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나 델 레이는 마돈나를
대체할 수 있을까

취약성은
저항의 반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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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여왕 마돈나. 예순이 훌쩍 넘는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마돈나는 20세기 말, 성과 젠더에 대한 담론을 촉발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의상이든 퍼포먼스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며 시대를 풍미했다. 이제 마돈나가 데뷔한 지 40년이 지났는데, 지금 이 시대에 젠더 담론을 생산하는 여성 아티스트는 누가 있을까? 인기와 영향력으로 따지자면 테일러 스위프트가 생각나겠지만, 필자는 라나 델 레이에 주목하겠다.


강인한 여성의 상징,
마돈나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마돈나 의상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마돈나 의상, 이미지 출처: Harper’s Bazaar

마돈나는 1980년대 이후에 나타난 포스트페미니즘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특히 마돈나가 여성성을 드러내는 방식은 당시로선 굉장히 독보적이었다. 마돈나는 ‘Girl power’, 즉 강인한 여성을 나타냈고, ‘얌전한 여성’과 같은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는 도발적이었고, 급진적이기까지 했다.

마돈나가 입은 의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장 폴 고티에(Jean Paul Gotier)가 만든 의상으로, 연분홍색 새틴으로 만든 코르셋이다. 코르셋은 본질적으로 속옷인데, 이를 가리지 않고 겉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의상이었다. 심지어 뾰족하고 날카로운 가슴 모양으로 공격적인 이미지를 나타냈다. 코르셋이라는 전통적 여성성의 상징적인 요소와 공격적인 이미지의 병치는 당시 포스트페미니즘의 주장을 잘 보여준다.

포스트페미니즘은 마돈나 이전, 1970년대 미국 사회에서 나타난 제2물결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제2물결 페미니즘의 중심적인 논의는 전통적인 여성성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여성 해방을 위해 여성성을 상징하는 기호(치마, 하이힐 등)를 억압으로 해석했고, 이를 거부함으로써 해방을 이룰 수 있으리라 보았다. 그러나 포스트페미니즘은 여성적인 동시에 강인할 수 있음을 주장했다. 남성과 동등해지기 위해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마돈나의 코르셋 의상은 여성성을 수용하는 동시에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지향한다. 이를 통해 마돈나가 나타내는 여성은 스스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여성이다. 이것이 1980년대 이후 마돈나가 대표하는 당시 여성성에 대한 해석이다. 이렇게 마돈나는 강인한 여성에 주목하는 당시의 시대적 담론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슬픈 여성의 등장

라나 델 레이
이미지 출처: 라나 델 레이 공식 인스타그램

마돈나의 등장 이후 거의 40년이 흘렀다. 그동안 섹슈얼리티를 논하는 셀러브리티는 많았다. 레이디 가가 또한 파격적인 의상과 퍼포먼스로 마돈나의 뒤를 이으며 성과 젠더, 섹슈얼리티를 자유자재로 다뤘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에 이르자 이런 강인한 여성 가수들 틈에서 연약한 여성 가수들이 나왔다.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리지 맥알파인(Lizzy McAlpine)이 뒤를 잇고 있다. 이들의 장르는 ‘Sad Girl Pop’이라고 불리며, 슬픔과 고통, 외로움을 노래한다.

‘Sad Girl Pop’의 대표적인 가수, 라나 델 레이가 노래하는 여성은 상처 받고 슬픈 여성이다. 항상 기다리는 사랑을 하고, 헌신적이며, 사랑을 갈구하다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대상은 ‘나쁜 남자’를 형상화한다. 해로운 남성에 스스로 주체성을 잃은 여성의 모습이 그려지는 까닭에 라나 델 레이는 반페미니즘적이라는 비판도 여러 번 받아왔다.

독특한 건 최근 라나 델 레이의 노래가 그의 의상 스타일과 함께 어떤 특정한 여성성을 상징하는 지표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글 ‘핑크의 유행을 어떻게 봐야 할까’에서 보았듯 최근 몇 년 간 틱톡에서는 핑크색으로 잔뜩 꾸민 여성들의 영상이 유행했는데, 이들을 묶는 또 다른 키워드가 ‘Lana Del Rey aesthetic(라나 델 레이 미학)’이다. 리본, 꽃무늬, 레이스 등으로 나타나는 ‘여성적인’ 기호는 라나 델 레이 미학의 대표적인 특징이며, 사람들은 이를 자신이 추구하는 여성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들이 구현하는 여성성은 가장 전통적이고 규범적인 맥락에서의 ‘여성스러움’이다. 마돈나가 강인한 여성을 나타내며 앞서나간 자리에 라나 델 레이는 보수적인 방식으로 여성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여성의 취약성을
부정해야 할까

라나 델 레이
라나 델 레이, 이미지 출처: favim.com

패션 산업에서 여성복과 남성복은 서로의 특징이 뒤섞인 지 오래지만, 여성복은 남성복의 특징을 곧잘 수용한 반면 남성복은 변화가 미미하다. 여성복은 재킷, 바지 등 끊임없이 남성복을 차용해왔으나, 일상적인 남성복에서는 리본, 레이스, 프릴, 치마 등을 찾기 힘들다. 그 이면엔 여성복의 착용이 남성의 권위에 대한 포기, 사회적인 비웃음으로 연결된다는 문제가 있다. 여성성을 낮춰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하고, 이는 여성의 취약성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반대로, 여성복에 남성복의 특징이 많이 반영된 것은 여성이 남성과 대등해지기 위해 남성성을 수용해야만 했던 것일까? 여성성을 버리고 남성과 같아지는 것만이 권력적 구조에 저항하는 방법인가?

주디스 버틀러(2016)는 『취약성과 저항을 재사유하기』라는 글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저항하기 위해서는 취약성을 극복해야 하는가? 저항과 취약성은 반대인가? 버틀러는 이 질문에 단호히 부정하며, 취약성은 그 자체로 권력의 작용을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행위라 말했다. 여러 사회 운동에서 알 수 있듯이 약자의 취약성은 저항을 동원하는 힘이며, 저항은 취약성이 드러나는 동시에 작동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라나 델 레이가 드러내는 취약성은 그 자체로 저항적이다. 그의 속삭이는 듯한 음색과 사랑을 갈구하는 이야기, ‘얌전하고’, ‘소녀스러운’ 옷차림은 여성으로서의 취약성을 온전히 드러낸다. 그는 감정과 고통을 발화하는 데 거침이 없다. 수동적인 여성성을 숨기지 않고, 부정적이라 낙인 찍힌 것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마돈나가 강인해지려고 노력했었다면, 라나 델 레이는 아무것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때로는 침묵이 거대한 절규가 될 수 있다.

물론 라나 델 레이의 방식은 그동안 비판 받아온 것처럼, 가부장제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답습하고, 성과 젠더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그가 시사하는 것은 여성성을 거부하는 방식으로는 오랫동안 여성성이 폄하되어 왔다는 사실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라나 델 레이가 슬프고, 나약하고, 망가지는 여성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이 강렬한 저항이다.


마돈나가 이끌었던 강인한 여성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이 시대의 여성은 여전히 당당하고 주체적인 모습을 추구한다. 다만, 라나 델 레이는 여성성에 대해 사유하는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아마 시대 정신은 바뀌는 게 아니라 쌓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여러 시각이 공존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짐에 따라 우리가 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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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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