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돈
지독하게 얽힌 사이

패션으로 살펴보는
예술성과 상업성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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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예술성에 열광하는 사람으로서, 패션의 상업성은 항상 눈엣가시다. SPA브랜드의 대량생산과 과소비, 럭셔리 브랜드의 사치스러운 거대자본은 노골적인 상업 시스템을 보여준다. 패션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으며, 그 구조는 작품을 창조하고 감상하는 순수 예술작품의 생태계와는 다른 점이 있다. 하지만 패션이 창의적인 시도를 고민하고 교묘하게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모습을 볼 때면, 더할 나위 없이 예술적이다. 그럼 이 상업성 때문에, 패션은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걸까? 상업적인 특성이 나타나면 예술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걸까? 하지만 예술이 과연 돈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을까?


분리할 수 없는 예술과 돈의 사이

결론은 명백하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과 돈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가의 현생 문제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에 단단히 뿌리 박혀있다. 또, 현대예술이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하면서 넓은 범위를 자랑한다. 그래서 예술은 자본주의적 맥락에서 이용되기도 하고, 일상적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표현될 수 있다.

예술이 자본주의적 맥락에서 활용되는 대표적은 사례는 마케팅이다. ‘아트 마케팅’ 등의 용어로 표현된다. 광고에 예술을 활용하면 제품에 효과적으로 시선을 모을 수 있다. 가전제품의 광고에서 클래식 음악을 삽입해 편안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은 효과다.

또한, 일상적인 제품이 예술적으로 표현되면서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인아트페어(2021)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도예가 박채원 님이 기억에 남았다. 작업과정에서 물감의 흐름, 소재 특유의 텍스쳐가 만들어낸 불규칙적인 무늬를 그대로 살린 작품들이 많았다. 그 자유로운 표현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너무 사고 싶었다. 이 컵으로 물을 마시면 더 맛있을 것 같았고, 집에 가져다두면 부엌이 달라보일 것 같았다. 이렇게 예술은 우리에게 소유욕을 자극하는 차별점을 형성할 수 있다.

서울문화재단 입주작가 박채원의 도자기
이미지 출처: 서울문화재단 입주작가 소개 ‘박채원’

예술과 돈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 재미난 상관관계가 형성되었다. 언뜻 보면 각자 대척점에 서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니 이렇게 얽히고 설킨 관계가 없다. 예술성과 상업성은 어떤 관계일까? 두 가지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패션으로 살펴보자. 필자는 예전부터 패션의 이 양면성이 아주 치명적인 매력이라고 생각해왔다. 드디어 그 매력을 짚어보고자 한다.


예술성이 키운 상업성

패션의 예술성이 시작된 가장 첫 발걸음은 언제일까? 그 시작은 옷을 만드는 사람이, 봉제하는 ‘기술자’에서 작품을 고민하는 ‘디자이너’로 바뀐 지점이다. 거기엔 바로, 가장 처음 디자이너라고 불린 찰스 프레데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가 있다. 당시 패션은 고객의 사이즈와 요구사항에 따라 만들어지는 정교한 기술의 결과물에 불과했고, 워스도 원래 봉제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워스는 그만의 안목과 취향, 표현력으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었고, 주체적으로 창작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형성했다. 워스의 창작은 수요를 발생시켰다. 당시의 모든 귀부인들이 워스의 드레스를 원했고, 워스는 1,200명의 스태프를 둘 정도로 사업을 키울 수 있었다. 고객과 1대1로 만나는 맞춤형 제작은 수요가 수렴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명의 디자이너가 가진 독창성과 예술성에 모두의 시선이 주목된 순간, 수요가 집중되고 대량생산의 초석이 형성된 것이다.

찰스 프레데릭 워스(1825~1895)
찰스 프레데릭 워스(1825~1895), 이미지 출처: Shashamossi

“My work is not only to execute, but above all to invent. Creation is the secret of my success.(내 일은 제작이 아니라 창조다. 창작은 내 성공의 비밀이다.)”

_찰스 프레데릭 워스

현재로 돌아와볼까. 워스의 예술성이 패션산업의 시작이었다면, 현재 예술성은 패션산업을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이다. 현대사회에서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한다. 소비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패션은 특히 변화에 대한 요구가 높은 편인데, 이 새로움에 대한 욕구는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 바로 아이디어다. 예쁜 제품은 금방 대체되고, 유행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아이디어는 남는다. 의상학과 졸업작품을 맡으셨던 교수님과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었다.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의 옷을 사입음으로써 그의 메시지에 공감한다는 것을 표현한다고. 현대의 패션 소비자가 소유하고 싶어하는 건 예술적 표현이 수반된 새로운 아이디어다.

그래서 패션 브랜드는 예술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브랜드만의 차별점을 강화하기도 한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스투시Stussy’는 그래피티 예술가 뱅크시(Banksy)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뱅크시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위트 있게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투시는 스트리트 패션에 그래피티라는 스트리트 예술을 더해 서브컬쳐의 매력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뱅크시의 예술적 이미지를 활용해 ‘스투시x뱅크시’만의 차별점을 만들었다. 이것이 현대 패션의 마케팅이다. 예술은 희소성을 창조하고, 특별한 소구점을 형성한다. 이것은 수요로 연결되고, 결국 상업성을 증진시킨다.

뱅크시와 스투시의 콜라보레이션 그림
이미지 출처: issuu

상업성이 키운 예술성

반대로, 상업성 또한 예술성에 영향을 미친다. 패션은 상업성 때문에 예술성이 극대화된 대표적인 사례다. 먼저, 최초의 디자이너인 찰스 프레데릭 워스의 시기로 돌아가보자. 많은 사람들은 워스의 예술적인 감각을 사랑했다. 그런데 워스가 이 많은 수요에 응답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봉틀의 발명이 있다. 현재의 대량생산 구조에 비할 수는 없지만, 당시 재봉틀의 개발은 혁신적이었고 더 많은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업적 상징물이었다. 이 기발한 기계를 통해 더 많은 제품을 손쉽게 제작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워스의 스타일을 즐길 수 있었다. 이것이 많은 디자이너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의 시작이다. 즉, 오뜨 꾸뛰르는 가내수공업에서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변환된 지점에서 발전했다. 워스의 예술성은 수요를 촉진했고,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상업적 구조는 예술성을 추구할 수 있는 ‘오뜨 꾸뛰르’라는 기반을 키웠다.

워스의 아뜰리에
워스의 아뜰리에, 이미지 출처: Lara Mansour, Aeworld

하지만 반대로 상업성을 가리기 위해 예술성을 극대화시킨 사례가 있다. 럭셔리 브랜드의 이야기다. 럭셔리 브랜드는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과시적이며, 사치스럽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예술성에 더욱 주목해왔다(예민희, 임은혁). 패션 브랜드가 예술성을 강조할수록, 상업적인 특징을 가리고 특별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민희, 임은혁 교수님의 논문에서는 예술성을 지향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전략을 다섯 가지로 소개한다. 바로 1) 패션전시, 2) 패션쇼, 3) 브랜드 매장의 갤러리화, 4) 예술가와의 콜라보레이션, 5) 예술가 또는 문화재단에 후원하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전략, 패션 전시와 패션쇼는 패션을 예술작품처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시는 본질적으로 예술작품 관람을 위한 곳으로, 패션 전시는 그 자체로 패션을 미학적인 감상이 가능하고 메시지에 대한 해석을 고민할 만한 예술작품으로 만든다. 또한 패션쇼는 단순히 제품을 보여주는 장치였지만, 점점 예술적 퍼포먼스를 감상할 수 있는 거대한 무대로 확대되었다. ‘디올Dior’의 2021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를 보면, 런웨이에는 춤추는 무용수가 가득하고 배경에는 거대한 루미나리에(Luminarie, 빛을 활용한 조형물)가 설치되어 있다. 무용, 조형예술, 런웨이 퍼포먼스가 한데 어우려져 하나의 종합예술을 이룬다. 엄청난 규모의 공연을 보는 것 같아 감탄하고 있다면, 이쯤 해서 패션쇼의 목적을 떠올려보자. 패션쇼는 생산자와 유통업자(바이어), 소비자가 만나는 판매 공간이다. 상업성은 정교한 예술성으로 충분히 가려졌다.

디올의 2021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
이미지 출처: Dior cruise 2021

한편, ‘구찌Gucci’는 지난 5월 서울 이태원에 구찌 가옥을 오픈했다. ‘박승모’라는 작가의 작품이 매장 전면에 커다랗게 설치됐다.

박상모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구찌 가옥(Gucci Kroea)
박상모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구찌 가옥(Gucci Kroea), 이미지 출처: 코리아헤럴드

여기서 두 가지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 다섯 가지 전략 중 세 번째, 상품 판매를 위한 매장을 예술 감상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상업적 이미지를 승화시켰다. 그리고 전략 네 번째, 예술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이다. 박승모 작가는 철사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는 예술가로, 멀리서 보았을 때는 선명한 이미지가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았을 때는 겹겹이 쌓인 철사에 불과한 작품을 통해 실재와 허상의 경계가 무너진 지점을 표현한다. 구찌 가옥의 전면에 설치된 작품은 상상의 숲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는 숲과 나무의 소중함을 표현했다. 구찌는 매장과 이 작품의 병치를 통해 브랜드의 예술성을 높이고 자연적인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었다.

패션은 상업성이 짙기 때문에, 예술성에 대해 고민할 명분과 자원이 충분하다. 지금은 지나친 상업성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는 것을 꼭 언급하고 싶지만, 패션산업에 모이는 자본과 소비욕구가 패션산업의 예술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패션 브랜드의 예술성은 많은 돈이 흐르는 패션 산업의 자본주의적 실상을 가리면서도, 패션 산업에 더 많은 자본을 집중시키는 역할도 수행해왔다. 돈이 모이면 관심도 모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화려한 분야에 주목하고 열광한다. 그 결과, 패션은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확장하고 담론을 형성하기에 효과적인 장르로 거듭났다. 패션이 예술성을 고민할수록 더욱 도전적인 시도가 등장했고, 더욱 다양한 메시지가 담겼다. 패션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깊은 논의가 지속됐으며, 예술의 경계는 점점 확장되었다.

패션의 양면성은 패션을 매력적인 장르로 만들었다. 이렇게 얽히고 설킨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를 살펴보다 보면 서로 큰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확장되고 성장해온 흐름이 느껴진다. 예술은 혼자 고고한 것도 아니었고, 상업은 혼자 속물적인 것도 아니었다. 이 재미난 관계에서 또 어떤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 뉴스와이어, 구찌,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 공개(2021.5.28)
  • 예민희, 임은혁, 럭셔리 패션브랜드의 예술 전략, 2014, 한국의류학회지 제38권 제2호
  • Modametires, Charles Frederick Worth(1825-1895), the Founder of Haute Couture
  • Yuniya Kawamura, Fashion-ology, Bloomsbury,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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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량

패션을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세상이 보였습니다.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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