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서 동심은
지켜질 수 있을까

동심과 이기심이 뒤엉킨
국내 동물원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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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100주년이었던 지난 5일, 전국의 동물원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불과 하루 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상반된 분위기 속에 동물들의 추모식이 거행됐다. 추모식을 주도한 국내 시민단체 7곳은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을 촉구하며 동물원에서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했다. 영정 속에는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것도 모자라, 토막 난 채로 맹수의 먹이가 된 낙타의 생전 모습도 담겼다. 철창 안 눈동자에서 슬픈 표정을 읽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 억압과 참상이 난무하는 동물원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지켜질 수 있을까.


쾌락과 욕심의 산물

과거 지배계층은 진귀한 동물들을 기른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 수도였던 히에라콘폴리스의 귀족 무덤터에서는 코끼리, 원숭이, 하마를 비롯한 112개의 동물 뼈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동물원의 시초라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로마제국 전성기에는 동물 수집이 본격화되면서 더욱더 자극적인 동물쇼들이 등장한다. 동물의 생김새나 행동을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 싸움을 붙이거나 인간과 맞서게 한 것이다. 매일 같이 생명을 담보로 한 잔혹한 게임이 펼쳐졌다. 이 시기 몇몇 동물이 멸종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넘치는 수요 속에 야생동물 거래 산업은 날로 몸집을 키운다. 19세기 중반 이후 전 세계로 뻗어간 동물원은 자본가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과 종 보존의 목적’이라는 탈을 쓰고 우리 곁에 나타났다.

창경원 코끼리와 시민들, 이미지 출처: 한국정책방송원(KTV)

우리나라에 동물원이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의 일이다. 1909년 일제는 왕실을 격하하기 위한 의도로 창경궁 내에 동물원을 만들고 ‘창경원’이라 명명했다. 최초의 동물원이 개원한 지 10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국내 공영동물원들의 모습은 19~20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물원 관련 법이 2016년이 되어서야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면, 그 이유를 알 만하다. 동물들은 자연과는 거리가 먼 인공 구조물과 좁은 사육장 안에서 마음껏 달리지도, 날지도, 숨지도 못한다. 2020년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에서 발행한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동물원 전체에서 정형행동 또는 침울함을 보이는 동물들이 발견됐다. 같은 자리를 맴돌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닥의 자국들과 자해의 흔적은 동물원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짐작게 한다.

원숭이
이미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금빛 실타래’
낙타
이미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금빛 실타래’

비단 공영동물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2월에는 대구 한 민간동물원의 실상이 세간을 충격에 빠뜨렸다. 운영난을 이유로 방치된 동물들은 1년이 넘도록 먹이는 물론, 전기와 물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다. 고드름으로 둘러싸인 사육장에는 어떠한 생명력도 찾아볼 수 없다. 무고한 원숭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지난 4월, 해당 동물원 운영자가 1년여 만에 기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과정에서 병든 낙타를 방치하고 사체를 토막 내어 다른 동물의 먹이로 급여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동물원 운영자가 동물 학대 혐의로 기소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해당 운영자 소유의 다른 동물원 2곳은 버젓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허가제 아닌 등록제의 한계

이미지 출처: Unsplash

동물에 대한 일말의 존중 의식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동물원을 개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물원이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현행 동물원수족관법에 따르면, 형식적인 요건을 충족하여 지자체에 등록하기만 하면 누구든 동물원을 설립할 수 있다. 채광이나 사육장의 면적 등 동물들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는다. 2017년 법 제정 당시 야외 방사장 의무 확보 조항조차 빠진 탓에, 실내동물원이 우후죽순 등장하기도 했다. 자연의 일부였을 동물들은 햇볕조차 들지 않는 곳에서 자유와 본성을 박탈당한다. 물론 명백한 동물 학대 행위가 밝혀질 경우 처벌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이 역시 허울뿐이다. 실제 처벌이나 등록 취소 사례는 극히 드물뿐더러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재등록도 가능하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환경부는 2020년 ‘제1차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2021~2025)’을 통해 동물원 등록제를 허가제로 변경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7월에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을 주축으로, 허가제 전환을 포함한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도 발의되었다. 그러나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른 현안들에 밀려 계류 중이다. 동물 관련 법안들의 현실이기에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지만, 여야 간 이견이 많지 않은 만큼 조속히 통과되기를 기대해본다.


새로운 변화의 물결

그렇다면 해외의 동물원은 어떤 모습일까. 1970년대 이후 생태주의 흐름에 발맞춰, 몇몇 선진국에서는 새로운 동물원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다음 사례들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1) 미국 시애틀 우드랜드 파크

미국 시애틀에 위치한 우드랜드 파크(Woodland Park Zoo)는 ‘몰입전시(Immersion exhibit)’라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한 동물원이다. 인공적인 구조물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서식지와 흡사한 환경을 만들어, 마치 자연 속에서 동물들의 삶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법이다. 우드랜드 파크는 서식지의 기후에 따라 7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있다. 동물들은 이 곳에서 각기 다른 본성을 깨우고 보다 많은 자유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감금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세련되게 꾸며진 철창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따라다닌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2) 세네갈 반디아 야생동물공원

세네갈에 위치한 반디아 야생동물공원(Reserve of Bandia)에서는 철창 속에 사자 대신 사람이 갇힌다. 동물들은 야생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관람객들은 철창으로 가로막힌 차를 타고 그들의 터전을 드나든다. 일종의 사파리인 셈이다. 가이드와 동물들의 두터운 신뢰 덕분에 관람객들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야생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의 사육사 크리스토퍼 데링은 “작은 우리에 동물들을 구겨 넣는 대신, 사람들을 우리에 넣고 동물들의 삶을 존중하고 있는 것이죠”라며 동물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반가운 소식은, 우리나라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는 점이다. 전주동물원은 올해 생태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단장을 알린다. 1978년 문을 연 이곳은 낙후된 시설과 열악한 사육 환경 속에 ‘전국에서 가장 슬픈 동물원’이란 꼬리표가 달리기도 했었다. 2015년 시작된 전주생태동물원 조성사업은 지난 6년간 생태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왔다. 철창과 콘크리트는 사라지고, 나무와 흙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러한 변화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생태동물원에 대한 수요가 점차 많아지고, 시민들의 의식 수준 또한 높아지면 다른 동물원들도 이 흐름에 올라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물원은 오락적인 기능 이외에도 연구와 교육, 종 보존을 위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서식지 파괴로 오갈 데 없는 동물들을 번식시켜 생태계를 보전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무너뜨린 생태계를 인간이 다시 지켜낸다는 명분도 아이러니하지만, 자연 서식지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종 보존이 잘 이루어질지도 의문스럽다. 비슷한 조건이라도 갖춰져야 비로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동물원에서의 교육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일지도 생각해보자. 우리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에 노출될 때,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라는 비유를 활용해 불쾌감을 드러낸다. 동물들이 처해있는 상황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간다. 불행해 보이는 동물들과 생명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과연 아이들에게 ‘교육적’일까? 동심(動心)을 지키지 못하는 동물원은 동심(童心)을 지킬 자격이 없다.

서울신문, [동물박사가 들려주는 동물이야기] (1)동물원의 역사, 2013
MBC뉴스, 등록만 하면 동물원 운영? 잠자는 ‘허가제’ 법안, 2022
한겨레, 야생을 재현하라! 동물원의 생존전략, 2009
한겨레, 동물에게도 몸을 숨길 권리를 허하라, 2017
국회의원 이상돈/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공영동물원 실태조사 보고서, 2020
Youtube, 포크포크, <사자를 우리에 가두는 대신 사람을 가두는 야생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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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유림

아무래도 좋을 것들을 찾아 모으는 사람.
고이고 싶지 않아 잔물결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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