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서 있자 홍게들이 구멍에서 나와 움직이는 소리가 찰찰찰 난다. 문포의 농게들이 나와 움직인다. 도둑게 구멍들을 발견했다. 갯벌이 매립되면 도둑게들은 어디 가서 알을 낳나?” 수라 갯벌에 대한 기록입니다. ‘비다에 놓은 수’를 뜻하는 ‘수라’ 갯벌. 수라 갯벌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별처럼 많은 생명이 나고 자랐던 수라갯벌은 이제 전설처럼 남았습니다.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갯벌을 매립했기 때문인데요. 정부는 이제 그곳을 척박하고 쓸모 없는 땅이라 여깁니다. 정말 수라 갯벌은 전부 메말랐을까요? 아름답던 수라는 완전히 사라진걸까요? 황윤 감독님의 영화 <수라>가 이를 담았습니다.
수라
영화 <수라>는 20년 전 일어난 삼보일배 시위를 보여줍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생명에게 속죄하는 마음. 성직자들은 그들을 살려달라는 마음으로, 부안에서 서울까지 305㎞를 걸으며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절을 올렸습니다. ‘살려주소서’ 라는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울부짖는 신부님들의 삼보일배에도 ‘새만금 간척 사업’은 강행됐습니다. ‘새만금 간척 사업’은 33km의 방조제로 서해안 갯벌을 매립하는 사업입니다. 한반도 서해안 갯벌은 지구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갯벌 중 하나인데요. 이로써 세계 최대 환경 오염을 일으킨 셈입니다.
1991년에 시작해 2000년대 초반, 환경 단체의 반발을 넘어 범국민적인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황윤 감독의 카메라에 담긴 류기화 어민을 비롯해 이강길 감독과 수많은 이들의 희생에도 간척 사업은 강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갯벌이 달과 지구의 만유인력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일까요? 20년 넘게 흙을 쏟아부었음에도, 바다와 강을 갈라놓았음에도,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오만함을 비웃듯, 수라갯벌에서 멸종위기종 1급 저어새 무리를 발견하게 됩니다.그리고 수많은 멸종위기 동물들을 목격하게 되죠. 황윤 감독의 <수라>는 생에 대한 갯벌의 의지와 아름다움, 그런 갯벌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집념을 세밀히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아름다움
황윤 감독은 수라 갯벌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수라>의 장면들은 갯벌의 미를 강조하는데요.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크게, 새들의 생활과 게들의 모습은 더 상세하게, 사람의 시점에서 보면 질퍽질퍽한 땅처럼 보이는 갯벌을 하늘을 나는 새의 시점에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하늘에서 갯벌을 찍은 장면이 유난히 길고 아름다운데요. 20여 년의 매립 공사에도 갯벌은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방향에 따라 물길을 내고, 깊게 팬 골들은 빛과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숨을 쉬었습니다. <수라>에서 황윤 감독은 그 모습이 마치 핏줄과 나무 같다고 이야기하는데요. 그 장면으로 마치 갯벌이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 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현재 수라 갯벌에는 갯지렁이와 조개,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검은머리물떼새, 쇠제비갈매기, 흰발농게 등의 다양한 법정 보호종이 살고 있습니다. 또 바닷물이 다 닿지 않는 염습지에는 붉은 칠면초와 해홍나물이 자라고 고라니가 그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이중에서 황윤 감독은 특히나 도요새에게 마음을 빼앗겼는데요. 새만금 시민 생태 조사단 ‘동필’ 은 과거 도요새들의 군무가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웠는지 이야기합니다. 도요새는 지구 반 바퀴를 날아온 장거리 여행자입니다. 그들에게 동아시아 갯벌은 매우 중요한데요. 이 곳에서 먹고 쉬지 못하면 바다에 추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갯벌이 사라지자 수많은 도요새가 죽어나갔습니다. 이제 더이상 수라 갯벌에서 도요새 군무도 볼 수 없게 되었죠. 하지만 그때 그 찬란함을 목격한 동필이 너무 아름다운 걸 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것 처럼, 그때 수라를 본 이들은 지금까지도 수라갯벌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본 죄
<수라>는 새들마다 먹이 먹는 모습이 다르다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더이상 볼 수 없는 새들의 사진과 노랫소리, 먹이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수라>에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의 순간이 담겨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영상들은 모두 ‘새만금 시민 생태 조사단’ 덕분인데요. 새만금 시민 생태 조사단은 20년 넘게 수라 갯벌의 생태계를 기록해왔습니다. 사라져가는 새의 개체 수를 세며 끊임없이 수라갯벌의 보존 가치를 증명하려 하였는데요. 아름다움을 봤기 때문에 이것들의 사라짐과 유지에 관심을 갖고 지켜내려는 것입니다.
<수라>에는 동필의 아들 ‘승준’도 등장합니다. 승준은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수라 갯벌에 다녔다고 합니다. 수라 갯벌을 마지막으로 경험한 세대인 것이죠. 그때의 수라 갯벌이 너무 황홀했던 탓인지, 승준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시민생태조사단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승준은 자신이 찍은 수라 갯벌의 기록을 보며 웃음을 짓는데요. 수라갯벌을 향한 승준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승준은 쇠검은머리쑥새 수컷의 노랫소리를 녹음하러 다닙니다. 수라갯벌에 신공항이 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멸종위기종인 쇠검은머리쑥새가 번식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밤낮으로 노랫소리를 찾아다니는 승준. 그에게서 수라에 대한 간절함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공존하는 우리
시민생태조사단의 동필은 집을 고치고 가구를 만들며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물새들은 갯벌에서 먹이를 잡아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동필의 드릴 소리에 맞춰 물새가 부리를 갯벌에 집어넣습니다. 군산에 사는 인간과 비인간.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는데요. 영화는 이처럼 다양한 연출로 인간과 동물들의 삶을 겹쳐 보이게 합니다. 우리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것 처럼 물새와 동물들도 살아가는 것이죠. 황윤 감독님이 매립으로 유발되는 미세먼지를 걱정하며 말합니다. 자신도 새들처럼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야 한다고. 갯벌은 새와 게, 조개만의 터전이 아닌, 우리들의 터전이기도 한 것 입니다. <수라>는 이러한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감을 전하고, 우리가 자연을 보존해야만 하는 이유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리고 동필은 아이들에게 이러한 갯벌의 가치를 알려주는데요. 해변과 갯벌에서 아이들은 만지고 교감하며 동필과 노닙니다. 여기서 한 아이가 조개를 만지며 “살아있다. 살아있어요!” 라고 외치는 장면은 어쩌면, 황윤 감독님이 <수라>를 보는 아이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까요?
<수라>에서 동필은 말합니다. 칠게 한 마리가 있어도, 수라 갯벌 이름을 놓지 않으면 마른 땅도 언젠가 갯벌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계속 갯벌로 불러달라고, 그래야 살릴 수 있다고. 이제 정부는 수라 갯벌에 신공항을 세우려고 합니다. 고작 2주 간의 잼버리 대회를 위해 해찬 갯벌을 매립했고, 소중한 생명을 보호해달라 세운 장승비도 철거하길 강요했습니다. 수라 갯벌의 물막이 공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디 갯벌이 살아있음을 알아주길. 갯벌과 도요새가 우리의 일부라는 것을 알아주시길. 갯벌을, 자연을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치열하게 지켜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