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를 말하는
불편한 미술의 정체

미술 작품으로 마주하는
자연과 기후위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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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발행하는 웹진 ‘A SQUARE’는 지난 11월 인류세를 주제로 한 7호를 발표했습니다. 총 11개의 아티클 중 ‘기후 변화 예술 활동에 대한 예술인 인식조사’는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의 기후 위기에 관한 인식을 조사했죠. 설문 결과, 예술인들은 ‘환경 분야와 기후 변화에 대한 중요성과 책임을 느끼고 있다’라는 지표에서 5점 척도 기준 평균 4.52점으로 높은 점수를 보여 기후 변화가 그들에게 중요 이슈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술은 기후 변화에 대한 정보 전달 및 소통의 새로운 전달 방법으로서 강력한 인지 수단이 될 수 있다’, ‘예술은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행동 변화와 원동력으로 감정의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와 같은 지표 역시 각각 4.18점, 4.24점의 높은 점수를 보였습니다. 또, ‘기후 변화에 대한 주제 접근 필요성’을 확인하는 문항에서는 83.9%가 긍정 답변(필요하다, 매우 필요하다)을 선택했습니다. 다시 말해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에 예술이 참여해야 하고 예술이 특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에 예술인들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 사회에서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낯선 이슈가 아닙니다.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전시나 작품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으니, 많은 미술 작가와 작품이 기후 위기를 창작의 주제로 삼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미술은 왜 기후 위기라는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고 있을까요?


작품에 담긴 자연 환경

로버트 스미스슨, “나선형의 방파제”, 1970
로버트 스미스슨, “나선형의 방파제”, 1970, 이미지 출처: 홀트-스미스슨 재단(Holt-Smithson Foundation)

자연의 요소가 미술에 등장하는 일은 그리 낯설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도 자연을 소재로 하고 자연의 위대함이나 웅장함을 주제로 하기도 합니다. 화이트큐브에서 벗어나 물질주의적 예술에 반하였던 대지미술도 자연환경을 활용하였죠. 작품마다 자연환경 또는 자연물을 활용하거나 결합하는 등 형태는 다양하고, 대표적으로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의 ‘나선형의 방파제(Spiral Jetty)’가 있습니다. 그는 진흙, 소금, 암석 등 주변환경물을 활용해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었습니다. 한편, 이승택 작가는 붉은 천이 휘날리는 모습을 통해 바람을 시각화하는 퍼포먼스 ‘바람-민속놀이’를 선보였습니다. 꼭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연환경 요소가 아니더라도 미술은 꾸준히 자연과의 접점을 이어왔습니다.

이승택, “바람-민속놀이”, 1970

이렇게 자연적인 요소가 사용된 다수의 미술 작품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자연이 작품 속에서 하나의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이죠. 자연환경이 작품에 귀속된 일부 요소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결국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 간의 관계를 은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답고 위대한 자연환경의 모습, 신비하고 놀라운 동식물의 생명력. 이를 담는 미술 작품 앞에서 작가와 관람자는 자연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감상하는 자의 자리에 위치합니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 태도와 사고에서 벗어나 비인간 존재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는 미술적 시도가 생태미술입니다. 생태미술은 인간과 자연을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예술적 실천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전의 미술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는 작품에서 도드라지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암시하는 미술

장한나, “뱅”, 2023
장한나, “뱅”, 2023
(상) 장한나, “신 자연, 뉴 락 속 개미”, 2023 / (하) 장한나, “신 자연, 뉴 락 속 개미, 가루산”, 2023
(상) 장한나, “신 자연, 뉴 락 속 개미”, 2023 / (하) 장한나, “신 자연, 뉴 락 속 개미, 가루산”, 2023

장한나 작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작품에 활용하며 지금 자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뱅(Bang)”은 작가가 뉴 락(New Rock)을 모아 우주 대폭발 빅뱅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배치한 작업입니다. 작가는 자연에 방치되어서 풍화되는 플라스틱들을 모아서 뉴 락이라고 지칭하는데, 플라스틱들이 암석과 결합하거나 돌처럼 되어버리는 현상들을 포착해 이를 새로운 돌이라 명명한 것입니다. 암석이나 유물은 과거 인류의 행적을 유추하는 증거가 되는데, 작가는 이에 착안해 21세기 인류를 설명하게 될지도 모르는 뉴 락을 수집하는 것이죠. 뉴 락은 플라스틱이 자연물에 뒤섞이고 있는 현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먼 미래 인류는 우리의 행적을 유추하기 위해 퇴적물에 쌓인 플라스틱을 발굴하게 될지도 모르죠.

이렇게 변화하는 자연환경에서 작가는 우연히 스티로폼을 파고들어 집을 만드는 개미를 발견합니다. 작가의 관찰 결과에 따르면 개미들이 흙에서 집을 지을 때보다 훨씬 힘들게 플라스틱을 파고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미 자연과 자연 속 동식물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인간이 버린 쓰레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며 우리가 자연환경과 맺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INSTAGRAM : @new___rock


박정선 작가의 ‘우는 바다’는 작가가 수집한 해양 쓰레기들을 전시장 바닥에 설치해 관람객들이 이를 밟게 한 설치작품입니다. 재밌는 점은 관람객이 쓰레기들을 밟을 때마다 나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증폭되고 변형되어 좀 더 크고 약간은 기괴한, 낯선 소리가 난다는 점입니다. 바다가 울면서 내는 소리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이 소리는 실제 바다의 울음소리는 아니지만, 이를 들으며 관람객은 불편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도 바다와 인간 사이 형성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겠죠. 우는 바다의 소리라고 인식되는 기계음은 결국 환경을 짓밟았던 현대인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듯하기도 하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는 바다의 울음소리는 현대인들이 환경 파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합니다.

생태미술은 인간과 자연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이들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환경 변화의 모습과 원인을 다시 한 번 살피게 하는 미술은 그리 긍정적인 관계를 담기 어렵습니다. 마냥 눈이 즐거운 아름다운 미술이 아니라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불편해지는 미술 작품을 마주하게 되죠.


작품의 메시지,
미술의 역할

임상빈, “남극-펭귄”, 2014,
임상빈, “남극-펭귄”, 2014, 이미지 출처: 임상빈 작가 홈페이지

임상빈 작가의 작품 ‘남극-펭귄(Antartica-Penguin)’은 비인간 주체인 펭귄의 시선을 통해 인류의 욕심을 성찰하게 합니다. 이 역시도 마음 편히 감상하는 작품은 아니죠. 인간의 손길이 닿은 후 오염된 남극의 실상을 폭로하는 이 작품은 하단에 등장하는 펭귄의 발을 통해 관람자의 시선을 펭귄의 시선으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펭귄의 눈으로 우리는 녹아서 조각난 얼음들이 바다 위를 떠다니는 것을 보게 되죠. 아주 직관적으로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작품을 통해 펭귄의 시선을 경험해야 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미술관에서 만나는 작품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까요? 기후 위기라는 문제는 미술이 대응하거나 해결책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는 정치·사회가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문제이며, 누군가는 미술이 정치적으로 수단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생태미술이, 기후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미술이 의미 있는 것은 우리 사회 내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 미래에 플라스틱들이 모래사장을 뒤덮을 수 있다는 상상, 바다가 고통을 느끼고 신음할 수 있다는 상상, 보금자리를 잃는 펭귄이 되는 상상은 기후 위기라는 문제에 대한 공감과 심각성을 관람객과 공유합니다.


WEBSITE : 임상빈 작가


작은 실천이 모여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말은 너무 뻔할 수 있지만, 오늘날 인류가 기후 위기 앞에서 취해야 할 행동 방식입니다. 그리고 미술도 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제 작품을 만났다면, 작은 실천을 쌓아가야 할 차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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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비

막연히 마음속에 자리 잡은 예술을 나누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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