한 사례를 조사하고 검열했다. FOGA는 멤버 브랜드의 카피 제품을 유통하거나 판매하는 업체를 발견하면, 멤버 브랜드 제품의 공급을 중단했다. 유통 업체는 FOGA에 속한 유수의 고가 브랜드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 FOGA에 협조해야 했다. 당시 1920-30년대는 오히려 카피가 패션 산업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연구되고, 카피를 도맡은 직업도 존재했으며, 백화점에서도 공공연히 카피 제품을 내놓고 카피를 수긍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FOGA는 카피와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개념을 패션계에 도입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특히 캠페인을 통해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일깨웠고, 이를 통해 FOGA가 나서지 않아도 소비자가 카피를 검열하는 시장의 윤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문제는 FOGA가 멤버 브랜드의 카피만 관리했다는 점이었다. FOGA의 파트너는 모두 상위의 고가 브랜드, 즉 엘리트 브랜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FOGA에서 검열하는 것은 엘리트 브랜드 제품을 카피하는 사례일 뿐, 엘리트 브랜드가 카피하는 행위는 묵인했다. 이 브랜드들이 유럽 브랜드의 디자인이나 비서구 국가의 문화적 자원을 카피하는 것은 문제시되지 않았다. FOGA는 라벨을 발행해 제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증명했는데, 이는 FOGA가 카피를 검열하는 권한을 가졌음을 강조하는 수단인 동시에 엘리트 브랜드의 권위적 위치를 확고히 하는 수단이었다. 즉, FOGA에서 활용한 카피의 논리는 멤버 브랜드의 지위를 유지하고, 엘리트 중심의 시장 구조를 견고히 하는 도구였다. 패션 산업에서 카피가 가지는 복잡한 성격과는 무관하게, 카피는 FOGA 멤버 브랜드 제품의 순수성과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활용되었다. 카피는 무단 도용이라는 점에서 비윤리적이지만, 카피에 대한 제재가 시작된 배경에는 일부 엘리트 브랜드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는 불평등한 전략이 있었다.

이후 미국연방거래위원회는 FOGA가 유통 업체들을 회유하고 특정 업체는 보이콧하는 등의 활동이 지나치다며 소송을 걸었다. 재판 과정을 통해 FOGA의 활동이 특정 방향으로 시장을 통제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하는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FOGA의 활동은 패션 업계에서 카피가 적용되는 방식의 기반을 다졌다. 카피 제품을 멀리하는 것은 당시 상류사회의 윤리적 소양이 되었고, 상위 패션 브랜드 중심으로 카피 윤리가 확산되었다. 물론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가 도입되고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면서, 카피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항상 위에서 아래로 향하진 않는다. 그러나 버질 아블로의 카피를 옹호하던 글에서 보았듯, 좋은 카피와 나쁜 카피를 구분하는 기준에는 여전히 FOGA에서 출발한 엘리트중심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1930년대 드레스에 부착된 FOGA 라벨(”an original design registered”라고 적혀 있다)
1930년대 드레스에 부착된 FOGA 라벨(”an original design registered”라고 적혀 있다), 이미지 출처: 1860-1960

아시아의 카피 문화:
인종 편견

‘베트멍’은 2016년 한국에서 ‘Official Fake’ 행사를 열었다. ‘베트멍’을 카피한 제품을 ‘베트멍’이 다시 카피하여 판매하는 행사였다. 왜 한국이었을까? 아시아는 카피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국가엔 카피와 위조품이 활개를 친다는 오명 아닌 오명이 바탕이 된 것이다. (우리는 중국에 모든 원인을 돌리고 싶겠지만, 한국의 카피를 검색해도 기사나 게시글이 여럿 등장한다. 한국도 엄연히 ‘짝퉁’으로 비난받는 아시아 국가에 속한다.) 당시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의 인터뷰에는 한국에 카피 제품이 많음을 명시하고 있다.

민-하 T. 팜은 아시아의 카피 문화를 비난하는 이면에 인종 편견이 존재함을 지적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칭찬으로 여겨왔던 특징이 아시아인의 카피 문화를 질책하는 데 활용된다는 것이다. 아시아인은 암기에 능하고, 반복적이고 정교한 기술을 요구하는 작업에 뛰어나다고 여겨진다. 이것을 카피 개념으로 가져오면, 아시아인은 단순 모방을 잘하고, 복제품을 원본과 똑같이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것이다. 아시아인의 기계적인 능력은 카피 문화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디자인을 베끼고 위조품을 제작한다는 비난이 아시아인에 집중된다.

또한 이 특징은 서구의 우월성과 아시아의 열등함을 강조하는 데 사용된다.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윤리와 문화는 뒤떨어져 서구의 높은 창의성과 윤리의식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논리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롱 T. 부이(Long T. Bui) 교수는 저서 『Model Machines: A History of the Asian as Automation』에서 아시아인에게 부여된 ‘로봇’의 이미지는 비인간성, 비윤리성을 상징한다고 지적한다. 즉, 직접 창작하지 못하는 부족한 창의력(비인간성), 타인의 디자인을 도용하는 부족한 도덕 개념(비윤리성)이라는 명목으로 아시아인의 ‘인종적 한계’를 규정한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확인한 GQ의 기사처럼 아시아의 값싼 노동력, 열악한 노동환경을 강조해 품질 문제나 더 심각한 윤리적 이슈를 연결 짓기도 한다. 카피에 대한 비난 뒤에는 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포장함으로써 서구 문화의 권위와 우월성을 입증하는 맥락이 담겨 있다.

이미지 출처: Renderosity

카피는 금지할 수도, 금지하지 않을 수도 없는 패션 산업의 복잡한 특징이다. 물론 패션 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카피는 거시적인 맥락의 트렌드 확산을 의미할 것이고, 논란이 되는 카피는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눈에 띄게 복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단 도용을 옹호할 수 없는 건 당연하지만, 비난의 화살도 공정하지 못했다. 카피가 절대적인 악이 아니듯이, 카피를 비난하는 것 또한 절대적인 선이 아니다. 패션은 옳고 그름이 뒤섞인 복잡한 세상을 꼭 빼어닮았다.

  • Minh-ha T. Pham, Why We Can’t Have Nice Things, Duke University, 2022
  • Hypebeast, Vetement’s Guram Gvasalia on Why Fake Pieces aren’t Necessarily a Bad Thing, 2016. 10. 29
  • Asiatimes, The Long, Troubled Racism of the ‘Robotic’ Asian, 2022. 3. 20
  • GQ, In Fashion, Coyping is Now Cool, 2021. 9. 2
  • Hypebae, Micchelle Elie Calls out Virgil Abloh over Copied Off-white FW19 Designs, 2019.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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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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