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는
대중적일 수밖에 없다

고급스러움과 대중성을 모두 확보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이중적인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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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에서 심사위원이 파인 다이닝 셰프 안성재와 프랜차이즈 기업인 백종원로 등장한 점은 의미심장했다. 파인 다이닝의 관점에서 요리는 정교하게 맛을 표현하는 기술력이자 장인정신이고, 프랜차이즈 요식업의 관점에서 요리는 더 많은 대중에게 맛있게 가닿는 시장성이다. 그렇기에 안성재는 ‘이븐하고’ 정확한 익힘을 중시하고, 백종원은 외국인들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선호했다. 요리사들이 안성재와 백종원의 평가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요리가 고급스러움과 대중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고급스러움과 대중성은 대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은 이 둘을 교묘하게 섞고 배치하는 전략을 추구해왔다. 이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늘 차용해왔던 전략인데, 현대 소비 시장 자체가 지닌 이중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럭셔리는 얼마나 럭셔리한가? 고급스러움과 대중적인 것은 반대말일까?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가?


럭셔리는
늘 대중을 끌어들이려 했다

‘고급’을 지향하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고급을 누릴 수 있는 소수를 타겟으로 하지만, 소수가 아닌 다수, 대중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레디투웨어(ready-to-wear)’가 탄생했다. 잘 알려졌다시피 본래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출발한 지점은 ‘오뜨 꾸뛰르’, 즉 고급 맞춤복이다. 개인의 취향과 사이즈에 맞추어 주문 제작한 옷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이윤을 확대하기 어려웠고, 브랜드의 재정적 안정을 위해 타겟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1960년대부터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 기성복, 미리 만들어놓고 파는 레디투웨어 시스템이 도입된다. 이브 생로랑은 1966년 레디투웨어 라인을 별도로 판매하는 매장을 열었고, 디올도 1967년 레디투웨어 라인을 발표하며 그 뒤를 이었다. 레디투웨어 시스템은 소비주의적인 시대의 흐름과도 잘 맞았고, 현재는 오뜨 꾸뛰르를 고수하는 브랜드를 찾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의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맞춤복이 아닌 기성복의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타겟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인지도를 위해 더 많은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했고, 실질직인 판매로 전환할 수 있는 대중적인 품목도 판매해야 했다. 또 한편으로는 관객이 필요하기도 했다. 고급, 상류, 소수라는 권위는 대중의 선망으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수의 대중이 브랜드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즉,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대중에게 접근하는 것은 브랜드가 더 많은 매출을, 더 높은 지위를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이제 레디투웨어가 도입된 지 한참이 지났고, 인터넷과 SNS 등의 환경 속에서 대중의 힘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환경에서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하는 또 다른 품목이 있다. 바로 향수와 화장품이다.

최초의 레디투웨어 매장 이브 생로랑의 RIve Gauche, 이미지 출처: Musée Yves Saint Laurent Paris

대중에게 닿기 위한 방법,
향수와 화장품

전 세계 럭셔리 소비를 품목별로 나누면, 우리가 흔히 런웨이에서 보는 의류 제품은 전체 매출의 30% 정도만 차지한다(Statista, 2024). 고가의 가방 역시 15%에 그치며, 나머지는 시계와 보석, 향수와 화장품, 안경과 선글라스 등 다양한 품목이 매출의 부분을 나누어 차지하고 있다. 그중 향수와 화장품은 전 세계 럭셔리 소비의 15% 정도를 차지하는데,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로 가장 대중적인 제품군이다. 매출에서 비슷한 부분을 차지하는 가방이 고가의 제품들임을 고려하면 향수와 화장품의 판매량이 상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 발표한 최초의 향수는 1921년에 출시한 샤넬 넘버파이브(Chanel No. 5)이고, 최초의 화장품 역시 샤넬이 1924년에 출시한 파우더와 립스틱으로 알려져 있다. 샤넬 넘버파이브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샤넬은 높은 인지도를 단숨에 확보하며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지해오고 있다. 샤넬의 향수와 화장품 제품은 다양한 소비자층을 아우를 수 있었고, 샤넬만의 특정한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샤넬 이후 디올, 입생로랑 등 여러 패션 브랜드들도 향수와 화장품 라인을 출시하면서, 향수와 화장품은 럭셔리 시장에서 중요한 품목이 되었다.

샤넬 향수와 화장품. 이미지 출처: Unsplash

향수와 화장품이 럭셔리 시장에서 가지는 중요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기에 좋다. 이들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높이는 품목들이다. 몇백만원 상당의 의류 제품은 아주 소수만 구매하지만, 몇만원 정도의 화장품은 더 많은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다. 럭셔리 소비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첫 단계와도 같으며, 본래 럭셔리 브랜드가 타겟으로 삼는 소비자층보다 더 넓은 범위의 소비자에게 가닿을 수 있다.

둘째, 브랜드의 이미지를 시각화하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향수와 화장품의 광고를 떠올려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이 광고들은 제품의 퀄리티를 증명하지 않는다. 어떤 느낌, 분위기, 이미지를 전달할 뿐이다. 그 감각적인 정보는 브랜드 자체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 제품들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현한 브랜드의 화신과도 같은 것이다. 가장 대표적로 디올의 향수 광고는 서로 다른 스타일로 디올을 보여주고 있다. 브랜드의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시각화하면서 그 이미지을 점유하고 싶도록 자극하고 소비를 유도한다. 이때 패션 트렌드를 세팅한다는 브랜드의 권위적인 위치가 이미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패션은 의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브랜드들은 세련된 이미지, 그 자체를 판매하는 것이다.

디올 쟈도르 향수 광고 이미지. 이미지 출처: Fashion Gone Rogue
미스 디올 향수 광고. 이미지 출처: 이데일리
디올 미드나잇 쁘와종 광고. 이미지 출처: Perfumo

셋째, 마진율이 좋다. 화장품과 향수는 마진이 높은 제품들인데, 그중에서도 향수는 물과 알코올의 비중이 높아 수익률이 매우 높다. 흔히 쓰는 오 드 뚜왈렛의 경우 물과 알코올이 85~95퍼센트 가량을 차지한다. 향수는 다른 제품과 달리 생산 비용과 소매 가격 사이에 명확한 상관 관계가 없다(Faster Captial, 2024). 브랜드가 마진을 얼마나 남길지 다른 제품보다 좀 더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향수와 화장품은 추상적인 이미지와 연결시키기 수월하기 때문에 마케팅하기에도 훨씬 쉽다(Flora, 2023). 즉, 박리다매로 브랜드의 이익을 끌어올리기에 효과적이며, 장기적인 시장 존속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정리하자면 이 대중적인 품목들은 인지도를 높여서 브랜드의 이익을 확보하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럭셔리 브랜드가 여전히 선망의 대상으로 남고, 비(非)대중적인 이미지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지위는 유지하면서도,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살짝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차별화되는 동시에 살짝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함으로써 다수의 소비를 이끌어내는 전략이다.


럭셔리,
고급과 대중성이라는 이중의 전략

럭셔리란 무엇인가. 럭셔리는 비싼 가격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동경의 대상,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의 지갑을 열어 자본을 확보하는 것. 럭셔리의 본질은 ‘선망’이다. 이 선망은 전략적으로 유도된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선망의 대상으로 포장하며, 동시에 대중적인 접근을 이용해 동경의 심리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방법이다. 대중적인 접근은 ‘레디투웨어’에서부터 시작해서, 향수와 화장품까지 여러 전략을 이용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 역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확보한다. 브랜드의 활동을 예술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예술화(artification)를 의도하거나, 장인정신을 강조하며 제품을 희소하고 진정성 있는 공예품인 것처럼 전달한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전략을 살펴보면, <흑백요리사>에서 파인다이닝과 프랜차이즈를 모두 아울러야 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시장에서 예술성과 장인정신, 대중성과 상업성의 관계는 교묘하다. 예술과 장인정신이 고고하고 희소한 것, 대중성과 상업성이 돈을 좇는 것, 저렴한 것처럼 여겨지는 특징들은 신화처럼 기능할 뿐이다. 이제 예술은 시장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장인정신 역시 상품화되는 가치다. 그리고 대중성은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시장에서 필수적이고, 상업성은 시장의 근간이다.

럭셔리 패션은 ‘돈’을 우선의 가치로 좇는다. 당연한 명제다. 하지만 돈을 좇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자. 럭셔리 패션은 ‘고급’, ‘상류’, ‘부’의 위치를 ‘선점’한 것처럼, 태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사실은 그 지위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과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지런한 노력을 이미지, 신화, 환상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서 포장한다. 마치 수면 아래로 쉼없이 발을 놀리는 우아한 백조처럼.

이미지 출처: Unsplash

럭셔리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누구나 럭셔리를 선망하지만, 우리는 환상을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럭셔리의 이중성은 현대 소비 시장의 한 경향을 설명한다. 대중성과 선망의 지위를 동시에 얻기 위해 양방향의 노력이 팽팽하게 지속되는 것이다. 선망을 만들어내는 것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점유한 방식이 아니다. SNS에 삶의 긍정적인 단면만을 업로드하며 다수의 시선을 얻는 일 또한 선망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브랜드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선망과 연결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상징자본을 인식하고 있고, 더 이상 물질적 가치로만 물건의 가치가 설명되지 않는 시대다. 이는 현대 소비 시장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 흐름이다.

이 글은 환상의 생산과 소비를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소비에서 고급과 저급, 필요와 불필요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당신이 어제 구입한 코트의 가격이 100만원이라면, 그중 어느 정도가 퀄리티를 의미하는지, 브랜드의 상징적 가치를 의미하는지 이제는 판단할 수 없다. 소비를 위한 가치 판단이 흐려진 시대,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소비로 점철된 시대를 돌이켜보며 묻고 싶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위해 소비했는가? 그 소비의 가치에 대해 얼마나 확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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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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