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예술이다

지금까지
이런 예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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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우 에디터가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순간 열광했다. 게임을 즐기고 있는 현대인으로서, 그리고 예술의 범위에 대한 논의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왜 그동안 게임과 예술의 관계를 고민해보지 못했을까, 새삼스러웠다. 뒤늦게나마 주변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혼자서 고민도 해보니, 게임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주현우 에디터의 바톤을 이어받아, 게임과 예술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전제: 어떤 게임을 이야기할 것인가

이미지 출처: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이하 롤)’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아케인> 때문이었다. 시즌1을 감상하며 한창 롤 세계관에 열광하던 때라, 게임과 예술의 관계에 더 불을 키고 달려들었다. 롤은 스토리의 구성이 아주 촘촘하다. 공간적 배경과 인물의 서사가 어우러지면서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비추는 점도 눈에 띄었고, 불평등한 세상에서 사람을 위해 고민하는 인물도 인상 깊었다. 특히, 롤은 스토리와 인게임과의 연계성도 풍부하다. 예를 들어, 경관 챔피언 ‘바이’와 ‘케이틀린’이 ‘징크스’라는 범죄자 챔피언을 잡으면, 2골드를 보너스로 받는다. 또한 <아케인>에서는 마법공학과 화학공학이 대조적으로 제시되는데, 인게임에서도 마법공학 용과 화학공학 용이 등장하며 각각의 특징이 맵에 구현되는 등 유저는 게임을 진행하면서도 배경 서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롤 유니버스’는 게임과 구분되지 않고 더욱 확장된 서사로, 통합적인 콘텐츠를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 참여하는 유저들에게 과연 롤이 예술적으로 접근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스토리와 게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고 해도, 게임에 들어간 순간 모든 행위의 목적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테트리스처럼 최소한의 서사 없이 단순 유흥만을 좇는 게임이나, 롤처럼 인게임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목적인 게임은 배제하고 이야기하려 한다. 여기서 ‘최소한의 서사’란, 아무리 자유도가 높아도 게임 내에서 유저가 참여하게 되는 특정한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 세상이 커지면서 다양한 게임들이 우후죽순 나타났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은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복잡다양한 게임에 대해 제한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게임은 배제하고 어떤 게임은 포함하는 등 선을 긋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도 상업영화와 예술영화가 공존하면서 다양한 서사를 보여줄 수 있듯, 게임도 마찬가지다. 게임은 상품이면서도 작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게임이 뻗어나갈 수 있는 예술성에 대해 짚어보면서, 게임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해보려고 한다.


게임의 예술성이란

1)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링

서사가 있다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여기서는 <잇 테익스 투(It takes two)>라는 게임을 소개하고 싶다. 이혼을 앞둔 부부 코디와 메이, 그리고 어린 딸의 이야기다. 아이는 부모가 이혼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매우 슬퍼했고, 다시 화목한 가정으로 돌아가길 빌었다. 아이의 소원으로 부부는 인형으로 변해버린다. 그래서 부부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온갖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이 게임의 주요 줄거리다.

이미지 출처: ‘일렉트로닉 아츠EA’

게임을 진행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가족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다. 게임은 어김없이 코디와 메이의 다툼으로 시작하지만, 코디와 메이는 곧 온갖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협동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대화가 시작된다. 심각한 문제라기보다는 보편적인 문제였고, 그렇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갈등이다. 게임은 코디와 메이에게 협력하고 대화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상황을 부여했다. 이들은 곧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뉘우치기도 하고, 그동안 잊었던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를 응원한다. <잇 테익스 투>는 대화와 존중이라는 갈등해결 방법을 뚜렷하게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부모의 이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상처를 받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는 부모님이 이혼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는, 인형놀이를 하면서 ‘대신 친구로 남자’라고 말한다. 부모의 다툼에 아이가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함을 보여주고, 아이가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 부모가 자신들의 입장만 앞세우다가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이기적인 모습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아이들이 보기에는 매우 잔인하게 묘사되어 충격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처럼 <잇 테익스 투>는 가족의 복잡한 갈등 상황과 해결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유저는 이혼을 앞둔 가정이 느끼는 갈등과 불안을 보여주고, 이 갈등을 캐릭터들이 어떻게 마주하고 풀어나가는지 함께 겪을 수 있다. 갈등해결 과정이 항상 긍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일상적인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족 간 갈등에 대해 대화와 존중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2) 다양한 감정의 촉발

우리는 게임을 통해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제작자의 상상력을 감상하며, 그에 따른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압주Abzu’

<압주(ABZU)>라는 게임이 있다. 플레이어가 잠수복을 입고 온 바다를 헤엄치는 게임이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얕은 바다에서부터 깊은 바다까지 호흡이나 수압의 한계 없이 돌아다닐 수 있다. 극복할 수 없는 신체적 한계 너머를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며 여러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바다의 색색들이 아름다운 물고기 떼를 봤을 때의 감탄,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대표적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어둡고 고요한 심해를 여행했을 때 굉장한 공포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광활한 미지의 세계를 마주친 것 같은 신기함, 아득한 고요함에 덜컥 찾아오는 공포심, 거대한 세계 앞 작은 인간의 무력감 등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유발한다. 또, 이 게임은 바다를 돌아다니며 오염된 부분을 정화하는 게 목적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과 경외를 느낄 뿐만 아니라, 이를 보호하기 위한 행위를 통해 자연과의 공생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정교한 그래픽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구현한 게임 속에서 우리는 실제로는 하지 못하는 경험을 간접적으로 겪을 수 있다. 세상을 만나는 새로운 통로이자, 방구석에서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세상과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다.

3) 작품에 대한 감상과 참여

세 번째 특징은 작품에 대한 감상이다. 문학작품을 생각해보자. 독자는 작가가 제시하는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다양한 감정을 겪고 각자의 방식으로 감상한다.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럼, 게임의 유저는 어떨까. 유저는 직접 캐릭터가 되어서 게임을 플레이한다. 즉, 캐릭터와 함께 경험하고 고민하고 선택한다. 이렇게 스토리 라인을 따라 사건들을 직접 겪어가면서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강한 감정이입을 느낀다. 문학작품이나 영화보다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감상하며, 굉장히 몰입도가 높은 감상이 가능하다.

그런데, 유저의 선택에 따라 스토리와 결말 또한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유저는 스토리의 전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체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유저는 게임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결말을 겪고, 아주 개인적인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다. 영화는 수동적인 감상에서 그친다면, 게임은 게임과 유저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스토리, 결론, 생각을 파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적극적인 장르다.

이미지 출처: ‘퀀틱 드림Quantic Dream’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Detroit: Become Human)>이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안드로이드가 핍박 받고 멸시 받는 미래 시대가 배경이다. 세 명의 주인공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안드로이드 해방에 앞장서거나, 개인의 자유를 얻기 위해 탈출하는 등 스토리 라인이 달라진다. 그리고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유저의 세부적인 선택 하나하나에도 흐름이 달라진다. 유저가 얼마나 안드로이드의 차별 대우에 공감하고 분노했는지에 따라서도 선택이 달라질 수 있고, 유저의 개인적인 취향, 눈길이 가는 요소 등등 다양한 이유로 수많은 결말을 맺을 수 있다. 실제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1,000개가 넘는 결말이 있으며, 다양한 선택지와 풍부한 스토리라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렇게 감상자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게임의 특성은 많은 예술 분야에서 주목하고 있다. 먼저, 영화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Black Mirror: Bandersnatch)>는 ‘인터랙티브 무비’로, 감상자가 주인공의 행위를 직접 선택하며 스토리 전개에 개입할 수 있다. 이건 오히려 영화가 더욱 직접적이고 몰입도 높은 감상을 의도하기 위해 게임의 요소를 선택한 것이다. (게임은 영화화되고, 영화는 게임화되는 양상이 발견된다. 서로 영향을 미치는 관계가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두 번째, 패션이다. ‘발렌시아가Balenciaga’는 게임을 통해 2021 F/W 컬렉션을 발표했다. 사람들은 게임에 접속해 가상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이리저리 감상할 수 있었다. 게임이라기엔 단순하지만,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을 형성함으로써 직접 현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모델의 워킹을 감상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게임에 직접 입장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적극적인 감상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상호작용을 강화할 수 있는 게임의 특성은 예술을 표현하기에 너무나 매력적이다.

발렌시아가 비디오 게임 , 이미지 출처: Natashah Hitti

4) 제작자의 의도와 다양한 해석

미술 철학자 아서 단토는 예술의 다섯 가지 조건으로 ‘주제’, ‘메시지’, ‘은유’, ‘감상자의 해석’, ‘창작자의 의도’를 말했다. 여기서 주제와 메시지, 은유는 지금까지 논의한 ‘게임의 스토리텔링’과 ‘유저의 다양한 감상’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나머지 두 개는 다음의 사례에서 아주 잘 드러난다.

이미지 출처: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굉장한 논란거리였던 게임이 있다. 바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1>은 수준 높은 그래픽과 연출, 스토리텔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만큼 파트2도 많은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많은 비난 또한 한몸에 받았다. 파트2는 시작하자마 파트1의 주인공 조엘Joel이 죽임을 당하고, 조엘을 죽인 애비Abby로 플레이해야 하는 구성이었다. 유저는 파트1에서 조엘의 관점으로 플레이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동고동락하며 온갖 감정을 이입하고 물아일체된 캐릭터 조엘이 죽고 심지어 조엘을 죽인 캐릭터로 플레이해야 하는 전개는 많은 유저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게임 디렉터였던 닐 드럭만Neil Druckman에게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닐 드럭만은 극히 예상했던 반응이라고 완벽하다며, 복수와 증오의 상관관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숭고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저들이 바보라고 비아냥거려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평론가들에겐 아니었다. 평론가들은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여 주제의식과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다양한 감정을 촉발함으로써 복잡한 인간 본성을 비췄다”, “폭력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등 호평 일색이었다. 유저의 평가와 평론가들의 평가가 갈리는 것은 유저들이 직접 캐릭터에 감정이입하여 플레이하는 것과 달리 평론가들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서사를 감상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나타난 차이이다. 하지만 한 작품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의 다양한 해석이 등장한다는 것, 그 해석에 대해 서로 주장하고 반박하는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에 주목해보자. 게임에는 단토의 예술의 조건 중 4번, 작품에 대한 감상자의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는 게임 뒤에 상품 공급자로서만 존재했던 제작자를 대중 앞에 등장시켰다. 대중은 그 반응이 매우 부정적일지라도, 제작자의 의도에 주목하고 귀를 기울였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러한 전개를 만들었는지 질문했고, 제작자와 감상자 사이에 설전이 오고갔다. 이 게임은 감상자가 제작자의 의도를 묻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뜨겁게 남긴 사례가 되었다. 또한, 예술에 대한 제작자들의 의도를 부각시켰다. 게임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게임을 예술이라는 영역까지 확장하고자 하는 제작자들의 의도가 존재한다. 스스로를 개발자가 아니라 예술가로 정의하며, 게임이라는 장르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에 주목해보고 싶다. 단토의 예술 조건 중 5번, 제작자가 작품 생산의 주체로 오롯이 드러났고, 작품에 제작자의 의도에 뚜렷이 반영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네 개의 게임과 네 개의 특징을 소개했다. 하지만 하나의 게임이 하나의 특징만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게임을 골랐을 뿐, 하나의 게임에서 여러 특징이 드러나는 게임이 많다. 세 번째로 언급했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캐릭터와 함께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안드로이드 차별이 심각한 모습을 보면서 안드로이드 윤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다. 기술의 발전을 통한 뛰어난 그래픽, 기발한 상상력과 서사의 힘, 감상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구조. 게임은 이 세 가지 성격을 통해 고차원적인 예술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하다.

사실 ‘예술’이라고 하면, 그림이나 음악, 문학 등 지금까지 예술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특정한 형태가 떠오른다. 하지만 예술은 시대적 맥락과 적절히 어우러진다. 기술과 매체의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들이 생겨난 만큼, 예술의 경계에 대한 유연한 개방이 필요하다. 게임이 초반에는 단순한 놀이와 유흥거리에 불과했던지라, 예술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게임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을 직접 헤엄치고 경험하며 감상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다. 게임은 예술적 요소를 충분히, 혹은 더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장르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게임이 어떤 모습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 굉장히 기대된다.

  • 김정현, 노엘 캐롤의 대중예술의 정의에 대한 소고(인문논총 제73권 제1호), 2016
  • 유세영, 소니의 불편한 작가주의 AAA급 게임들(2020.07.04)
  • 이재오, 조커나 기생충에서 느낀 불쾌함이 ‘라오어2’에도 있다(2020.06.12)
  • Andy Mcnamara, The Last of Us Part II Review – A Perfect Circle(2020.06.12)
  • Keza MacDonald, The Last of Us Part 2 review – post – apocalyptic game is groundbreaking and powerful(2020.06.12)
  • Trusted Reviews, Detroit: Become Human can end in more than “1000 different combinations,” says Quantic Dream(2018.04.23)
  • 자문: 김서령, 류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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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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