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로 태어나
주류로 도약한 춤 보깅

나다움의 아름다움
경계를 허무는 춤의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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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댄서 씬이 이토록 화제가 된 적 있을까요? 성황리에 종영한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를 계기로 춤과 댄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그간 조명되지 못한 아티스트들이 호명되면서, 기성 매체에서 앞다퉈 보도하듯 ‘K댄스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죠. 늘 거기에 자리하고 있었을 뿐인데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자 일제히 시선이 집중되는 현상. 이러한 권위의 전복은 특히 ‘춤’의 영역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 미국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서브컬처 ‘보깅(voguing)’이 있지요.


모두를 위한 춤의 시작

 VOGUE JAPAN
이미지 출처: VOGUE JAPAN

보깅은 1960년대 미국 뉴욕 퀴어들의 무도회장, 볼룸(ballroom) 문화에서 피어난 댄스의 한 장르입니다. 손과 팔을 활용해 어딘가 고혹적인 자세를 반복하는 것이 특징적인데, 이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패션 매거진 <VOGUE>의 화보에서 착안한 동작입니다. 화보 속 모델의 포즈를 따라 하고, 비트에 맞춰 움직임을 연결하자 하나의 춤이 완성된 것이죠. 볼룸에서 아름다운 포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포징(posing)’이 ‘보깅(voguing)’으로 이름 붙여지면서 하나의 댄스 장르로 자리합니다.

the atlantic 왕관 쓴 여성
이미지 출처: the atlantic

보깅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볼룸 문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지요. 당시 사회적으로 소외된 흑인 및 라틴계 퀴어들은 서로를 보살피는 탄탄한 공동체를 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맘껏 뽐낼 수 있는 볼룸에 모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생물학적 가족을 떠나, 스스로 선택한 가족과 ‘하우스(House)’를 이루는데요. 당시 하우스의 ‘마더’는 기존의 가족으로부터 거부 또는 학대를 당해 길로 나선 아이들과 지역 사회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을 끌어안으며 대안 가족을 형성했습니다. 각 하우스들은 볼에서 펼쳐지는 경연에 출전해 트로피를 거머쥐며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공동체 안에서 삶을 가꿔 나가죠.


미디어에 등장한 보깅

1) 마돈나의 보그

madonna, "vogue"
이미지 출처: madonna, “vogue”

보깅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1990년 3월에 발매된 마돈나의 대표곡 ‘보그(vogue)’입니다. 마돈나의 보그는 ‘음지 문화’, ‘마이너’로 폄하되던 볼 문화를 양지로 끌어 올렸고, 고유의 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볼에서 보깅 댄스를 추는 댄서를 고용했으며, 월드 투어를 진행하는 등 보깅 댄스의 유행을 이끌었습니다. 보그의 가사 또한 보깅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점 역시 눈에 띄는 요소입니다. ‘당신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소년이든 소녀이든 상관없어요. 지금 음악이 울리고 있다면 당신에게 새로운 삶이 펼쳐질 거예요.’

2) 파리 이즈 버닝

madonna, "vogue"
이미지 출처: madonna, “vogue”

1990년작 다큐멘터리 <파리 이즈 버닝>은 볼룸을 주축으로 형성된 퀴어 커뮤니티를 조명합니다. 영화는 1989년 뉴욕을 배경으로 퀴어 커뮤니티의 명과 암을 사실적으로 담아내 1991년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고, 성소수자 인권 관련 이슈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도왔습니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제니 리빙스턴 감독은 AIDS 및 HIV 차별에 반대하는 활동 단체 ‘액트 업(ACT UP)’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우연히 만난 흑인 보깅 댄서를 통해 볼룸을 접하고 이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3) 포즈

넷플릭스 <포즈>
이미지 출처: netflix

넷플릭스 시리즈 <포즈>는 1990년대 볼을 누비던 하우스들의 화려한 모습과 퀴어 커뮤니티가 겪었던 연대, 고통을 그린 작품입니다. 픽션이지만 대중에게 낯선 볼 문화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구현해냈고, 트랜스젠더 배우들을 대거 기용했다는 점에서 소재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시리즈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보깅 댄스부터 마돈나의 보그가 커뮤니티에 끼친 영향, 사회적 박해로 인한 크고 작은 사건들까지. 볼룸 문화와 보깅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시리즈를 시청해 보길 권해드립니다.


한국 하우스, 한국 보깅

이미지 출처: 유유밀란 공식 유튜브

보깅이 한국에서 사랑받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보깅 씬이 뉴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한국은 보깅이라는 서브컬처가 익숙치 않은 문화권이었으니까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댄스 카테고리에 비해 보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댄서는 극소수였습니다. ‘스우파’를 계기로 전보다 많은 이들이 보깅이라는 장르를 인식하고, 보그 아티스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지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에는 종주국 못지않게 보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 아티스트가 많습니다.

러브란 공식 유튜브의 춤추는 모습
이미지 출처: 러브란 공식 유튜브

현재는 국내에서도 주기적으로 볼이 개최되고 있으며, 보깅을 전개하는 유명 하우스들이 존재합니다. 우선 스우파를 통해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김란 댄서가 마더로 있는 하우스 ‘러브(love)’, 2019년 방영한 <퀸덤>의 무대에 서며 한 차례 화제된 바 있는 마더 최해준 댄서의 ‘시즈(seas)’, 한국 보깅의 심볼처럼 자리하고 있는 유유밀란, 김유정 댄서가 이끌고 있는 하우스 ‘키치(kitsch)’ 등. 다채로운 매력으로 중무장한 하우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INSTAGRAM : @loveran725

INSTAGRAM : @haejunchoice

INSTAGRAM : @uu_kitsch


혹자는 스우파가 일부 댄서들에게 스타성을 입혔을 뿐 한국 댄스 문화 전반적인 관심을 이끌지는 못했다고 말합니다. 또, 주류 미디어로 전파되는 것 자체를 폄하하는 이들 역시 존재하죠. 예술은 왜 대중성을 입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필자는 10대 시절 영화 <스텝 업>을 계기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춤에 대해 막연한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예술이 미디어에 송출됨으로써 단 한 명에게라도 열기를 전할 수 있다면, 언젠가 ‘비주류’라는 낙인을 벗고 업계 전반의 부흥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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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예진

비틀리고 왜곡된 것들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글로써 온기를 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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