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 더운 기운을 한층 더 뜨겁게 달궜던 TV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를 기억하는가? 종영한 지 벌써 2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감동과 에너지는 지금도 잊기 어렵다. 그렇게 스트릿 댄스계 센 언니들의 폭발하는 멋짐에 빠져 있던 당시, 유튜브에서 우연히 장 필립 라모의 오페라 《우아한 인도》(Les Indes galantes)의 한 장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영상에서 스트릿 댄서들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 라모의 음악에 맞추어 격정적으로 춤추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한둘이 아니었다. 먼저 눈에 띈 건 거리의 춤 스트릿 댄스와 무대 장르인 오페라를 결합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기이한 결합이 예상을 빗나가는 ‘조화’를 이룬다는 점 역시 놀라웠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이상한 것은 음악가들이었다. 그 영상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이들은 다름 아닌 고음악(early music) 연주단체였다. 고음악이라니? 그게 무엇인지, 그게 왜 문제라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또 나처럼 스트릿 댄스에 매료된 적 있다면 스크롤을 멈추지 말고 조금 더 읽어보시라.
옛날, 더 옛날 음악으로!
클래식 음악은 옛날 음악을 연주한다. 모차르트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시대 이후 음악을 주요 레퍼토리로 소비한다. 베토벤, 쇼팽, 차이콥스키, 브람스, 말러, 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가 클래식 음악회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여기 열거된 이름 중 가장 젊은 라흐마니노프가 1873년생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적어도 150년 정도는 묵어줘야 클래식 음악 문화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클래식 음악의 주요 레퍼토리보다 훨씬 이전 시대 음악에 매료된 사람들이 있다. 가깝게는 17세기 바로크 시대 음악부터 멀게는 15~16세기 르네상스 음악과 그 이전의 중세 음악을 연주하고 소비하는 일군의 무리다. 이들은 지금은 잊힌 옛날 음악을 그 시대 악기로, 그 시대 연주법으로 연주하고, 그 시대 청중들이 듣던 대로 구현해 보려고 시도한다.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다. 그 움직임은 얼마 안 가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하나의 문화 현상을 이루며 ‘고음악’(early music)이라는 장르로 자리 잡는다.
이 구역에서 제일 힙(HIP)한 음악
이렇게 오래된 음악을 연주하는 데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남아 있는 음원도 없고,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악보 또한 매우 한정적 정보만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음악 연주는 필연적으로 사료(史料) 연구를 동반한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아들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가 쓴 『건반악기 연주의 진정한 기술에 관한 에세이』(1753)나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쓴 『바이올린 연주법』(1756) 같은 저작은 후기 바로크 음악 연주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담은 사료로, 지금도 널리 읽힌다. 바로 그런 점에서 고음악가들은 연주자이기 이전에 연구가이기도 하다. 고음악가의 연주를 ‘HIP(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곧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연주’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옛 음악 악보에 연주에 관한 정보가 얼마나 불충분한지는 위의 두 악보를 보면 곧바로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에 활동한 작곡가 말러의 교향곡 제1번 악보다. 모든 성부는 특정 악기가 연주하도록 지정되고, 빠르기를 비롯해 다이내믹, 음역, 아티큘레이션이 세세하게 기보된다. 악보에 표기된 수많은 기호들은 연주로 구현될 소리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담는다. 그 아래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작곡가 헨델의 악보다.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 1741)의 첫 번째 곡 ‘서곡’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이 곡은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음악이지만 악보에는 네 개 파트만 그려 있다. 그마저도 어떤 악기가 무슨 파트를 연주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정확한 빠르기나 다이내믹 역시 생략된다. 연주자는 어떤 악기로, 어떤 속도로, 어떤 소리 크기로 이 악보를 연주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 결정에 중요한 근거를 이루는 것이 바로 사료다.
‘진짜’ 음악을 되살려야 한다
고음악가는 사료 연구를 바탕으로 옛 음악을 당대 향유하던 방식대로 되살리려고 한다. 이들이 옛 시대 악기를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시대 악기를 사용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악기는 때와 장소에 걸맞게 지속적으로 개량되어 왔다. 예컨대 바이올린의 경우, 현대 바이올린이 금속으로 된 현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바로크 시대 악기는 양의 창자를 꿰어 만든 거트(gut) 현을 쓴다. 활도 다르다. 현대 바이올린의 활이 길이도 더 길고 장력도 더 강하다. 금속 현과 더 긴 활을 갖게 된 현대 바이올린은 바로크 바이올린보다 더욱 강하고 큰 소리를 내는 데 적합하다. 요컨대 수백, 수천 명이 모이는 대규모 콘서트홀에 알맞게 개량된 것이 현대 바이올린의 형태다. 바꿔 말하면, 거트 현과 짧은 활을 사용하는 바로크 바이올린은 더 부드럽고 작은 소리가 적절한 실내 공간에 어울리는 악기다.
그렇지만 당대의 음악을 되살리려는 고음악가의 작전에는 문제가 있다. 옛 음악에서 되살릴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바로크 시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던 카스트라토1)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또 과거와는 다른 현대 환경에서 옛 음악을 향유하던 문화를 구현해 내는 것 역시 어렵다. 그뿐만 아니다. 아무리 귀중한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하더라도 옛 음악의 구체적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당대 음악을, 그 시대에 실제로 행했던 ‘진짜’ 음악을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던 몇몇 고음악가들의 맹랑한 구호는 어쩌면 터무니없는 강변에 가까운 것이었을지 모른다.
1) 카스트라토는 여성의 음역대로 노래를 부르는 남성 가수를 일컫는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에 이르기 전 거세하여 성인이 되어서도 소년의 목소리를 유지했다.
무엇이 ‘진짜’ 음악인가?
지난해 타계한 촌철살인의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진짜’를 되살리겠다는 일부 교조적인 고음악가들의 작업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들의 작업은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에 겹겹이 쌓인 먼지들을 벗겨내 ‘진짜’를 복원하려는 일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타루스킨은 그 복원 작업이 수백 년간 쌓인 음악 연주의 역사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비판과는 별개로, 고음악은 연구해야만, ‘진짜’ 음악이 무엇인지 식별할 줄 알아야만 즐길 수 있다는 인식도 문제였다. 이 같은 은연중 인식은 고음악은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최고급 예술이라는 인상까지 남겼다.
고음악계는 이렇듯 ‘진짜’ 음악을 되살려야 한다는, 이른바 ‘정격음악’(authentic music)2)을 지향하는 편과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만일 있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편 사이 팽팽한 논쟁으로 내부 진통을 겪었다. 누가 이겼냐고? 여느 건강한 논쟁이 그렇듯 그건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고음악가는 시대 악기를 사용하고 잊힌 음악을 발굴하며 역사를 깊이 탐구한다. 그렇지만 그 일련의 작업이 여전히 저기 어딘가 숨겨져 있을 정답을 찾기 위한 일은 아니다. 두터운 역사에 겹겹이 새겨진 오래된 음악은 지금 시대의 우리와 신비롭게 접속하며 가장 새로운 음악으로 다시 태어난다.
2) ‘정격음악’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가치판단이 내재된 논쟁적인 개념으로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다. 필요한 경우 ‘원전음악’으로 표기한다.
옛 음악을 연주하는 일, 게다가 옛날 방식을 되살려 연주하는 일은 답답하고, 때로는 고리타분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듯 ‘당대 연주하던 방식을 되살려 보자’는 것이 고음악 운동의 핵심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역설적이지만, 최근 고음악가들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혁신적이고 기발한 시도를 선보인다. 이 글 서두에 소개한 파리국립오페라단의 경우도 바로 그런 예다. 아무리 양보해 생각해도 바로크 작곡가 라모와 스트릿 댄스 사이에는 접점이 없다. 스트릿 댄스가 1960년대 이후 생겨난 장르라는 점을 기억하면, 둘의 결합은 이상할 뿐 아니라 시기적으로 불가능하다. 심지어 연주를 맡은 것은 옛 방식으로 연주하는 고음악 연주단체다. 그렇지만 시대를 초월한 그 기묘한 결합은 원작 이상의 창조적 조화를 이뤄낸다. 오래된 옛 음악은 고음악가의 손에서 가장 독창적인 음악으로 다시 태어난다.
- Thomas Forrest Kelly, Early Music: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2011.
- [자문] 정경영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음악학 전공) 교수,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