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 사랑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아무도 없는 밤을 대신 새어주고, 볕이 드는 아침만 남겨주고 싶은 것’1)이라고 답할 거예요. 여러분의 사랑은 어떤 말로 정의되나요? 여기, 제각기 다른 모양을 한 네 가지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성, 동성 간의 사랑과는 사뭇 다른 아이와 친구, 반려 동식물에 대한 사랑이죠. 대상에 따라 형태나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모두 수렴합니다. 네 편의 에세이와 함께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떠올려 보세요. 이번 기회로 만들어 보아도 좋겠습니다.
1) 김현창이 부른 ‘아침만 남겨주고’의 가사를 차용했다.
너를 만나 시작된 어쿠스틱 라이프
『거의 정반대의 행복』
“어제와 오늘, 비가 오는 바람에 약속했던 소풍을 가지 못한 걸 시호는 잊지 않았다. (중략) 나로서는 전혀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시호만의 소풍 준비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어쩐지 눈물이 나서 외투도 벗지 않고 곁에 누웠다. 그러고는 질문을 떠올린다. 아이가 있는 삶은 어떤가요. 온몸으로 노랫말 같은 소리를 내는 아이가 내일을 기대하며 곁에 잠들어 있다.”
_난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이로 이 세상에 발을 디뎠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몸소 체험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지만,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 양육하는 과정은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나를 꼭 닮은, 나를 필요로 하는 작은 존재가 있는 삶은 과연 어떨까요.
『거의 정반대의 행복』에는 작가가 ‘시호’라는 이름의 첫 아이를 낳고 키워내는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택하면서, 단단히 쌓아 올린 자신만의 바운더리를 무너뜨려야만 했던 작가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거의 정반대의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시호가 열어 준 새로운 세계에서 피어나는 아이에 대한 사랑은, 담백하지만 뭉근한 울림을 가져다 줍니다. 일상툰으로 잘 알려져 있는 난다 작가의 에세이답게 글 중간중간에 삽입해둔 귀여운 일러스트들이 소소한 웃음 포인트예요.
빌보와 함께 책을
『읽는 개 좋아』
‘진정한 행복’이니 ‘우정 어린 교감’ 같은 말은 사람 입장에서 만들어낸 표현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나 개에게 ‘진정한’ ‘우정 어린’ 같은 수식어를 알려준다면 어리둥절해 할지도. 그냥 행복하고, 그냥 교감하면 안 돼? 빌보를 유심히 보고 있으면 진정성이나 영속성은 우정의 본질이 아닌 것 같다. (중략) 빌보에게 우정은 실선이 아니라 점선이다. 끊어진 부분을 잇는 건 신의의 몫이다.
_구달, 『읽는 개 좋아』
이 시대의 반려동물은 가족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 같아요. 주변에 반려동물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들이 일상에서 겪는 일들을 곁눈질로 종종 접하게 되는데요. 야외활동에 동행하는 경우가 많은 ‘개’는 귀여움을 받는 만큼이나 다양한 수모를 겪기도 합니다. 개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달라지는 일상과, 반려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 점에서 특별할까요?
『읽는 개 좋아』는 제목을 유심히 들여다봐야 하는 책입니다. ‘읽는 게 좋아’로 읽었다간 왜 뜬금없이 반려견이 등장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이 책에는 반려견 ‘빌보’의 눈으로 읽어낸 독서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개를 키우는 젊은 여성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의 모습들을 다양한 책을 통해 통찰하죠. 빌보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작가의 이야기는 어쩐지 애틋하면서도 유쾌한 웃음을 자아냅니다.
30년 열혈 우정인의 이야기
『아무튼, 친구』
“oo의 친구시죠?” 하고 상대 쪽에서 물어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이 내가 대관절 뭐 하는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oo의 친구인 것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혹자는 내게 어떤 이의 친구로 먼저 인식되는 것이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몹시 놀랐다. 누군가의 친구로 소개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들이 뿜어내는 빛과 그늘에 가려지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
_양다솔, 『아무튼, 친구』
여러분에게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요? 작디작은 사회에서부터 맺어지는 친구라는 관계는 의식하지 않아도 언제나 곁에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때로는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철천지원수 지간이 되기도 하죠. 나이가 들어갈수록 진정한 친구의 의미에 대해 곱씹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튼, 친구』의 작가는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지켜낸, 30년 열혈 우정인입니다. 그는 누군가의 친구로 소개되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죠. 조금 이상한 나 대신 친구를 사랑하고, 그들이 돌려주는 사랑을 빌려 자랐다는 작가는 누구에게나 좋은 친구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책에는 그가 서른 해 동안 친구들에게 전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손절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인연을 쉽게 끊는 이 시대에 뜨끈한 우정의 온도를 유지하는 그의 삶이 사뭇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시인과 식물 사이의 시간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그런 날 작은 화분에 담긴 더 작은 식물 하나를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몇몇은 죽었고, 몇몇은 아직 내 곁에 남았다. 내 기억 속의 식물들은 대부분 그렇게 내 생의 기록과 같다. 하나의 식물 속에는 그 식물을 데려올 때의 마음과 데려오려고 마음먹게 한 어떤 사연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키우는 모든 식물들은 대부분 어느 날의 내 마음들이다.
_이승희,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식물을 기르는 집사라는 뜻의 신조어 ‘식집사’가 등장할 만큼, 반려 식물에 대한 인기는 날로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말없이 공간에 자리하며 제 할 일을 해내는 식물은 반려동물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지요. 식물을 키우다 보면 ‘적당함’을 유지하는 것이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의 작가는 식물의 연두색 얼굴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식물들의 동거인입니다. 그는 자신이 식물을 보살핀다고 생각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고 여겨요. 묵묵히 시선을 보내주는 식물들에 연대감을 느끼고, 물을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쓸모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식물을 잘 기르는 방법을 담은 여타 책들과는 아주 달라요. 시인인 작가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고요하지만 따뜻한 식물과의 동거 생활을 그립니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도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없었겠지요. 사랑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지만, 모순적이게도 가장 특별한 감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 사랑을 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삶은 다채로워지니까요. 서늘한 공기만큼이나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가을, 마음의 온도를 데워낼 사랑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