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ep을 제외한
라디오헤드의 모든 것

망가진 균형을 바로잡는
라디오헤드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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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Creep’만 듣는 사람들과 ‘Creep’만 빼놓고 듣는 사람들이죠. 그만큼 라디오헤드에게 ‘Creep’은 전 세계적 히트곡이자 그들의 이름을 알린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라디오헤드는 어두운 공연장에서 루저의 절규를 담은 음악에서 나아가 점차 세계의 각종 불균형을 직시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대량 생산과 물질 만능주의가 번지고 인터넷이 도입되었던 시대의 감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응축한 명반을 잇따라 발매하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죠.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단순히 록이나 브릿팝처럼 장르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다변적인 사운드를 쌓아 올리며, 철학적인 가사와 사회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며 그들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합니다. 이는 시대를 불문하고 수많은 뮤지션에게 영향을 주죠. 이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라디오헤드의 명반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해 드립니다. 1992년에 데뷔해 이미 밴드 씬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지만, 입덕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가짜 플라스틱 지구에서

[The Bends]

이미지 출처: 벅스

1993년에 발매한 라디오헤드의 데뷔 앨범 [Pablo Honey]에 수록된 곡 ‘Creep’의 역주행과 글로벌 히트에, 후속작은 그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고 2집 [The Bends] 역시 주목을 받습니다. 이때부터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메시지는 점차 개인에서 사회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수록곡 ‘Fake Plastic Trees’는 자연이 가짜 플라스틱 복제품으로 대체된다는 내용입니다. 더 나아가 사랑마저 가짜 플라스틱처럼 진열된 세상을 풍자하죠. 라디오헤드는 1990년대 중반의 대량 생산 및 소비 사회, 글로벌 대기업의 횡포를 직시하는 시선을 기타 중심의 우울한 음악에 녹여냅니다. 1집에 이어 때론 서정적인 멜로디를, 때론 강렬한 록 사운드를 내세우는 앨범입니다.

이미지 출처: Rolling Stone

라디오헤드의 관심은 인간이 망쳐놓은 자연환경에 이릅니다. 이는 단순히 ‘Fake Plastic Trees’에 등장하는 플라스틱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데요. 라디오헤드의 주요 수입은 투어 공연이지만, 투어에 따르는 에너지 소비와 환경 파괴가 극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곧바로 지난 투어 공연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원인을 분석합니다. 그중 가장 큰 원인은 관객이 공연을 보러오는 도로에서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대중교통이 닿는 도심에서 공연을 하고, 투어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비행기가 아닌 선박으로 이동시킵니다. 2012년 내한했던 라디오헤드가 주최 측에 요구했던 건 고급 호텔도, 특별한 음식도 아닌 공연장에서 백열전구 대신 형광 전구를, 분리수거 통과 재활용 식기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투어를 비롯한 자신들의 행동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방관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적극적으로 환경 운동을 이끌어 나가는 밴드라고 할 수 있죠.

동영상 출처: Radiohead

무력하게 혁신을 받아들이며

[OK Computer]

이미지 출처: 벅스

[OK Computer]는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반으로 손꼽혔고 밴드의 프론트 퍼슨인 톰 요크 또한 자신들의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라디오헤드가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한 첫 번째 앨범이며, 각종 음악 매체에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세기말의 감수성이 눅진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 담겨있기 때문이죠. 라디오헤드는 [OK Computer]에서 점차 최신 기술에 의존하고 기술 중심 사회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불안과 공포, 소외를 이야기합니다. 특히 톰 요크의 흐느끼는 목소리와 전자음의 배열은 마치 연약한 인간과 기술 발전으로 이룩한 기계가 불안정하게 공존하는 듯 들립니다.

이전까지는 전통적인 록 사운드를 구사하는 음악이었다면 이 시점부터 라디오헤드는 신시사이저와 멜로트론 등 다양한 전자악기를 활용해 마치 우주를 연상시키는 사운드를 열거합니다. 음향의 무게 중심도 기타에서 키보드로 옮겨가기 시작하죠. 다소 실험적인 사운드를 구현하면서도 대중의 관심과 매체의 높은 평가를 동시에 받았으니 명반임이 분명합니다. 밴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은 이 앨범과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자기 몸의 일부를 내어주어도 상관없다며 극찬을 남기기도 했으니까요.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수록곡 ‘No Surprises’는 전자기타와 글로켄슈필의 조화가 매력적입니다.

동영상 출처: Radiohead

[Kid A]

이미지 출처: 벅스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기술과 네트워크가 인류 발전의 척도가 아닌, 발전의 정체를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환상과 묘사로 가득 차 있고, 이를 비추는 대중매체가 사람들을 무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어 길들인다고 지적하죠. 미디어 속 각종 정보와 오락이 과잉되기 시작한 새천년에 라디오헤드는 [Kid A]를 발매하며 이런 사회 문제를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불안정한 상태의 림보(Limbo)로 그려내기도 합니다.

[Kid A]는 기존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반응이었습니다. 기존 록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이질감을 주는 몽환적인 전자음과 불협화음이 전면에 드러나고, ‘기타-베이스-드럼’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록 사운드는 희미해졌죠. 게다가 일렉트로니카와 재즈,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아 독창적인 시도를 감행한 앨범이었습니다. 톰 요크는 보컬이 음악을 주도하지 않고 하나의 악기처럼 본인의 목소리를 사용했으며 텍스트를 잘라낸 다음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가사를 썼습니다. 그러나 극명한 호불호와 더불어 뮤직비디오도, 싱글 발매도 없었지만 미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음악 비평 매체 ‘피치포크(Pitchfork)’의 10점 만점을 받으며 [Kid A]는 급부상했습니다. [Kid A]는 오늘날까지 마치 평양냉면처럼 꾸준한 호불호 끝에 결국 사랑받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영상 출처: Radiohead

목소리가 없는 존재들을 위해

[In Rainbows]

이미지 출처: 벅스

2007년에 발매한 앨범 [In Rainbows]의 가격은 ‘본인이 지불하고 싶은 만큼’입니다.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이었던 ‘EMI’와의 계약이 종료된 라디오헤드는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해 앨범의 MP3 파일을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요. 원하는 만큼 지불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무료로 다운받을 수도 있었죠. 이는 강압적으로 히트곡을 만들어 싱글 발매를 강요하면서 뮤지션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업들의 횡포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디지털 배급은 라디오헤드의 음반 판매 중 가장 큰 수익을 거두어들입니다. 이후 라디오헤드는 뮤지션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아동 노동 착취 실태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MTV EXIT’ 캠페인에 참여하며 [In Rainbows]의 수록곡 ‘All I Need’를 기증하기도 합니다.

[Kid A]에 이어서 우주를 닮은 사운드와 노이즈가 강조된 앨범 [Amnesiac]과 정치적인 앨범이라는 평단의 반응이 있었던 만큼 사회적 메시지가 짙게 밴 [Hail To the Thief]를 발매하고 휴식기를 거쳐 [In Rainbows]가 탄생했습니다. 이 앨범은 그간의 실험적인 사운드와 강렬한 메시지가 가라앉아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듯, 비교적 온화하고 균형 있는 곡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동영상 출처: Radiohead

라디오헤드는 음악으로 이 시대의 망가진 균형을 맞추려는 밴드일지도 모릅니다. 양팔 저울 한쪽에 인류를 놓고, 반대편에는 자연환경, 기계와 기술의 발달, 미디어, 자본주의를 하나씩 올리며 사회의 불균형을 향해 끈기 있게 목소리를 내고 있죠. 그들의 음악은 흘러가는 선율에 그치지 않는 하나의 간곡한 요청일 수도 있겠습니다. 책임감과 경각심을 갖고 방관하지 않으며, 더 많은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지난 9월 8일, 한 페스티벌의 인터뷰에서 라디오헤드의 베이시스트 콜린 그린우드가 멤버들이 런던에 모여 과거의 곡들을 연주하며 리허설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알려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밴드 오아시스의 재결합, 린킨파크의 컴백과 더불어 올해 록 밴드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소식인데요. 2016년의 앨범 [A Moon Shaped Pool]과 2018년 투어를 끝으로 활동을 멈춘 라디오헤드의 새로운 움직임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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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조

좋아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걸 조합하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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